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웅익 더봄] 공간 사옥의 추억

[손웅익의 건축마실]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아라리오뮤지엄에 경의를 표함

2025-07-28     손웅익 건축사·수필가
창덕궁과 아라리오뮤지엄(구 공간 사옥) /그림=손웅익

나는 건축과에 1977년에 입학했기에 ‘77학번’이다. 공과대학에 속한 건축과에서는 수학이나 일반물리가 필수과목이었다. 대학에 가서는 쳐다보기도 싫었던 과목이다. 1학년부터 펑크가 나기 시작한 물리는 3학년까지도 펑크가 났다. 4학년이 되어서도 1학년 후배들과 같이 공부해야 했으므로 물리 수업 시간에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물리 과목이 내 발목을 잡았다.

1학년 말에 가입한 ‘공간연구회’라는 건축동아리는 건축설계를 희망하는 학생들의 모임이었다. 일 년에 몇 개월씩 동아리 방에서 합숙하면서 선배들에게 건축설계를 배우고 건축 작품전을 준비했다. 합숙하는 동안 2학년생들이 음식을 준비했는데 재료도 부실했고, 맛도 없었다. 제도판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잠은 제도판 위에서 웅크리고 잤다. 수업에는 잘 안 들어가고 밤낮없이 동아리 방에 앉아 있으니 건축설계 이외의 과목 점수가 좋을 리 없었다.

4학년에 접어든 1980년 봄에는 온 교정이 최루탄으로 뒤덮였다. 그때도 작품전을 준비하느라 합숙하고 있었다. 1980년 5월 17일 저녁. 그날 최고참인 우리 4학년들은 학교 앞 문방구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텔레비전을 보다가 ‘비상계엄 전국 확대’, ‘전국대학 휴교령’이라는 자막을 보게 되었다.

급히 학교로 들어가는데 이미 교문을 장갑차가 막고 있었다. 무장 군인들에게 사정사정해서 동아리 방에 들어가서 짐을 챙겼고 또 사정사정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5월 18일 이후 전국은 엄청난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광주시가 고향인 선배는 광주시에 있는 집으로 갈 수가 없어 부모님께 인사도 못 드리고 군대에 갔다.

가을에 있을 건축전시회와 졸업 작품을 준비해야 했지만 집회가 금지되어 공식적으로 모일 장소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동아리 선후배 집으로 돌아가면서 작품전 준비를 했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여름 내내 준비를 해서 10월에 학교에서 건축전시회를 하게 되었다.

4학년 말에 대부분의 동기는 취업이 되었지만, 나는 졸업을 앞두고 1학년부터 펑크가 계속 난 물리가 문제였다. 4학년 때는 리포트도 내지 않고, 출석도 하지 않고, 시험도 보지 않았다. 무작정 물리 교수님을 찾아갔다.

내 사정 이야기를 들으신 물리 교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자네는 나하고 계속 물리 공부를 해야겠네. 출석 다 하고, 리포트 다 내고, 시험을 잘 보면 그때 가서 학점을 주겠네!” 교수님의 단호함에 더 이상 사정할 수 없어 깊이 절을 하고 말없이 발길을 돌렸다. 학기 말에 받아 든 성적표에는 물리 점수가 ‘D+'로 표기되어 있었다.

아라리오뮤지엄(구 공간 사옥) /그림=손웅익

해가 바뀌고 건축가 김수근이 운영하는 공간연구소에 다니는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를 김수근 선생께 추천했는데 승인이 났다고 하면서 출근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당시 건축학도들에게 공간연구소는 꿈의 직장이었다. 거장 김수근의 문하에서 건축을 배울 수 있는 행운은 당시 선택받은 소수에게만 허락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몇 가지 이유로 공간연구소 입사를 포기했다. 돈이 필요한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였다. 물리 과목을 위시한 몇 개 과목의 반복된 F 학점으로 인해 나는 코스모스 졸업을 하게 되었다. 졸업 총 학점에서 2학점이 부족했다. 한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결국 공간연구소보다 월급이 많은 조그마한 건축사사무소를 택하게 되었다.

그 건축사사무소에서는 막사, 벙커, 김치 탱크 등 군 시설 설계를 많이 했다. 똑같은 모양의 막사를 그리며 수없이 반복되는 블록 나누기를 해야 했고, 벙커의 철근을 그려야 했다. 일찍 출근해서 사무실 청소를 하고 선배들 책상에 있는 연필도 정갈하게 깎아놓아야 했다.

그때는 트레이싱지에 연필로 도면을 그리던 시절이다. 그렇게 도제 생활을 이어가던 중 1986년에 김수근 선생이 타계했다. 내가 1981년에 공간연구소에 들어갔다면 거장 김수근의 마지막 제자가 되었을 것이다.

공간 사옥은 아라리오뮤지엄으로 바뀌었다. 뮤지엄은 건축가들의 성지와도 같은 공간 사옥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건축을 이끄는 수많은 건축가가 거쳐 간 공간이다. 이제 예술 작품으로 채워진 공간을 돌아보며 그 시절 나도 여기서 건축을 시작했으면 지금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본다.

여성경제신문 손웅익 건축사·수필가 wison7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