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移민국] (7) 중국인 포비아 깬 제주 한족 중국인 공동체···"이 사람들 없으면 농사 못 지어요"

제주 한경면, 일조량 높아 작물 재배 활발하지만 평균 연령 51세···고령자 비율 30% ↑ 일손 '절벽' 무비자 입도 후 신앙 중심으로 결속···공동 생활 한족, 조선족과 체류 자격 달라···도시로 못 간다

2025-09-08     허아은 기자

2024년 기준 한국 체류 외국인은 265만명, 전체 인구의 5.2%에 이른다. 한국은 더 이상 단일민족 국가가 아니며 다민족 사회이자 글로벌 이주 국가를 향해 진입한 상태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단일민족 도그마에 머물러 있다. 이 시리즈는 전국 곳곳에 형성된 이민자 커뮤니티를 직접 방문해 체류 외국인의 생활 양식 등을 기록하고 지역별 이주 사회의 모습과 서사를 '이민자 지도'로 구축하는 것을 시작점으로 삼는다. 이후에는 외국인 비자 제도 전반과 주요 체류 자격별 현황을 살펴봄으로써 한국 이민 정책의 큰 그림을 조망한다. 이 과정을 통해 이민정책 전반을 통합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시스템의 필요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짚어볼 것이다. [편집자주]

제주도는 전국 밥상에 오르는 각종 작물의 주요 생산지다. 그중에서도 일조량이 풍부한 서부 지역은 도내 작물 생산의 중심지로 꼽힌다. 제주시 한림읍·한경면과 서귀포시 대정읍·안덕면이 제주 서부로 묶인다. 마늘은 제주 전체 생산량의 87%가 이 지역에서 나오고 조생양파와 콜라비도 80% 가까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마늘과 양파는 한경면의 대표 작물이다. 제주시 최서단에 위치한 한경면은 제주시 지역 중 추자도, 우도 등 부속 도서를 제외할 때 유일한 '면'이다. 차귀도와 수월봉, 신창~용당~용수 해안도로 등 관광지가 속해 있긴 하나 제주시 동부나 서귀포시 중문과 비교할 때 외지인의 발길은 잦지 않다.

제주도는 전국 밥상에 오르는 각종 농산물의 중요한 생산지다. 그중에서도 일조량이 풍부한 서부 지역은 도내 작물 생산의 중심지로 꼽힌다. /장세곤 기자

한경면의 주민들은 많은 작물을 길러내고 있으나 고령 인구가 많은 탓에 재배와 수확을 비롯한 전 과정에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024년 기준 한경면의 전체 인구 9561명 중 65세 이상은 2877명으로 인구의 30%가 고령자다. 제주도 전체 고령자 비율은 18.9%였으므로 한경면의 고령화 현황은 매우 심각한 편이다. 실제로 2023년 통계에 따르면 한경면 주민의 평균 연령은 51.3세로 도내 5위를 차지했다.

한경면의 만성적인 일손 부족 현상을 보완하는 것은 한족 중국인 이주민들이다. 이들은 기독교 신앙을 기반으로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은 지난 7월 초 이들 공동체의 구심점인 A교회를 찾았다.

A교회는 외관 상 여타 교회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A교회 1층 예배실 옆에는 '샤워실'이 마련돼 있다. 50명은 거뜬히 수용할 수 있는 주방 역시 볼 수 있다. 교회 건물 숙소에 거주하는 30여명의 중국 이주민들이 일을 다녀온 뒤 몸을 씻고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한 시설이다.

이들 외에도 A교회 근처 약 15개의 숙소에는 200명에 가까운 중국 이주민이 3~7명씩 모여 살고 있다. 이들은 오전 4시 30경부터 교회 앞에 모여 선주민 농장에서 운행하는 승합차를 타고 면 곳곳의 감귤 하우스와 마늘밭 등지로 떠난다. 출근 행렬은 6시까지 이어진다.

한경면의 만성적인 일손 부족 현상을 보완하는 것은 종교를 중심으로 모인 중국 이주민들이다. 이들은 기독교 신앙을 기반으로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허아은 기자

이들 이주민과 선주민의 허브 역할을 하는 것은 중국인 장 목사다. 농장을 운영하는 선주민이 장 목사에게 연락해 인력이 필요하다고 하면 장 목사가 중국 이주민을 이들 농장에 배치해주는 식이다. 일조량이 많고 경작지가 넓으며 강수량이 충분한 탓에 한경면에서는 사계절 내내 일손 수요가 끊이지 않는다.

A교회에서 섬 안쪽으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조수1리 K농장에서는 감귤, 한라봉, 천혜향을 비닐하우스 30동에 걸쳐 재배한다. 이날 총 8명의 중국 이주민 일손이 장 목사의 소개를 통해 이 농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K농장은 장 목사를 통해 일손을 5년째 소개받고 있다. 농장 주인 김씨(가명)는 "이 동네에서 장 목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K농장을 비롯한 인근 농장들은 그날 몇 명의 인력을 공급받느냐에 따라 작업량이 결정될 만큼 극심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이날 K농장에서는 한라봉 적과 작업이 한창이었다. 적과란 나무에 달린 열매의 수를 조절해 상품의 품질을 높이는 작업을 말한다.

7월 초, 구름 한 점 없는 날의 오후 3시. 한라봉 하우스 내부 온도는 45°C를 넘어섰다. 중국 이주민들은 얕은 사다리에 올라타 분주히 감귤을 솎아 내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방울져 흘러내릴 정도의 더위였으나 이들은 중국어로 대화하며 밝은 얼굴로 작업을 지속했다.

7월 초, 구름 한 점 없는 날의 오후 3시. 한라봉 하우스 내부 온도는 45°C를 넘어섰다. 중국 이주민들이 적과 작업을 하고 있다. /장세곤 기자

김씨가 한경면의 일손 부족을 토로하던 와중 한 여성 이주민이 중국어로 무언가를 질문했다. 김씨는 몇 번 되묻더니 "이쪽"이라고 안내했다. 김씨는 중국어를, 이주민은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고 했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아도 손짓과 표정, 반복된 경험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김씨는 "서 있던 자리에서 작업을 다 했는데 더 작업할 나무가 어디 남아있냐는 뜻인 것 같다"고 했다. 김씨의 안내에 이주민들은 사다리를 끌고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씨는 "(장 목사에게) 일손을 많이 보내달라고 늘 이야기하지만 이야기한 만큼 보내주는 날은 드물다"며 "다른 농장도 사정이 비슷하니까 이해한다"고 했다.

장 목사가 한경면에 정착한 것은 7년 전 일이다. 제주 중에서도 한경면을 고른 것은 당시 한경면 땅값이 제주 도내에서 가장 저렴했기 때문이다. 수중에는 20만원뿐이었지만 그는 제주에 체류 중인 동포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A교회의 전신인 '한경 사랑의집'을 세웠다.

장 목사는 이전에도 한국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 그가 처음 한국에 온 것은 지난 1993년 가을이었다. 한중수교가 맺어진 다음 해, 중국 선양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장 목사는 '한국에서 중국산 약을 팔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서울에 발을 디뎠다.

'코리안 드림'을 꾸었지만 이미 한국에는 '중국인이 파는 약은 다 가짜'라는 인식이 파다한 상황이었다. 돈은 벌 수 없게 됐지만 장 목사는 서울의 중국어문선교회를 통해 기독교를 접했다. 목회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후 장 목사는 중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20년 이상이 지나고 나서야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본국에서 전도하다가 5년의 수감생활을 마친 뒤였다.

장 목사는 중국에서 선교하다가 5년간 수감 생활을 했다. 그의 손목에는 수갑 자국이 남아있다. /장세곤 기자

제주도에 중국인 이주민이 대거 유입된 것은 지난 2002년 정부가 무비자 제도를 시행하면서부터다. 이는 제주 관광 활성화를 위해 외국인을 비자 없이 30일간 체류할 수 있도록 한 제도였다. 많은 중국인이 이 제도를 통해 이전보다 쉽게 제주에 입도했다.

중국인 유입은 관광을 목적으로 한 단기 체류가 주를 이뤘다. 제주시 연동의 누웨마루거리(구 바오젠거리)는 한때 ‘제주 속 중국’으로 불릴 정도로 많은 중국인이 찾기도 했다. 2014년 기준 제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 330만 명 중 86% 이상이 중국인이었다. 하지만 2016년 중국 정부가 한한령을 발동하면서 관광객 수는 급감하며 순우리말인 '누웨마루'로 거리명이 변경됐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본국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 일하기 위해 제주행을 택했고, 남았다. A교회 중국 이주민의 하루치 일당은 7~11만원 사이다. 글로벌 급여/생활비 분석 플랫폼 샐러리 엑스퍼트(SalaryExpert)에 따르면 중국 현지 농장 노동자의 하루 평균 일당은 160~176 위안(CNY) 수준으로 이는 한화 기준 약 3만원 내외에 불과하다. 단순 비교해도 제주에서의 일당은 현지의 두 배 이상이며 작업량이나 숙련도와 무관하게 고정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이들에게는 큰 매력으로 작용한다.

A교회 공동체 중국 이주민 중에서도 여성 임금이 남성 임금에 비해 2~3만원 낮다. 보통 때는 여성 일손을 찾는 농가가 더 많다. 적과처럼 하나하나 손이 가는 작업이 많기 때문이다. 남성 일손 수요는 수확한 작물을 도매업자에게 넘기는 시기에 늘어난다.

장 목사를 비롯한 이곳 이주민들은 모두 한족이다. 조선족 이주민처럼 서울 대림동이나 수원 팔달구 등 대도시 인근에 자리잡을 수 없었던 것은 체류 자격과 언어 문제 때문이다.

한국 체류 외국인 중에서는 중국 국적자가 가장 많다. 지난해 기준 265만명의 외국인 중 36.2%가 중국 국적자였다. 하지만 이들 중 대부분은 조선족으로 이들은 F-4(재외동포) 비자나 H-2(방문취업) 비자를 보유한다. 해당 비자로는 요양보호사 등 서비스업에 상대적으로 쉽게 종사할 수 있다. 연변 조선족 자치구 내 학교는 한국어를 정규 교육과정으로 편성하고 있기에 입국 후 내국인과 소통도 어렵지 않다.

반면 한경면에서 공동생활 하는 중국 이주민 중 한국에서 노동이 가능한 비자를 보유한 이는 거의 없다. 무비자 제도가 허락하는 30일에 맞춰 본국에 다녀오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비자 없이 체류하고 있다. 법제 면에서 이들은 미등록, 즉 불법 체류자다.

한경면에서 공동생활 하는 중국 이주민 중 한국에서 노동이 가능한 비자를 보유한 이는 거의 없다. /장세곤 기자

지금은 체류 자격이 없는 이들일지라도 선주민의 환대를 받고 있다. 선주민 감귤농장 주인 박씨(85세)는 "(A교회 중국 이주민들을) 잡아갈 거면 차라리 나를 잡아가라고 하겠다"라고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 같은 호응을 얻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랑의집이 문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절, '신고해서 추방해버리겠다'는 협박은 예사였다고 장 목사는 회상했다. 그는 밤길에 '묻지마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외국인을 향한 지역사회의 거부감은 제주 전역에 걸쳐 드러나는 현상이다. 특히 중국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관광객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실제로 제주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동안 단속된 외국인 범죄 115건 중 65%가 기초질서 위반이었다. 무단횡단은 하루 평균 50건씩 신고됐고 버스 내 흡연, 노상 방뇨, 쓰레기 투기 같은 행위도 논란이 됐다. 2월에는 중국인 관광객이 사찰 납골당에서 유골함을 훔쳐 금전을 요구한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달에는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우도면 하고수동해수욕장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설치했다가 민원에 철거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작년에는 제주시 연동 거리에서 중국인 관광객 아이가 가로수 인근 화단에 용변을 보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곁에 있던 보호자로 추정되는 여성은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지난달에는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우도면 하고수동해수욕장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설치했다가 민원에 철거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SNS

이 같은 사례는 대부분 단기 체류 관광객에 의한 일탈 행위지만 '중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체류 목적이나 배경을 가리지 않고 매도해 비난하는 시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에 관해 장 목사는 "문제를 일으키는 관광객과 매일 새벽 밭에 나가 일하고 밤에는 예배드리는 우리 공동체를 같은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묶어 보지는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실제로 A교회 공동체는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으며 숙소·식사·예배 모두 공동 규율에 따라 운영된다. 공동체는 내부적으로 식사당번과 청소조를 운영하며 부부의 경우에는 결혼식 사진이나 혼인신고서를 제출해야 한 방을 배정받는다. 장 목사는 "지역 주민들께 좋지 않은 인식을 줄 수 있는 일은 만들지 않기 위해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제주도민은 상대적으로 외지인 유입에 보수적인 경향이 있다. 6년 전인 2019년에 시행한 제주의 사회지표 조사 결과를 보면 외지인 인구 유입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진 제주도민은 전체의 40.9%를 차지했다. 여기서 외지인은 같은 한국인일지라도 제주도가 아닌 지역에서 온 이들을 말한다. 같은 한국인에 대한 유입도 경계하던 만큼 이주민에 대한 수용성은 더 낮았다.

신고나 폭행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던 것은 선주민 사이에서 '이들(중국 이주민)이 없으면 도저히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장 목사는 "요즘은 근처 식당에 갈 수 없을 지경이 됐다"고 귀띔했다. 장 목사를 알아본 선주민이 말없이 식사 비용을 결제하고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졌기 때문이다.

전통적 농촌의 일손 부족 문제는 제주 한경면만의 걱정거리가 아니다. 농업은 특성상 작업량이 많은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의 일손 수요가 크게 차이 난다. 따라서 장기간 계약하는 고용 형태는 부적합하다. 단기로 계약했더라도 날씨가 지나치게 덥거나 추워 작업을 미뤄야 하는 경우가 잦다. 작물이 늦게 익을 경우에도 계획대로 인력을 배치해 작업을 진행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인구마저 줄어들자 생업으로 작물을 재배하는 선주민들은 노동 공백을 메울 방법을 필요로 하고 있다.

전통적 농촌의 일손 부족 문제는 제주 한경면만의 걱정거리가 아니다. 농업은 특성상 작업량이 많은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의 일손 수요가 크게 차이 난다. 따라서 장기간 계약하는 고용 형태는 부적합하다. /장세곤 기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 법무부는 지난 2015년 '계절근로자 제도'를 도입했다. 외국 인력을 단기간 고용해 농번기 일손 수요를 채우자는 취지다. 하지만 이 제도 역시 인력을 최소 90일 이상 고용해야 하고 일감이 없는 날에도 임금을 지급해야 해 농가 부담이 크다. 따라서 모든 농가가 이 제도를 활용할 수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빈틈을 파고들어 돈을 버는 이주민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에 정착한 지 오래된 선주 체류 이주민은 몇 명의 '후배' 이주민들을 모아 지역을 이동해가며 일손을 제공하고 있다. 양파 수확 철인 7월에는 전라남도 무안에 머물며 일하다가 김장용 배추를 심는 8월 하순이 되면 중부지방으로 올라오는 식이다. 이 경우 선주 이주민은 한국인과 소통은 물론 일거리가 있는 지역으로의 이동을 책임지기에 '소개비' 명목의 돈을 일부 받는다.

하지만 A교회의 장 목사는 선주민과 이주민을 연결해주는 대가로 어떤 것도 받지 않는다. 농장주는 그날 치 일당을 일한 이주민에게 직접 지급한다. 이 덕분에 장 목사가 소개하는 중국 이주민의 일당은 다른 이주민 일당 대비 2~3만원 저렴하다.

장 목사는 선주민 농장주와 중국 이주민을 연결해준다. 잦은 통화로 청력이 떨어져 스피커폰 모드로 통화한다. /허아은 기자

장 목사는 이곳 선주민들이 이방인인 중국 이주민 공동체를 포용하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소개비가 없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봤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소개비로) 하루에 200만원씩도 벌 수 있다"면서도 "욕심 부리지 않아야 하나님께서 계속 도우실 거라고 믿는다"고 신념을 드러냈다.

이날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장 목사는 13통의 전화를 받았다. 발신자는 모두 인근 농장주였다. 그들은 장 목사에게 "내일 (일손) 몇 명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장 목사는 장부와 단체 메신저를 확인하더니 "알겠다" 혹은 "그만큼은 어렵고 2명 적게 보내주겠다"고 답한 뒤 "내일 몇 시까지 교회 앞으로 데리러 오라"고 일렀다. 하루에도 수십 통 전화를 하다보니 청력이 떨어져 장 목사는 꼭 스피커폰 기능을 사용한다.

장 목사는 지난 7년간 이곳 한경면의 일손 부족 상황을 누구보다도 깊게 체감했다. 그는 상황이 '처절하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인근 농장주는 농장의 하루치 작업량이 그날그날 받는 일손 수에 따라 결정된다고 했다. 한 감귤 농장주 노인은 허리가 완전히 굽어 나무 위쪽에 매달린 열매는 손도 대보지 못하고 모두 썩혀 버리고 있었다.

전화 통화마저 어려워하는 노인들은 사전 연락도 없이 A교회로 찾아와 일손을 보내줄 것을 부탁ㅎ간다. 장 목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울면서 밭에 나가 일하더라"라며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괴로움을 호소하는 선주민이 많다"고 했다.

오후 5시면 일하러 갔던 중국 이주민들은 타고 갔던 승합차를 타고 교회 앞으로 돌아온다. 식사 준비조는 저녁 식사를 차리고 다른 이들은 샤워를 한다. /허아은 기자

오후 5시부터 교회 앞은 다시금 붐빈다. 승합차를 타고 뿔뿔이 흩어졌던 이들의 퇴근 행렬이다. 식사 준비조는 곧바로 2층 주방으로 올라가 저녁을 준비한다. 이날 메뉴는 갈치조림과 단호박볶음이었다. 쌀과 김치 외 음식은 이들이 일하는 농가에서 주는 재료로 만든다. 갈치와 단호박 역시 어느 농장주가 선물한 것이었다.

준비조가 요리를 완성하면 샤워를 한 나머지 이주민들이 식탁에 둘러앉는다. 아무리 시장해도 식전 기도는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42세 여성 이주민 장페이(가명)씨는 이날 애호박 하우스에서 포장지를 씌우는 작업을 했다. 땀에 절은 몸을 씻고 식당으로 올라 온 그는 "요리를 대량으로 하다보니 냄새도 오래 맡아야 해서 배가 많이 고프다"면서도 "전도사님이 기도할 때까지 꼭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중국 이주민 구훙원(가명) 씨가 저녁 식사 메뉴 재료인 단호박을 손질하고 있다. 이는 일하러 갔던 농장에서 받은 것이다. /장세곤 기자

이들이 제주에 체류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비단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A교회를 중심으로 모인 200여 명의 중국 이주민 중 절반 이상은 본국에서부터 기독교인이었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공산주의에 입각한 국가 무신론을 추구하는 탓에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활동을 하기 쉽지 않다. 법령에 따르면 당원이 아닌 이상 종교를 가지는 것은 자유지만 정부 정책에 협조하지 않으면 종교로 인정받기조차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지난 1999년 '사교조직 해체 및 사교활동 방지와 처벌에 관한 규정'과 '반사교 법률'을 통해 종교단체가 등록 과정을 거치지 않을 경우 사교로 간주하고 노동교화 등 형을 집행하고 있다.

허기지더라도 저녁 식사 전 '식전 기도'는 필수다. /허아은 기자

중국에도 기독교 신자가 모일 수 있는 교회가 있지만 설교 내용은 당국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 목사는 본국에서 사역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설교 시간에는 공안이 예배당 뒤쪽에 서서 무슨 말을 하는지 내내 감시한다"고 했다. 그들에게 밉보일 경우 교회를 운영할 수 없다.

장 목사에 따르면 중국의 기독교 탄압은 시진핑이 주석이 된 이후 심해졌다. 그는 "(공동체 이주민들은) 집에서 몰래 예배드리고 찬양했던 이들"이라며 "한국에 와서는 눈치 보지 않고 신앙 활동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종교 활동을 상당 부분 제한하고 있다. 이주민들은 한국에서 자유롭게 찬송하고 예배드리는 것에 감사한다고 했다. /장 목사

A교회를 거쳐 본국으로 돌아간 이들은 400여 명에 이른다. 지금의 교회 건물은 이들이 보내온 헌금으로 지어졌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땅을 고르는 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주민들이 도맡았다.

장 목사는 "타국에서 이러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기적이라 감사하다"면서도 바라는 바가 있다고 했다.

첫번째는 장기간 한국에 머물러온 이들에게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부여해 달라는 것이다. 장 목사는 "지역사회에서 이들이 꼭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이들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2003년 '방문취업제·특별구제 조치' 제도를 시행해 조선족 동포에 대하 한시적 구제 조치를 시행한 바 있다.

장 목사는 이들이 체류 자격을 받는 것이 어렵다면 본국에 있는 자녀라도 한국에서 생활하며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주길 희망한다고 했다. 중국 내 기독교인 가정 상당수는 공산주의 교육에 대한 반감으로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실제로 장 목사와 함께 A교회에서 생활하는 원 전도사의 자녀들은 본국에서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다. 방학을 맞아 한국에 온 아이들을 바라보며 원씨는 "아이들도 자유로운 한국에서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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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 허아은 기자 ahgentum@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