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123만마리 A4 반 장 케이지서 폐사···'사육 면적 확대' 쉽지 않은 이유는
역대급 폭염에 가금류 누적 피해 급증 산란계 0.075㎡ 소급 적용 두고 반발 농가 매출 감소 등 부작용 우려 나와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가금류의 폐사가 폭증했다. A4용지보다 좁은 공간에 갇혀 사는 사육 환경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업계 반발로 난항이 예상된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폭염 대처 상황 보고서를 보면 폭염에 의한 가축 피해가 급증했다. 폐사한 가축은 누적 133만7265마리로 전년 동기(21만 5809마리) 대비 약 6.2배 증가했다. 이 중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가축은 닭 등 가금류다. 지난 29일 기준 하루 동안 10만 3885마리의 가축 폐사 신고가 접수됐는데 이 중 돼지 188마리를 제외한 대부분이 가금류였다. 올해 누적된 가금류의 피해는 123만1682마리에 달한다.
닭은 땀샘이 없어 체온 조절이 어렵고, 몸 전체가 깃털로 덮여 있어 폭염에 특히 취약하다. 그러나 여전히 산란계 닭의 대부분은 A4 용지보다 좁은 0.05㎡ 면적의 닭장에서 사육되고 있다.
이런 밀집 사육 환경은 내부 온도를 높이고 환기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들어 폭염 상황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진경 동물권행동 카라 이사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밀집 사육 시 가금류의 호흡이나 움직임에 의해 발생하는 열이 바깥으로 제대로 발산되지 않는다"라며 "가금류의 경우 조류 독감 감염 예방을 위해 환기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펜을 돌리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내부 환경이 견딜 만한 해지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정 이사는 현재 기준인 0.05㎡는 A4 반 장 크기이고 0.075㎡는 A4의 3분의 2 크기라며 "0.075㎡도 폭염 속에서 동물들을 지킬 수 없다. 원래는 방사 사육을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방사 사육을 해야 땅을 통해 열과 체온을 식히고 모래 목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적정한 케이지 온도는 성계는 18도에서 24도 정도이고 병아리는 31~33도"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애초 올해 9월부터 케이지 규격을 0.075㎡로 확대하는 방안을 전면 시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가격 충격과 시장 혼란을 우려해 이를 2027년 9월로 2년 유예했다. 정부는 최근 달걀 가격 상승의 원인을 두고 갈등을 빚은 생산자단체와 만나 해법을 찾겠다면서도 산란계 사육 기준 면적 확대 등 달걀 산업 핵심 정책엔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태도다.
기존 농가에도 사육 면적 확대 기준을 소급 적용하려는 정부 방침에 업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산란계협회에 따르면 케이지의 경우 내구연한이 25~30년인데 기존 농가들이 새로운 규격에 맞춘 케이지로 교체할 때 약 2조원이 발생하게 된다. 이 경우 농가 매출은 연간 7200억원 등 약 33%가 감소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또한 협회는 기준을 소급 적용할 시 1일 달걀 공급량은 4600만 개에서 3400만개 수준으로 급감하고 생산비 역시 약 13%(EU와 일본의 증가율 평균) 증가하게 된다고 전망했다.
이외에도 △농가 수익의 마이너스 △가격 급등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 증가 △수출 경쟁력 역차별 △달걀 자급률 100% 붕괴 △기준 확대 시 환경 오염 등 부작용 증가를 근거로 사육 면적 확대 소급 적용에 반대하고 있다.
협회는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한 상태다. 소급 적용이 개인재산권을 침해하고 직업선택의 자유 침해뿐만 아니라 정부가 법 개정 의무 사항인 규제영향분석서에서 효과 왜곡 및 피해를 축소했다는 것이다. 11월에는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도 청구했다. 현재 두 건 모두 심리 중인 상황이다.
산란계 업계의 어려움은 이해가 가지만 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유럽연합은 배터리 케이지 사육을 금지한지 이미 오래됐다"라며 "동물 복지와 관련해 국제적으로 사육 기준이 바뀌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산업계도 적극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물론 어려울 수 있지만 이미 사용 면적 확대에 따라 교체한 농가들도 있다"라며 "법에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여성경제신문 김민 기자 kbgi001@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