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철 더봄] 실크로드 여행을 계획하며
[손흥철의 인문기행] 남경, 남경대학에서의 생활은 실크로드 여행을 위한 준비였다
바람 속에서 밥을 먹고 이슬을 맞으면서 잠을 자는 생활(풍찬노숙, 風餐露宿)도 하나의 즐거움으로 삼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인생의 과제를 찾아다니는 본성(역마직성, 驛馬直星)은 일평생 쉽게 해소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늘 길 떠날 준비를 하고 산다.
나의 이러한 떠돌이 근성(방랑벽, 放浪癖)은 가만히 살펴보면 하나의 DNA로 물려받았고, 그것은 국민학교(초등학교) 2학년 때 도둑 기차를 타고 면 소재지에서 가까운 1시간 거리의 지방 도시를 다녀오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각설하고, 한국의 해외여행 자유화는 88 올림픽이 끝난 후 1989년 1월 1일부터 전 국민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된 이후 국내에서 이루어지던 여행의 욕구를 해외로 넓혔고, 특히 어릴 적부터 관심을 가졌던 중국에 집중되었다.
중국은 면적이 자그마치 959만6960㎢로 남한의 95배에 이른다. 오랜 역사와 광대한 대자연과 다양한 문화가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유럽과 미주(美洲) 등지의 여행기도 쓰겠지만, 나의 관심사는 동양철학 나아가 동양의 인문학이라는 전문 연구 분야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중국의 모든 것이었다.
다만 오해는 마시라. 무조건 중국의 것을 좋아하고 문화적 평가를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중국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은 1992년 8월 24일 중국과 수교를 맺은 그 이듬해 1993년 6월 어느 날부터였다.
그 전에 대만(臺灣)을 약 달포 가까이 다녀오기는 하였지만, 그것으로는 전혀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중국의 남경(南京, 난징)대학 철학과에 방문 학자로 갈 기회가 생겼다. (남경은 중국의 사대고도(四大古都)로서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도시로 다음 기회에 남경 여행기를 쓸 예정이다)
겉으로는 연구 경험을 쌓고 중국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하러 간다는 미명이 있었지만, 내심으로는 물실호기(勿失好機)라 드디어 그 켜켜이 쌓인 여행의 욕구와 마음의 화(心火)를 해소할 기회가 생겼다.
1월 말 남경대학에 도착하여 신분 확인 절차를 마친 뒤 두달 동안 옛날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하루 12시간 이상을 중국어 공부에 매진하였다. Writing(寫字), Listening(聽力,听的懂), Reading(閱讀), Speaking(口語, 说出来) 등을 포함하여 중국어를 배우고, 현지인과 소통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하여 총력을 다하였다.
늘 대학노트를 들고 다니며 모르는 단어를 메모하였다. 한국 사람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열심히 중국 노래를 외우고 배웠다. 식당에 가서는 일일이 음식의 이름, 재료, 만드는 방법 등을 중국어로 묻고 메모하였다. 특히 당시 당의 공식 기관지인 인민일보(人民日報) 사설(社說)을 매일 직접 전문을 중국어로 쓰고 병음 부호를 달고 사전을 찾아 뜻을 풀이하고, 해석한 후 그것을 읽고 정리하였다.
그리고 내게 중국어 학습을 도와주는 중국인 보도교사(辅导老师라 하는데 가정교사의 뜻이다. 그러나 내가 그래도 한국에서 선생인데 이 학생을 선생이라 부를 수 없어 辅导学生이라 불렀다.)에게 발음과 해석상의 문제를 교정받았다. 한국어 해석 외에는 모두 중국어로 진행하였다.
두 달이 지난 후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거나 간단한 시비(是非)를 중국어로 따지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물론 많이 모자랐다. 혹시 중국어를 새로 배우는 분은 이 방법을 재현해 보면 최고의 효과를 볼 것이다.
남경대학에서 4개월 동안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였다. 황산(黃山)과 태산(泰山)을 다녀왔고, 상해(上海) 항주(杭州) 소주(蘇州) 진강(鎭江) 양주(楊州) 추성(鄒城, 추현(鄒縣)) 서주(徐州) 적벽(赤壁) 무석(無錫) 등지를 다녀왔다. 가히 강소성(江蘇省) 절강성(浙江省)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 상해 등지를 자유롭고 거침없이 여행하는 종횡사해(縱橫四海)하였고, 새로운 세계를 누비고 다니며 사람과 자연 속에서 새로운 기운을 느끼며 만유사해(漫遊四海) 하였다. 그리고 세계 각국의 많은 친구도 생겼다. 이들 도시의 여행기도 순서대로 올릴 것이다.
그야말로 이 시기는 내게 꽃처럼 아름답고 화려한 인생의 매우 즐거운 한때 곧 나의 화양연화(花樣年華)였다. 그러나 최고의 한때(아직도 그러한 즐거움은 채워지지 않았다)는 아니었고, 머릿속에는 꼭 가야 하는 Bucket List의 첫머리에는 실크로드(비단길, 絲綢之路)가 있었다.
그런데 남경대학 유학생부 판공실에 알아보니,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 유학생이 비용의 반을 내면 학교가 반을 지원하는 약 20일 동안의 실크로드 여행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는 정식 유학생은 아니었지만, 지원이 가능한지 물어보니 가능하다고 하였다. 지금은 그런 프로그램은 없지만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특별한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중국의 치안은 그렇게 나쁜 수준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로 외국인이 여행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다. 그런데 모든 수속을 학교의 유학생부 판공실에서 다 처리하였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이런 여행은 특권 중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참가자 전원이 모여서 사전 정보를 얻고 주의 사항을 들었다. 유럽, 중남미, 일본 동남아 유학생 약 15명 정도가 참가하였다.
학교에서 계획한 여행 코스는 남경에서 서안(西安), 난주(蘭州), 하서주랑(河西走廊), 감숙성(甘肅省) 가욕관(嘉峪關), 돈황(燉煌), 토로번(吐魯蕃), 신강(新疆)의 오로목제(烏魯木齊), 천산(天山) 천지(天池, 천산의 천지), 남산목장(南山牧場), 공산당의 혁명기지 연안(延安) 등을 돌아서 남경으로 복귀하는 왕복 약 1만km의 여정이었다. 이 길은 중국의 근현대사뿐만 아니라 고대사 및 변방 문화와 역사에 얽힌 현장이며, 예나 지금이나 꿈의 길이다.
앞으로 중국 여행에서 지명(地名)은 간체(簡體)가 아닌 번체(繁體, 약자가 아닌 본래 한자 형태)로 표기하며, 중국어 병음 발음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를 위하여 한글 발음으로 표기할 것이다. 그리고 당시 여행에서 찍은 사진은 지금처럼 고화질 사진이 아니어서 상황에 따라 한국과 중국의 인터넷에서 사진 자료를 차용하고 그 출처를 정확하게 밝힐 것이다.
여성경제신문 손흥철 전 안양대 교수·중국 태산학술원 객좌교수 chonwangk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