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타운 2.0] (54) “그땐 되고 지금은 안 되고”···‘도시계획시설’ 지위 박탈이 남긴 것
삼성노블카운티·청심빌리지가 가능했던 진짜 이유는
“이게 안 된다고요?”
경기도 외곽에서 전원형 실버타운을 준비 중이던 한 민간 개발업자는 최근 시청 담당 공무원에게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노인복지주택이 ‘도시계획시설’로 인정을 받지 못해 아예 계획조차 검토 불가하다는 답이었다. 10여 년 전 같았으면 이곳은 벌써 입주자를 모집하고 있었을 터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사정은 달랐다.
'노인복지주택'은 병원·학교처럼 도시계획상 ‘공익시설’로 분류돼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도시계획시설 규칙」 제107조에 따라 임대 목적의 노인복지주택에 한해서는 자연녹지지역의 층고 제한 완화가 가능했다. 도시 외곽이라도 4층 이상 설계가 가능했단 얘기다. 당시 고령화에 대응하는 ‘사회적 필요’라는 명분이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 특례 덕에 가능했던 대표 사례가 ‘삼성노블카운티’(용인)와 ‘청심빌리지’(가평)다. 자연과 공존하는 고급 전원형 시니어레지던스로 국내 실버타운 업계의 교과서처럼 불린다. 고지대 자연녹지 위에 5층 이상 설계를 실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이 규칙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180도 달라졌다.
정부는 2020년을 전후해 관련 규정을 손보며 ‘노인복지주택’의 도시계획시설 지위를 사실상 폐지했다. 이유는 “민간 임대 목적이 강한 주거시설은 도시계획시설로 보기 어렵다”는 논리였다. 노인을 위한 공공성이 사라졌다는 판단이었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자연녹지에서 노인복지주택을 짓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전원형 실버타운 공급은 사실상 정체 상태에 빠졌다. 실버타운은 자연과의 접점이 중요하다. 그러나 자연녹지에 지을 수 없고, 도시에서는 땅값과 용적률의 벽에 막히니 어디에도 적당한 입지를 찾기 어렵다. 민간 기업은 투자를 망설이고, 중산층 노년층은 선택지를 잃어버렸다.
전문가들은 규제 철폐나 전면 해제를 주장하진 않지만 고령사회에 맞춘 도시계획적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문성택 유튜브 '공빠TV' 대표는 본지 칼럼 '[문성택 칼럼] 하늘로 열어야 넓은 숲이 온다···시니어레지던스 ‘4층 규제’의 슬픈 역설를 통해 "자연녹지지역의 시니어레지던스에 대한 획일적인 4층 층고 제한을 완화하는 것은 결코 특정 사업자를 위한 특혜가 아니다"라며 "과거에 도시계획시설에 포함되어 층고 규제 완화가 적용되었던 도시계획시설 규칙 제107조를 부활시키는 것은 없었던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했던 합리적인 제도를 다시 가져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규제 완화에 큰 장해가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 10층 이하로도 도시미관을 해치지 않고 노인복지주택 특성을 살릴 수 있다. 오히려 건물을 위로 밀도 있게 올리는 대신 더 넓은 땅을 녹지와 커뮤니티 공간으로 확보하여 입주민의 삶의 질을 극대화하는 현명한 토지 이용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사회복지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삼성노블카운티나 청심빌리지처럼 품격 있는 노인 주거단지는 지역사회의 고령친화 인프라로 기능해왔다”며 “이런 시설을 무조건 민간 영리시설로 간주하고 배제하면 결국 국가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일정 기준을 충족한 노인복지주택에 대해서는 한시적으로라도 자연녹지 층수 제한을 유연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예를 들어 지자체 조례에 ‘지역 노인 인구비율’이나 ‘의료·복지 연계성’을 조건으로 넣으면 무분별한 남용도 막을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이어 “시니어 레지던스는 단순한 부동산 사업이 아니라, 노년기 삶의 질과 직결된 사회복지 인프라”라며 “국토부, 복지부, 지자체가 함께 공론장을 마련하고 노인주거시설에 대한 새로운 규정 틀을 재정비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