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한미 FTA 무력화···정상회담선 ‘안보 청구서’ 내민다

안보 연계 없는 관세 협상 일단락 트럼프의 ‘분리 전략’ 그대로 통해 FTA 방패 없이 일대일 협상 ‘불리’  주한미군·국방비 의제로 압박할듯

2025-08-01     유준상 기자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전쟁’ 다음 타깃으로 안보 청구서를 꺼내 들 전망이다. 관세 협상에서 사실상 FTA 무력화를 이끌어낸 미국은 이제 한국에 대해 주한미군 역할 확대, 국방비 지출 요구 등 안보 의제로 압박하고 있다.

2주 뒤로 예상되는 한미 정상회담은 단순한 친선 외교의 자리가 아닌 방위비·주한미군·디지털 규제·농산물 개방 등 핵심 안보·통상 사안의 종합 담판 무대가 될 전망이다.

1일 소식통에 따르면 한국은 관세 협상 초기부터 안보와 통상을 연계한 총론적인 ‘패키지 딜’ 전략을 추진했지만 미국이 이를 수용하지 않고 분리 접근을 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4월 초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국에 대한 ‘대규모 군사 보호 비용’을 언급한 뒤 “무역, 관세와 관련 없는 사안도 제기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군대 문제는 별도의 주제이며 어떤 (관세) 협상에서도 이를 다루지 않겠다”며 입장을 변경했다.

관세를 고리로 동맹 현안을 이슈화하되 막상 협상에선 이를 분리해 다루는 편이 더 많은 것을 얻어내면서 상대방의 협상력을 제한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여긴 것으로 풀이된다. 

그 결과 상호관세 15%는 얻어냈지만 한미 FTA의 무관세 체제는 사실상 끝났다. FTA가 유지될 때는 실효관세율이 0%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FTA 비체결국인 일본, EU와 같은 경쟁선상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한국은 관세율을 낮췄다는 데서 안도했지만 사실상 트럼프의 전략대로 움직였다. 

문제는 더 큰 암초가 남아있다는 점이다. 한미 무역합의 타결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 글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2주 안에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관세 협상 직후 브리핑에서 “오늘 딜은 통상 분야 중심이고 안보 등은 한·미 정상회담이 있기 때문에 그쪽에서 논의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관세 협상은 일단락 됐지만 경제 분야 이외의 안보, 통상 등 주제가 다가올 한미 정상회담 테이블에 올라 공동성명 등 결과물에 반영될 가능성이 나온다.  

한 외교 전문가는 “미국은 일단 인플레이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관세 협상을 서둘러 마무리한 것”이라며 “추후 한국에 동맹 현대화 등 안보 이슈를 본격적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특히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논의, 국방비 인상,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을 포괄하는 이른바 ‘동맹 갱신’ 협의는 정상회담 의제 조율 과정에 포함될 전망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주한미군을 북핵 억제 뿐 아니라 대중 견제의 축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단순한 한반도 방어가 아닌 남중국해·동중국해 등 중국 견제 작전에 주한미군이 동원되는 구조다.

이는 곧 한국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직·간접적으로 동참하라는 메시지로를 내포하고 있어 중국과의 외교 균형을 유지하려는 이재명 정부 입장에서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또한 트럼프는 한국의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현재 GDP 대비 2.8% 수준인 국방비를 5%로 올리려면 매년 20% 이상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전세계 주둔 미군의 소요 비용과 임무 등을 평가하는 재검토 작업의 결과물과 미국의 중장기 국방 지침서가 될 2025 국가방위전략(NDS)이 늦여름쯤 발표될 전망이다. 시기적으로 그 직전에 이뤄지는 한·미 정상회담 결과가 반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농산물 시장 개방,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같은 민감한 사안들도 정상회담에서 새 의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비관세 장벽 철폐를 지속 압박하고 있어 디지털 플랫폼 규제도 협상 대상으로 오를 것으로 보인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연구원은 여성경제신문에 “이제는 투자 합의서 없이 미국과 단계별로 이행안을 협상하는 방식”이라며 FTA와 같은 포괄적 방패 없이 미국과 일대일 협상에 나서는 한국이 더욱 불리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경제신문 유준상 기자  lostem_bass@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