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타운 2.0] (51) "아직 치매 아닌데"···실버타운 떠나는 노인들, 왜?
인지 기능 저하된 실버타운 입주자 이웃과 대화 단절로 외로움 심화 "3시간 방문요양 역부족···확대 필요" '중간 단계' 노인 위한 체계 마련할 때
# "치매는 아니지만 퇴소를 고민합니다." 최근 기억력이 부쩍 약해진 김미숙 씨(79)는 실버타운 내 입주민과 대화가 어려워졌다. 예전보다 건망증이 심해지자 주변에서 치매로 오해하며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김씨는 점점 외톨이가 됐다. 정서적 고립감이 깊어지면서 결국 실버타운을 떠날지 고민하고 있다.
인지 저하 상태의 노인들이 실버타운에서 겪는 정서적 고립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신체 기능은 건강하지만 인지 저하로 인한 불편이 커지며 공동체 생활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사회적 상호작용의 부족이 고립감을 심화시키며 요양원으로의 조기 전이가 이뤄지는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4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실버타운 입주자 중 치매 전 단계 또는 인지 기능이 저하된 어르신의 비중이 늘고 있다. 일부 노인은 자주 깜빡하는 등 낯선 행동으로 인해 입주민 간 소통이 끊기고 외로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문요양 서비스를 통해 하루 3시간 정도 요양보호사의 돌봄을 받기도 하지만 정서적 지원까지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수도권 A 실버타운 운영자는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인지 저하 어르신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어르신끼리 대화를 시도해도 반복적인 말이나 행동이 이어지면 상대가 치매라고 단정 짓고 대화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내부에서 고립되고 외로움을 크게 느끼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이 바뀌면 인지 기능이 더 나빠질 수 있어 원래 지내던 환경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지원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장기요양등급을 받은 어르신은 하루 최대 3시간까지 방문요양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요양보호사는 이 시간 동안 일상생활을 보조하지만 정서적 교류나 인지 자극은 부차적 역할에 머무는 실정이다. 일부 보호자는 시간당 1만2700원 안팎의 비급여로 서비스를 더 이용하기도 하지만 이는 개인 부담으로만 가능한 선택지다. 요양원까지 연계되는 ‘원스톱 구조’를 갖춘 실버타운도 늘고 있지만 아직 일부이며 비급여로 운영되는 곳도 있다.
A 운영자는 “하루 3시간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 보호자가 비급여로 5시간 이상 요양보호사를 붙이는 경우도 있다”며 “하지만 모든 가정이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어르신이 외로워한다는 이유로 아직 건강이 크게 나쁘지 않은데 요양원으로 옮기는 사례가 발생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동생활 구조인 실버타운에서는 신체 케어와 더불어 정서적 교류가 중요하다”며 “하루 5~6시간까지 급여 시간을 늘릴 수 있다면 어르신 심리적 안정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다만 방문요양 급여 확대만으로 정서적 고립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정은 숭실사이버대학교 요양복지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요양보호사를 통한 정서적 지원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지 자체가 애매하다”며 “시간을 늘린다고 해도 제도상 등급별 급여량 제한이 존재하고 예외적으로 허용할 경우 형평성 문제도 발생한다. 단순한 시간 확대로 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며 제도적으로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인지 저하 어르신의 장기요양등급 판단 주체와 기준이 불명확하며 본인이 도움의 필요성을 자각하지 못하거나 등급 판정을 꺼리는 현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인지저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스스로 ‘아직 괜찮다’고 여기기 쉽고 노화에 따른 건망증과 치매의 구분도 어렵다”며 “요양등급을 받지 않으려는 어르신도 많다. 특히 고급 실버타운 거주자는 사회적 지위나 자존감 문제로 요양서비스 자체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제도보다는 운영자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김 교수는 “정서적 고립은 제도나 정책으로 일률적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100명의 어르신이 있으면 100가지 욕구가 있다”며 “경증 인지 저하 어르신을 위한 실버타운 내 내부 운영 전략이 핵심”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건강한 어르신과 경도 인지장애 어르신을 공간상 분리하되 단절되지 않고 상호 이해가 가능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식의 운영이 필요하다”며 “건강하던 분도 점차 도움이 필요한 상태가 되지만 바로 요양원으로 옮기기에는 괴리감이 크다. 요양원은 상시 케어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공간인 만큼 그 사이를 메울 중간단계 주거모델이 절실하다. 이제는 이를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라고 제언했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