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철 더봄] 인문기행 연재를 시작하며

[손흥철의 인문기행] 글을 쓰는 일에 대한 단상(斷想) 자족할 수 있는 글 써야 할 텐데 세상을 다닌 소회 정리할 예정

2025-08-03     손흥철 전 안양대 교수·중국 태산학술원 객좌교수

여기서 글을 쓰고자 마음을 먹고 어떤 글을 처음 시작해야 할까를 많이 고민하였다. 국민학교(초등학교의 우리 때 이름) 1학년에 입학하면서 중학교 국어 교사였던 부친이 일기를 쓰라는 숙제를 주셨다.

당시에는 60명 급우 가운데 절반 이상은 한글을 제대로 배우지 않고 입학하였으나, 나는 부모님과 형들 덕분에 한글을 제법 익혔고 그래서 조잡하나마 일기를 쓸 수 있었다. 그 후 가방끈(?)이 길어지면서 그동안 참 많이도 글을 써왔다.

그런데 글을 쓰면 쓸수록, 어떻게 말하는 게 정확한 어법이고 표현법인가를 생각하면서부터 글쓰기가 더 어려워졌다. 우리 말 어법에 '~는 ~'이라는 표현법이 있다. '~는 ~' 표현 다음에 어떤 말이 와야 하는가는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다르다.

먼저 ‘~는 ~’의 사전적 의미는 ‘나는’ ‘그는’ 등과 같은 표현에서는 ‘주격조사’이다. “학생이라면 수업에는 열중해야지”라는 표현에서는 강조의 의미를 나타낸다. 또 ‘소위 정치가라는 인간은’이라는 표현에서 비하적 의미를 지닌 보조사가 될 수 있다.

북경학회에서 필자 /손흥철

여기서 ‘글을 쓴다는 나’라고 할 때 내가 글을 잘 쓰면 그냥 ‘글을 쓰는 나’를 의미하지만, 내가 글을 잘 못 쓰면 ‘겉보기에는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인간이 어째 그 모양으로 글을 쓰나?’라는 조롱이나 비하의 표현이 될 수 있다.

지식을 얻기 위하여, 직업상 학생과 수강생을 가르치기 위하여 수많은 책을 읽었고 그러면서 읽은 내용을 나름으로 평가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여러 형태의 남의 글, 주로 전문 학술논문을 심사료를 받고 평가하면서부터 글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점점 날카롭고 엄격해지기 시작하였다.

굳이 남의 글을 보면서 거기에 흠을 잡아내야 한다는 못된(?) 심보보다는 적어도 나름으로는 전문 학자라면 그에 걸맞은 논리성과 합리성, 사실과의 부합, 그리고 글 전체의 정합성, 나아가 한글 맞춤법 등이 완전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점점 굳건해졌기 때문이다.

다시 갑자기 생긴 주제로 돌아가면, ‘글을 쓴다’라는 그다음에는 ‘일·짓’ ‘사람’ ‘내가’··· 등 여러 가지 단어가 이어질 수 있는데, 문제는 ‘글을 쓴다는~’라는 표현과 함께 갑자기 ‘글을 쓴다는 내가’라는 말이 떠오르면서 나의 글 쓰는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쓰는지 등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버릇은 오래전부터 형성되었다. 철학과에 입학하고 기초논리, 일반논리, 기호논리 등의 강의를 듣고 또 흥미를 느끼고 나름으로 열심히 공부한 이후로 나는 사고 작용과 언어와 문법 등 표현력에서 심각한 고통을 맛보았다.

내가 하는 말이나 글은 물론 대화 상대자 혹은 많은 글과 문장에서 문제점만 찾아내고자 하는 승부욕에 사로잡혀 어느덧 여러 모임에서 나는 ‘논쟁 유발자’가 되어 있었다. 주변의 학우들, 특히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얄궂게도 이들과 죽이 잘 맞아 늘 싸우면서도 같이 술 마시고 같이 토론하고··· 그 뒤 세월이 흘러서 학교와 사회활동에서도 이러한 사람들과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서로 둥글둥글해지기도 하였지만, 그 못된 ‘뾰족한 지적질’ 버릇은 쉽게 가시질 않는다.

세상에는 억지(어거지)소리, 떼쓰기, 남의 대화에 끼어들기, 말 가로채기, 논점 흐리기, 심지어 야지(野次, やじ)놓기,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은 인간들이 수두룩하다. 이제 전문 학술논문이 아닌 에세이식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걱정이 앞선다.

내가 인생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는가는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누구나 자기 이야기는 있을 수 있고 나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니까. 다만 내 글에 스스로 조금이나마 만족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가에 대한 자문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글쓰기에 발전이 있으면 좋다는 마음으로 내 몸으로 부딪치고 느꼈던 상황과 그에 따른 총체적 감정과 정서, 내 눈으로 보고 사진으로 남겼던 풍경과 자연, 세상 곳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말과 표정, 몸짓들, 분노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희열을 느꼈던 수많은 인간의 짓들을 가슴으로 써 보고자 한다.

그동안 마음이 억눌리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논문이나 연구과제가 잘 진행되지 않을 때, 삶이 힘들 때··· 나는 주로 여행을 가거나 국내의 여러 산을 등산했다. /챗GPT

그동안 마음이 억눌리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논문이나 연구과제가 잘 진행되지 않을 때, 삶이 힘들 때··· 나는 주로 여행을 가거나 국내의 여러 산을 등산했다. 군복무를 마친 후 시절의 아픔과 모진 기억을 잊기 위하여 방학이면 전국을 혼자서 한 달 이상을 돌아다녔다.

서울의 명산인 북한산은 틈만 나면 올랐고, 특히 비나 눈이 내리면 더 열심히 다녔다. 1000번도 넘게 올랐다. 좀 더 시간이 많고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면 세계의 오대양·육대주를 누비고 다녔을 것이다.

세상을 다니면서 소회(所懷)를 여러 가지 형태의 글로 쓰고 한시로 나의 심사(心思)를 표현하기도 하였고, 많은 사진도 남겼고, 실수로 귀중한 사진을 PC에 잘못 저장하여 왕창 날리기도 하였다.

이제 그 생각들과 기억, 추억과 개인사를 남에게 보이는 정제된 글로 일부나마 정리해 보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질정(質正) 부탁드린다. 

여성경제신문 손흥철 전 안양대 교수·중국 태산학술원 객좌교수 
chonwangk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