[김승중 더봄] 나폴레옹과 슈퍼맨에게서 배우는 설득의 심리학

[김승중의 슬기로운 인간관계]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의 비밀 때로 손해를 감수하면서 협력하는 이유

2025-08-05     김승중 심리학 박사·마음의 레버리지 저자

영화 <맨 오브 스틸>에서, 기자 로이스 레인은 마침내 슈퍼맨의 정체를 추적하여 그의 고향 스몰빌까지 도달한다. 한 언론인의 집요한 추적 끝에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특종이 그녀의 손에 잡히기 직전의 순간이다.

슈퍼맨, 클락 켄트는 그녀를 자신의 양아버지, 조너선 켄트의 묘지 앞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들의 초인적인 힘을 숨기기 위해 스스로 희생을 선택했던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을 담담하게 들려주며 이렇게 말을 건넨다.

“아버지는 세상이 제 정체를 알게 되면··· 두려움 때문에 저를 거부할 거라고 믿으셨어요. 세상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확신하셨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로이스 레인은 이 호소를 거부해야 마땅하다. 외계에서 온 초인적 존재의 발견은 단순한 특종을 넘어 인류의 역사를 바꿀 대사건이며, 이를 보도하는 것은 기자로서의 직업적 소명이자 개인의 명성을 정점으로 끌어올릴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기사를 포기하고 편집장에게 돌아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보고한다. 무엇이 그녀에게 명백한 직업적 이득을 포기하게 하였을까? 어떠한 심리적 기제가 명백한 이익을 포기하도록 하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일까?

고전 경제학이 상정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즉 합리적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존재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로이스의 선택은 설명되지 않는 변칙적 행동에 불과하다.

하지만 심리학자로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 등이 주창한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체계적으로 비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존재임을 수많은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인간은 단순한 이익 계산기가 아니라, 복잡한 감정과 사회적 관계, 그리고 내면의 가치관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라는 것이다. 

엘바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이 프랑스 남부 해안에 상륙하자 루이 18세는 즉시 나폴레옹을 '반역자'로 선포하고 체포하거나 사살할 것을 명한다. 왕의 군대에 체포되기 직전 나폴레옹은 군인들을 설득하여 자기편으로 만들어버린다. /게티이미지뱅크

인간이 때로 명백한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비논리적으로 보이는 협력을 선택하는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 심리적 토대 위에서 설명될 수 있다.

첫째, 인간은 감정과 공감의 지배를 받는다. 특히 공정성(Fairness)에 대한 갈망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가깝다. 이를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다.

실험에서 참가자 A에게 10만원을 주고, 참가자 B에게 나눌 금액을 제안하게 한다. B가 제안을 수락하면 각자 제안된 금액을 갖지만, B가 거부하면 두 사람 모두 한 푼도 받지 못한다. 합리적 인간이라면 B는 단돈 1만원이라도 제안받으면 수락해야 한다. 0원보다는 1만원이 명백한 이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실험 결과, 제안 금액이 30% 미만으로 떨어지면 대부분의 B는 제안을 거부했다. 이는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불공정한 상대를 응징하려는 강력한 감정적 동기가 이성적 판단을 압도함을 보여준다.

둘째,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긍정적 평판과 소속감을 추구한다. 진화의 과정에서 집단에 소속되지 못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이러한 생존 본능은 현대 사회에서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좋은 평판을 유지하려는 강력한 사회적 욕구로 발현된다.

주말의 휴식을 포기하고 친구의 이사를 돕는 행위는 시간과 에너지라는 자원을 소모하는 명백한 손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통해 의리 있는 친구라는 평판을 얻고,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며, 미래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무형의 자산을 쌓는다. 이러한 사회적 이득이 단기적인 손실보다 훨씬 더 가치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셋째, 자아정체성과 내면의 가치관을 지키려는 욕구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에 ‘이상적인 나’의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자기 행동이 그 모습에 부합하기를 갈망한다. 스스로를 ‘정직하고 선한 사람’이라고 믿는 사람은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피하려 한다.

이는 자신의 신념과 행동이 불일치할 때 발생하는 심리적 불편함, 즉 ‘인지부조화’를 피하려는 본능과도 연결된다. 이 자아정체성에 대한 호소가 얼마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는 역사 속에서 극적으로 증명된 바 있다.

1815년, 유럽을 호령하던 황제 나폴레옹은 전쟁 패배 후 지중해의 작은 섬 엘바의 군주로 유배된 상태였다. 하지만 불과 10개월 만인 1815년 2월, 그는 감시하던 눈을 피해 극적으로 섬을 탈출, 소수의 병력과 함께 프랑스 남부 해안에 상륙한다. 파리를 향해 진격하겠다는 그의 소식은 프랑스 왕정을 뒤흔들었다.

이 소식에 경악한 왕 루이 18세는 즉시 나폴레옹을 '반역자'이자 '국가의 적'으로 선포했다. 그리고 그의 옛 부하였던 미셸 네 원수를 포함한 군대에 ‘체포하거나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왕의 군대는 남쪽으로 향했고, 마침내 그르노블로 향하는 길목에서 나폴레옹의 소규모 부대와 마주치게 되었다. 

수적으로 절대적 열세에 놓인 상황, 사방에서 총구가 그를 겨누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나폴레옹은 역사에 길이 남을 행동을 한다. 나폴레옹은 혼자 군인들 앞으로 걸어가 자신의 코트를 열어젖히며 외쳤다. “제5연대 병사들이여! 그대들은 나를 알아보겠는가? 그대들 중에 자신의 황제를 쏘고 싶은 자가 있다면, 여기 내가 있다!”

이 외침은 군인들의 정체성을 ‘왕에게 충성하는 병사’에서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이집트의 영광을 함께했던 황제의 베테랑’으로 순간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들에게 황제를 쏘는 행위는 반역자를 처단하는 임무 수행이 아니라, 자신들의 빛나는 과거와 자부심 그 자체를 파괴하는 행위가 되어버렸다.

결국 군인들은 총을 내리고 “황제 폐하 만세!”를 외치며 그에게 합류했다. 나폴레옹은 그들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자아정체성과 명예심에 호소함으로써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것이다.

데일 카네기가 제시한 열렬한 협력을 얻는 12원칙 중 10번째 ‘보다 고상한 동기에 호소하라(Appeal to the nobler motives)’는 바로 이 지점에 서 있다. 그렇다면 이 강력한 원칙을 우리의 일상과 직장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다음의 5단계 프로세스는 그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한다.

1단계: 관점의 전환 - 상대방을 '선한 의지를 가진 존재'로 가정하기
첫 단계는 바로 우리 자신의 관점을 전환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특정 행동을 보고 그를 ‘이기적이다’, ‘비협조적이다’, 혹은 ‘게으르다’라고 성급히 단정 짓는 순간, 우리의 설득 시도는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부정적인 판단은 무의식적으로 표정과 말투에 드러나 상대방의 마음을 닫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화를 시작하기에 앞서, 의식적으로 상대방을 ‘선한 의지를 가진 존재’로 가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 보이는 저 행동은 그의 본모습이 아닐 것이다. 그에게는 내가 알지 못하는 피치 못할 사정이나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는 신뢰의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

2단계: 이기적 동기와 고상한 동기의 분리 분석
특정 상황에서 상대방이 가질 수 있는 두 가지 차원의 동기를 분리하여 분석한다. 하나는 ‘이기적이고 현실적인 동기(귀찮음, 책임 회피, 개인적 이익 등)’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공략해야 할 ‘고상한 동기(책임감, 전문성, 팀워크, 공정성 등)’이다. 이 분석은 우리가 어떤 지점을 자극해야 할지 명확한 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을 준다.

3단계: 고상한 동기를 기반으로 한 호소의 설계
상대방의 고상한 동기를 마치 당연한 사실처럼 전제하고 대화를 시작한다. 이는 상대방을 비난의 대상이 아닌, 존중의 대상으로 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효과적인 신호다.

예를 들어, 팀 프로젝트에 소극적인 동료에게 “왜 협조하지 않습니까?”라고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대신, “최 과장님은 누구보다 이 분야의 전문가이시고, 항상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최 과장님의 전문적인 식견이 절실히 필요합니다”라고 접근하는 것이다.

4단계: 명예로운 퇴로의 제공
사람들은 자신의 체면을 지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넣고 강요하는 대신, 그가 스스로의 가치를 실현하는 형태로 당신의 요청을 수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위 예시에 이어 “혹시 다른 급한 업무 때문에 여력이 없으신 상황이라면, 언제가 편하실지 알려주시겠습니까?”라고 덧붙이는 것은 상대방이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체면을 지키면서도 협력의 여지를 찾게 만드는 현명한 방법이다.

5단계: 긍정적 행동에 대한 인정과 강화
상대방이 당신의 요청에 긍정적으로 반응했을 때, 그 행동을 그의 고상한 가치와 다시 연결하여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감사합니다”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역시 책임감 있는 분인 줄 알았습니다. 덕분에 큰 산을 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와 같이 그의 행동이 그의 훌륭한 가치에서 비롯되었음을 명확히 인정해 주어야 한다. 이는 긍정적 행동을 강화하고, 향후 더 깊은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초석이 된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정교하고 강력한 전략은, 그의 주머니 사정을 따지거나 논리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 스스로가 믿고 싶은 이상적인 자아의 모습과 그가 수호하려는 고결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진심으로 믿어주며,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우리 역시 누군가가 나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주고 그것에 호소하며 신뢰를 보여줄 때, 기꺼이 마음을 열고 손을 내밀지 않겠는가! 타인을 설득하기에 앞서,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고상한 동기의 힘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모든 관계의 시작일 것이다.

여성경제신문 김승중 심리학 박사·마음의 레버리지 저자 spreadksj@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