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美 셰일에도 3% 관세"···트럼프는 알고도 말 안한다
관세 예찬론자도 손대지 않는 원유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 무역장벽 미국산 소고기도 해결 못하는 나라 상호주의 명분 쥐고 순차적 압박
한국 정부가 미국산 셰일오일에도 3% 수입 관세를 매기고 있는 것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하지 않는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비정상적 관세’로 미국이 이를 문제 삼을 경우 즉각적인 50%대의 관세 보복 조치로 이어질 수 있는 통상 리스크다.
25일 이재명 정부의 대미 관세 협상이 고착 국면에 빠진 가운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비산유국 중 원유에 관세를 부과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는 점이 재조명되고 있다. 심지어 산유국조차도 명목상 0.1~0.2%를 제외하면 대부분 무관세이지만 한국이 고수 중인 3% 관세율은 세계적으로도 단연 독보적인 수준이다.
또한 수입 원유 관세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미국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미국산 셰일 오일은 연간 10억 달러 이상 한국에 수출되지만 이 수입액에 대해 한국 정부는 묵묵히 3%를 ‘관세 수입’으로 걷고 있다. 무역 자유화의 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구조다.
게다가 이러한 관세는 피구세의 반대 개념인 ‘역피구세’로 시장 효율을 저해하는 대표적 조치다. 피구세는 오염 등 부정적 외부효과에 대해 시장 실패를 교정하려는 세금인 반면 역피구세는 외부효과도 없이 특정 수입재에만 인위적으로 부과되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매년 1조8000억 원 규모의 통행세를 거둬왔다.
특히 에너지처럼 생산·물류 전반의 원가를 좌우하는 중간재에 역피구세를 매기면 경쟁국과의 에너지 격차가 누적되며 전 산업의 원가 경쟁력이 저하된다. 이는 수출주도형 산업구조를 가진 한국에 있어 일종의 반시장세로 작동하며 스스로 자국 산업의 뿌리를 갉아먹는 셈이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중국발 공급 과잉에 직격탄을 맞으며 위기로 내몰리는데도 3% 관세가 트리거 비용으로 작용한 측면이 크다. 대한유화, SK지오센트릭, 효성화학, 롯데케미칼, GS칼텍스, 폴리미래, LG화학, 한화토탈에너지가 폴리프로필렌(PP) 등 주요 제품을 생산 중이나 가동률 축소와 공장 매각, 생산라인 중단 등 생존 전략에 들어갔다.
또한 LG화학은 여수 NCC 설비 매각을 검토 중이고 롯데케미칼은 현대케미칼과 대산 NCC 통합을 추진하며 여수 PET 공장 가동도 이미 중단했다. SK지오센트릭 역시 울산 재활용 단지 착공을 보류하는 등 전반적인 설비 재조정에 나섰다. 중국의 무차별 증설 속에 국내 기업 절반은 향후 3년을 버티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즉 한국에서의 이 같은 제조업 기반 산업 몰락이 관세 예찬론자인 트럼프 대통령조차 수입 원유 만큼은 건드리지 않는 이유다. 그는 철강과 자동차, 심지어 전자제품에도 보복 관세를 쏟아부었지만 원유만은 예외로 뒀다. 그만큼 제조업 생태계에서 에너지 비용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던 셈이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3% 셰일오일 관세를 즉각 문제 삼지 않는 이유는 이를 언제든 꺼낼 수 있는 후속 협상 카드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통상 협상에서 모든 수단을 한꺼번에 동원하지 않고 상대가 반발하거나 선을 넘을 경우에 대비해 강한 반격 카드를 아껴둔다.
한국이 트럼프 대통령이 염두에 두고 있는 미국산 소고기 월령 제한 조치 해제 요구를 거부할 경우 “그럼 너희가 미국산 셰일에 매기는 3%는 어떻게 설명할 건가”라는 식의 뒤늦은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또 이런 식으로 무기를 더 쥐고 있다는 점은 한국과의 딜에서 20%대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상호주의’라는 명분으로 정당화할 카드가 여럿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언제든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미국 측은 25일 예정됐던 ‘2+2 협의’를 전격 취소했고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출국 직전 발길을 돌렸으며, 위성락 안보실장도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을 만나지 못한 채 귀국했다.
미국은 통상·안보·동맹을 하나의 묶음으로 본다. 그런데 한국이 그중 일부만 선택적으로 수용하며 줄다리기를 계속하자 한국이 더는 특별한 동맹이 아니라는 인식이 미국 내 의사결정 최상층부에 확산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25~29일 스코틀랜드 순방을 잡아 한미 정상 간 톱다운 담판을 원천 차단했고, 관세 키맨인 베선트 재무장관은 같은 시기 중국과의 협상에 전념하고 있다.
특히 이재명 정부가 일부 지지 세력의 눈치를 보느라 미국산 알래스카 LNG 수입 논의조차 테이블에 올리지 않은 점은 트럼프 정부 입장에선 이중적 태도로 비칠 수밖에 없다. 한국이 에너지 시장을 닫아놓은 채, 미국산 셰일오일에는 여전히 3%의 고율 관세를 매기고 있다는 점에서 상호주의 원칙을 스스로 저버린 셈이기 때문이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