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In] 전당대회 왜곡 논란과 제도에 대한 신뢰 위기
[신율 칼럼] 특정 세력에 좌우될 가능성 여론조사 반영 비율이 낮아 공당과 前 지도자 불신 심화
홍준표 전 시장의 발언 수위가 연일 높아지고 있다. 그는 "당시 윤(석열) 측 총괄본부장으로 지휘하던 권성동 의원이 당원투표에서 압승한다고 큰소리친 배경은 신천지 통일교 등 종교집단 소속 수십만명의 책임 당원 가입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을 보면 최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전 한국사 강사 전한길 씨의 발언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전한길 씨는 "전한길 TV 시청자 10만명이 당원으로 가입했다"라며 "좌파에는 개딸(이재명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이 있었다면 우파에선 제가 '우파의 개딸'을 만들어갈 생각이다. 수십만명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8월 전당대회에 누가 당대표로 나올지 모르지만, 전한길을 품는 자가 당대표 최고위원 나아가 집권 세력이 될 것"이라는 그의 발언이다. 홍준표 전 시장은 ‘과거’ 전당대회가 인위적인 세력에 의해 왜곡됐다고 주장한 반면 전한길 씨는 자신의 영향력을 기반으로 ‘미래’ 전당대회에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결국 전당대회 결과가 특정 세력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주장은 공통된다. 만약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상황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해당 주장들의 진위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실제로 홍 전 시장의 발언과 관련해 국민의힘 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법적 조치를 시사한 점을 보면 그가 홍 전 시장의 주장을 근거 없는 것으로 판단했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구체적인 증거나 사례를 확보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특정 세력이 대규모로 입당할 경우 전당대회 결과가 왜곡될 수 있다는 구조적 문제다. 이는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안이다. 전당대회의 본래 취지와 규칙이 훼손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책을 모색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국민의힘 윤희숙 혁신 위원장의 제안이 다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윤 위원장은 17일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석해 당대표를 ‘여론조사 100%’로 선출하자는 혁신안을 보고했다. 비록 해당 안건은 비대위의 회의적인 반응으로 무산되었지만, 그 제안 자체는 충분히 검토해 볼 가치가 있다. 역선택 방지 조항이 있든 없든 전당대회를 100% 여론조사 방식으로 진행한다면 적어도 지금과 같은 '확인할 수 없는 의혹 제기와 논란'은 차단될 수 있다. 나아가 결과에 대한 승복 논란도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도 여론조사가 일정 비율로 당대표 경선에 반영되고 있다. 국민의힘의 경우 당원투표 80% 지지자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20%가 반영된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의원 15% 권리당원 55% 국민 여론조사 30%를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여론조사의 반영 비율이 20%에서 30% 수준에 불과해 전당대회 왜곡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에는 부족하다.
이와 관련해 여론조사 반영 비율을 높이자는 의견에 반대하는 주장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반대 논리는 당대표를 선출하는 데 있어 당원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전적으로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인위적인 당원 확충’을 막기 위한 방안도 함께 제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그러한 제도적 보완책은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가장 절실한 과제는 제도에 대한 신뢰 회복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법조인 출신답게 ‘법의 활용’에는 능하지만 정작 그 법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를 제고하는 데에는 무관심해 보인다. 국민의힘 내부의 다양한 내홍 역시 그 중심에는 제도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결국 공당과 전직 국가 지도자 모두가 제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보다는 불신을 심화시키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제도에 대한 불신은 사회적 신뢰 자본의 훼손으로 이어지며 이는 곧 우리 시민사회의 구조적 취약성을 낳는다. 그렇게 되면 우리 민주주의의 건전성을 회복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진다.
어떤 방식이든 제도에 대한 불신은 반드시 해소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가 혼란 속에서도 균형을 유지하고 근본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세계지역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총무이사
통일부 정책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