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타운 2.0] (53) 식사 짝꿍부터 임종까지···'38년 차' 유당마을의 맞춤형 노하우

조선화 부원장·최성길 복지팀장 인터뷰 1988년 설립된 국내 최초 실버타운 실버타운·재가복지·주간보호·케어홈까지 장기근속 인력, 생애주기별 고밀착 케어

2025-07-31     김정수 기자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유당마을은 1988년 문을 연 국내 최초의 실버타운이다. 입주 어르신은 300여명, 최고령은 97세에 달한다. 10년, 20년 이상 근속한 장기 재직 인력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김정수 기자

"오랜 운영 경험에서 나오는 안정성과 체계화된 시스템이 유당마을의 가장 큰 강점입니다. 경력이 짧은 실버타운은 문제 발생 시 우왕좌왕하는 사이 어르신이 피해를 볼 수 있죠. 유당마을은 다양한 상황을 겪으며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모든 대응 절차를 시스템화했습니다. 전 직원이 매뉴얼에 따라 즉시 대응하고 조치합니다."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유당마을은 1988년 문을 연 국내 최초의 실버타운이다. 입주 어르신은 300여명, 최고령은 97세에 달한다. 10년, 20년 이상 근속한 장기 재직 인력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실버타운·재가복지센터·케어홈·부속 의원까지 함께 운영하며 최근에는 주간보호센터도 신축 중이다. 어르신의 건강 변화에 따라 이동 없이 연속적으로 서비스를 연계할 수 있는 생애주기 형 복지 시스템을 갖췄다.

'입주한 곳에서 끝까지 머무를 수 있게 하자'는 철학은 입주자 대응, 직원 교육, 서비스 설계 전반에 반영돼 있다. 식사 짝꿍 지정좌석제, 하루 세 끼를 활용한 건강 관찰, 응급상황 대응 체계 등 일상 디테일에 강한 것도 특징이다. 장기근속 직원들은 어르신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로 건강 이상을 감지해 낸다.

31일 여성경제신문과 만난 조선화 부원장(16년 차)과 최성길 복지관리팀장(8년 차)은 "어르신들은 직원을 '맥가이버'라고 부르신다"며 "어르신과 보호자 모두에게 신뢰를 주는 것을 운영의 최우선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수 기자

37년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서비스는 모두 매뉴얼화돼 있다. 어르신이 '어' 하면 '아'라고 알아듣는 대응력이 기본이다. 31일 여성경제신문과 만난 조선화 부원장(16년 차)과 최성길 복지관리팀장(8년 차)은 "어르신들은 직원을 '맥가이버'라고 부르신다"며 "어르신과 보호자 모두에게 신뢰를 주는 것을 운영의 최우선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강조했다.

ㅡ유당마을은 입주자 건강 상태에 따라 입주 공간이 나뉜다고 들었다. 구체적인 기준과 서비스 차이는 무엇인가.

"입주자의 건강 상태와 일상생활 수행 능력에 따라 공간을 구분해 운영하고 있다. 11년 된 신관은 85세 이하, 보장구 없이 보행이 가능한 비교적 건강한 어르신을 위한 공간으로 독립생활이 가능한 분들을 대상으로 한다. 기본적인 생활 지원 위주의 서비스가 제공된다.

37년 된 본관은 85세 이상, 보장구를 사용하되 인지 저하가 없는 어르신이 입주한다. 청소·세탁·식사 배식·약 관리 등 일상 지원이 필요한 분들이다. 현재 순차 리모델링 중이다. 케어홈은 낙상 위험이 있거나 인지 저하로 독립생활이 어려운 어르신을 위한 전담 공간이다. 간호·간병 등 24시간 돌봄 서비스를 중심으로 더 집중적인 지원이 이뤄진다."

유당마을은 신관과 본관이 외형상 분리돼 있지만 내부는 순환형 구조로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김정수 기자

ㅡ전체 시설 및 운영 구조는 어떻게 구성돼 있나.

"실버타운(노인복지주택), 재가복지센터(홈케어), 유당부속의원, 요양시설(케어홈) 등 4개 시설로 구성돼 있다. 현재 케어홈은 별도 신축 중이며 내년 1~2월 준공 예정이다. 완공 후 기존 공간은 약 40인 규모의 주간보호센터로 리모델링할 예정이다.

주간보호센터는 경증 인지 저하 어르신이 낮 동안 머무르며 식사, 산책, 프로그램 등을 이용하는 공간이다. 케어홈 전환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줄이고 퇴소 없이 익숙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이후 주간보호센터까지 더해지면 유당마을은 실버타운, 재가센터, 주간보호, 요양시설, 의원을 모두 갖춘 통합 복지 시스템을 완성하게 된다."

유당마을 신관 42평형(전용면적 81.37㎡)과 본관 24평형(전용면적 46.68㎡) 객실 내부 모습을 담은 영상. /김정수 기자

ㅡ'원스톱 구조'로 인해 건강 상태가 달라져도 외부 이동 없이 한 공간에서 지낼 수 있다. 실제 운영 방식이 궁금하다.

"건강한 상태로 실버타운에 입주한 어르신이 추후 신체 기능이 저하돼도 내부 재가복지센터를 통해 방문요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건강한 입주자도 필요에 따라 세탁·청소·식사 지원 같은 생활 서비스를 추가할 수 있다.

방문요양만으로 생활이 어려워지면 24시간 돌봄이 가능한 케어홈으로 전환할 수 있고 실제로 케어홈에서 말년을 보내는 어르신도 많다. 의료 중심의 요양병원과 달리 일상생활 중심의 돌봄을 지향하며 입주 초기부터 임종에 이르기까지 한 공간에서 생활이 가능한 내부 순환형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장례 지원은 포함돼 있지 않지만 자녀들이 마지막까지 함께할 수 있도록 서비스 연계 체계를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케어홈은 낙상 위험이 있거나 인지 저하로 독립생활이 어려운 어르신을 위한 전담 공간이다. 간호·간병 등 24시간 돌봄 서비스를 중심으로 더 집중적인 지원이 이뤄진다. 현재 59인 정원으로 3개 층까지 확장됐다. /김정수 기자

ㅡ유당마을 케어홈은 요양시설임에도 장기요양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장기요양보험과 무관하게 전액 본인 부담 구조로 운영된다. 과거엔 '유당너싱홈'이라는 이름으로 장기요양보험 시설도 운영했지만 29인 규모로는 적자 폭이 컸고 요양급여 수준에 맞춰 서비스 질이 하향 평준화되는 문제가 생겼다. 실버타운 수준의 식사와 외부 강사 프로그램 등을 유지하려면 재정이 맞지 않았다. 외부가 아닌 기존 유당마을 실버타운 입주자가 연계되다 보니 어르신과 보호자들도 기존 실버타운보다 저렴한 요금에 불안감을 드러냈다.

케어홈은 2014년 오픈했고 기존 너싱홈은 2015년 7월 운영을 중단했다. 보증금을 받고 민간형 요양시설처럼 운영하면서 어르신의 인권을 최우선으로 두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식사, 위생, 잔존 기능 유지 등에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한 결과 늘 만실을 유지했고 현재는 59인 정원으로 3개 층까지 확장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최근 일부 공실이 생겼지만 전반적으로 운영 안정성이 높은 편이다."

유당마을에는 의원과 한의원이 함께 있는 양한방 통합진료체계가 운영되고 있다. 사진은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유당부속의원 카운터, 웨어러블 로봇, 재활운동실, 유당한의원 모습이다. 이 외에도 물리치료실, 통증치료실 등 다양한 부대시설이 마련돼 있다. /김정수 기자

ㅡ식사 운영 방식(지정좌석제, 식사 짝꿍, 배달 최소화 등)은 어떤 배경에서 비롯됐고 입주자 반응은 어떠한가.

"하루 세 번 함께 식사하는 '식사 짝꿍'은 어르신들의 중요한 사회적 관계다. 입주 시 나이, 학력, 건강 상태, 종교 등을 종합 고려해 어울릴 만한 짝을 배정하고 기존 입주자에겐 사전 양해를 구한다. 갈등이 생기면 좌석을 조정해 관계를 재정비하기도 한다.

룸 배달은 아플 때만 월 3회까지 무료 제공하며 그 외에는 간병 서비스를 신청해야 한다. 이는 어르신들이 쉽게 식당 이용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이러한 운영 방식은 신체 활동을 유도하고 사회적 단절을 막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당마을에서 식당은 300여명의 모든 입주 어르신을 가장 잘 관찰하고 돌볼 수 있는 핵심 생활 관찰 지점이다. 사진은 식당 앞 복도 모습 /김정수 기자

ㅡ유당마을에서는 식당을 매우 중요하게 운영한다고 들었다. 단순한 식사 공간을 넘어 어떤 의미와 기능이 있는가.

"식당은 300여명의 모든 입주 어르신을 가장 잘 관찰하고 돌볼 수 있는 핵심 생활 관찰 지점이다. 본관·신관·케어홈 모두 식사 시간이 다르므로 아침 7시부터 차례대로 어르신들이 식당에 모인다. 직원들은 이 시간을 활용해 어르신의 컨디션, 감정·행동 변화 등을 직접 확인한다.

응급 대응의 거점이기도 하다. 어르신이 식당에 나타나지 않으면 즉시 전화를 걸고 연락이 닿지 않으면 방으로 찾아가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낙상이나 의식 저하 같은 긴급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90식' 원칙은 건강 유지뿐 아니라 이상 징후를 조기에 발견하는 안전장치 역할도 한다.

직원들은 출근 전 간호기록이나 상담 일지를 숙지하고 식사 시간에 어르신에게 먼저 말을 걸며 상태를 세심히 살핀다. 이런 관심은 신뢰로 이어지고 어르신들은 이를 가족에게 자랑처럼 이야기한다.

유당마을은 '관심이 최고의 약'이라는 철학 아래 어르신의 정서까지 살피는 돌봄을 지향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돌봄을 받고 있다'는 확신이 어르신의 행복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이 같은 정성은 입소 초기 '생활비가 아깝다'는 보호자의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고향찻집(위쪽)에선 매일 오후 어르신들에게 무료 차와 간식이 제공되며 담소와 미니콘서트가 함께하는 정서적 쉼터 역할을 한다. 맞은편 미용실(아래쪽)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으로 통한다. 원장은 어르신 간의 비밀 이야기도 다 알고 있을 정도다. /김정수 기자

ㅡ초고령화에 따라 인지 저하·치매 어르신이 늘고 있다. 복지팀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인지 저하 어르신은 섬망, 망상, 감정 기복 등의 변화를 겪기 쉽다. 이러한 징후가 나타나면 보호자 상담과 병원 진료를 거쳐 장기요양등급을 신청하고 등급 전이라도 비급여 서비스로 돌봄을 지원한다. 가능한 한 기존 생활 공간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문제는 인지 저하로 인한 사회적 고립이다. 반복 언어 사용 등으로 교류가 어려워지고 다른 입주자가 거리감을 두면서 어르신이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장기요양등급을 받아도 하루 3시간까지만 방문요양이 가능하고 주말은 제외돼 돌봄이 충분치 않다. 비급여 서비스를 추가로 이용하려 해도 시간당 1만2700원의 비용이 부담돼 장시간 돌봄 유지가 어렵고 결국 외부 요양원으로 전원하는 사례도 있다.

실제론 경증인 어르신이 고립을 이유로 퇴소하는 사례가 운영진에겐 가장 안타깝다. 낯선 환경이 인지 저하를 더 악화시키기 때문에 익숙한 공간에서 생활이 중요하다. 방문요양 서비스가 하루 5시간 이상으로 확대된다면 본인 부담은 줄고 어르신과 가족 모두의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당마을 도예실. 이곳에서 어르신들이 만든 도자기와 그릇은 내부 카페에 전시돼 있다. /김정수 기자

ㅡ입주자와 함께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20년간 유당마을에 거주한 어르신이 케어홈에서 임종을 맞이한 순간이다. 한 사람의 노후를 마지막까지 함께 했다는 사실이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임종 전 2주 동안 조용히 고통 없이 지내시며 가족의 손을 잡고 평온하게 떠나셨다. 이후 유족이 감사 인사와 함께 인절미를 보내오며 깊은 인연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부부로 입주한 남성 어르신 중 부인을 먼저 떠나보낸 뒤 새로운 입주자와 관계를 맺고 함께 일상을 나눈 사례도 기억에 남는다. 여성 입주자는 나이 차이와 종교 등을 이유로 거절했지만 남성 어르신의 자녀들이 직접 찾아와 '아버지의 여자 친구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면서 관계가 시작됐다. 두 분은 당구를 치고 외식을 하며 교류했다. 이후 남성 어르신이 케어홈으로 옮긴 후에도 여성 어르신이 지속적으로 방문했다.

남성 어르신이 임종하신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자녀가 매주 유당마을을 찾아 여성 어르신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해외에 있는 여성 어르신 자녀 대신 곁을 지켜주는 모습에 운영진도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렇게도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유당마을 건물의 맨 아래층에는 입주자들이 운동 삼아 걸어 올라갈 수 있도록 경사로가 설치돼 있다. /김정수 기자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