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심 더봄] 나홀로여행 초보시절의 추억, 사이타마현 가와고에(川越)

[양은심의 일본 열도 발도장 찍기](36) 작은 에도 '고에도(小江戸)'로 타임 슬립 고구마 전분으로 소면과 당고, 디저트까지?

2025-08-07     양은심 번역가(영상/책)·작가
'고에도(小江戸)'라 불리는 가와고에의 전통가옥 거리 풍경 /사진=양은심

가와고에는 나 홀로 여행을 막 시작했을 즈음에 골랐던 곳이다. 관동 지역(関東地域)에 있는 사이타마현(埼玉県)이니 도쿄에서 가깝고, 전철을 두 번 정도 갈아타면 된다는 이유로 선택했더랬다. 코로나가 번창하던 2020년 가을의 일이었다.

공공 교통수단이 버스밖에 없는 제주에서 나고 자란 나는 전철을 타 본 기억이 없다. 서울에 갔을 때 타 봤을 법도 한데 버스를 탔던 기억밖에 없다. 서울에 갔던 기억이라 해도 30여 년 전의 이야기이니, 어쩌면 정말로 전철은 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전철이라는 교통수단을 이용하게 된 것은 도쿄에 온 후였다. 약 25년 동안 프리랜서로 출퇴근이 없는 생활을 해 온 터라, 공공 교통수단은 가끔 이용하는 정도였다. 제주에서 애용하던 버스가 생소할 정도였다.

제주에서는 목적지까지 버스 한 번이면 끝났었다. 나의 행동반경이 좁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하튼 이동할 때 뭔가를 갈아타야 한다는 발상이 없었다. 그런 내가 도쿄에 살게 되었다. 

평소에는 남편이 운전하는 자가용을 이용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전철 이용은 흔하지 않았다. 전철을 갈아타고 가야 하는 일이 생기면 막막하기까지 했다. 물론 이 또한 옛날이야기다. 출퇴근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은 일주일에 네다섯 번 정도 아주 잘 이용하고 있다. 

이 여행을 계획할 때만 해도 나에게 있어서 전철을 갈아타는 일은 '큰일'이었다. 그것도 두세 번 갈아타야 한다지 않은가. 나로서는 큰 결심이었다. 나 홀로, 전철을 갈아타며 다른 지방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텔레비전에서 가와고에의 풍경을 볼 때마다 언젠가 한 번쯤은 가보고 싶다고 별렀더랬다. 일본열도 마흔 개에 가까운 지방을 다녀 본 지금이야 일본의 옛 거리 풍경을 보존하고 있는 곳이 이곳뿐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이때만 해도 나는 그야말로 이곳은 옛 일본을 보존하고 있는 아주 특별한 곳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만큼 기대가 컸다.

2020년 11월 당시의 가와고에역/사진=양은심

가와고에역에 내려 관광안내소를 찾았다. 옛 풍경을 보존하고 있는 곳까지는 버스를 이용하란다. 버스는 동네 구석구석을 돌았다. 가끔 관광지로 보이는 곳을 통과하며 '고에도(小江戸)'라 불리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2020년 11월이었으니, 거리는 코로나로 관광객이 줄어서 한산했다. 천천히 한 바퀴 돌고 나니 배가 고파왔다. 메인 스트리트가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꽤 시간이 걸렸다. 나 홀로 여행에 익숙지 않아서인지 살짝 긴장했었던 것 같다.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2시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휴업 중인 곳이 많았지만 그래도 영업하는 가게는 있었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옆에 옛 건물을 그대로 쓰고 있는 식당이 보였다. 하얀 노렌(暖簾)이 걸려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영업 중이라는 표시다.

120년 이상 된 전통 창고(蔵/구라)를 개조한 식당 '가스가(かすが)'다. 하얀 노렌이 눈에 띈다. /사진=양은심
고구마 소면(川越芋そうめん)과 당고 세트. 핑크색 여행 노트가 눈에 띈다. 처음 들고 나간 날이었다. '일본열도 47도도후켄 ① 2020. 11~' 이때부터 나의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나 싶었는데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잠시 쉬기도 했었다. /사진=양은심

면에도 디저트에도 고구마(芋) 전분을 쓰는 가게였다. 가와고에의 명물 중 하나다. 허기에 못 이겨 '가와고에 야키 당고(川越焼き団子)'가 곁들여지는 세트 메뉴를 시켰다. 크게 감동했던 맛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 글을 쓰며 사진을 바라보다 보니 먹고 싶어진다. 무슨 심리일까. 지금 배가 고픈 걸까? 그때의 내가 그리운 걸까?

어디에서든 안심하고 들어갈 수 있는 스타벅스. 한창 들고 다녔던 카메라가 정겹다. 지금은 스마트폰 카메라가 내 여행의 동반자가 되고 있다./사진=양은심

식사 후 스타벅스에 들렀다. 안쪽에 있는 정원에 자리를 잡았다. 이때의 고요하면서도 다정했던 분위기를 가끔 떠올리곤 한다. 서툰 여행자의 조심스러우면서도 두근거리는 기분이랄까. 안전이 확보된 환경에서의 모험이랄까.

그리워진다. 지금은, 이때보다 조금은 씩씩하고 대담해졌다. 다시는 맛보지 못할 감정이지 싶다. 어쩌면 다른 나라를 나 홀로 여행하게 되면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다시 거리로 나섰다. 해가 질 무렵의 거리 풍경은 어떨지 궁금했다. 2020년 당시 나는 노을에 푹 빠져 있었다. 어딜 가나 해가 어디로 지는지, 해는 어느 쪽에서 떠오르는지를 확인하곤 했더랬다.

저녁 무렵 풍경. 차들이 없었다면 옛날로 타임 슬립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사진=양은심

가와고에 축제 회관에 계신 어르신께 '해는 어느 쪽으로 지냐?'라고 물었더니 이 거리에서는 볼 수 없단다. 그렇다면 해가 진 후의 거리 풍경을 즐겨야지. 거리를 산책하며 기다렸다. 가와고에 명물 중 하나인 시계 종탑(時の鐘/도미노 카네)은 마침 이때 수리 중인가여서 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대신 가게가 문을 연 곳이 있는 골목까지 누비고 다녔다. 

나를 위한 기념품. 목걸이는 지금도 애용하고 있다. /사진=양은심

한 서양인이 운영하는 액세서리 가게에서 나를 위한 기념품을 두 개 샀다. 나 또한 외국인이어서일까, 응원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왔다. 코로나 시대에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에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팔찌와 목걸이였는데 팔찌는 내가 힘을 너무 줬는지 부러져버렸고, 목걸이는 지금도 애용하고 있다.

시계 종탑의 실루엣이 더 뚜렷해졌다. 낮의 모습보다 어두워진 후의 모습이 더 멋있다. /사진=양은심

기념품을 들고 점원이 상냥했던 스타벅스를 다시 찾았다. 해가 질 때까지 거리 풍경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주변 가게들과 스타벅스에 불이 들어왔다. 이제 슬슬 전통 가옥 거리의 풍경을 보러 갈 시간이다. 귀가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와고에역까지 타고 온 마을버스 /사진=양은심

길가에 늘어선 가게에서 새어 나오는 오렌지색 불빛이 만들어내는 밤의 가와고에는 상상 이상이었다. 지금도 눈에 생생하다. 화려하지 않은 아름다움, 어둠이 주는 편안함···. 퇴근 시간을 맞아 쉴 새 없이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소음이 없었다면 내가 2020년에 있다는 것조차 잊었을지도 몰랐다.

여성경제신문 양은심 번역가(영상/책)·작가 eunsim030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