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韓 소버린 AI 프로젝트 밀어붙이지만···글로벌 AI 공룡 셋방살이 면할까?
GPU·전력 우선권 1순위 주도 멀티테넌시 오픈AI 韓 찍고 ‘AI 지구망’ 완성하는 수순 독자 개발 LLM 무용론에 힘 실리는 국면
지난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미국에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를 만나며 인공지능(AI) 패권 전쟁의 한복판에 들어섰다. SK그룹이 한국형 소버린 AI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포석이다. 이번 만남에선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 초청장 전달과 함께 하이퍼스케일 울산 데이터센터 협력 방안까지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소버린 AI 프로젝트가 독자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이른바 '대한민국 AI 고속도로' 건설이 가능할지 의문이란 얘기다.
23일 빅테크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이 울산에 구축 중인 데이터센터는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슈퍼컴퓨터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설계된다. 전문가들은 이 데이터센터가 여러 모델이 공존하는 멀티테넌시(Multi-Tenancy) 구조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멀티테넌시는 하나의 인프라를 여러 사용자가 공유하는 방식이지만 실제 자원 배분과 운영의 주도권은 물리적 인프라 제공자가 아닌 데이터센터 내 AI 생태계를 주도하는 플레이어가 리소스 우선권을 쥐게 되는 형태다.
울산 데이터센터는 SK텔레콤의 독자적 AI 허브라기보다 오픈AI의 GPT API 호출에 최적화된 글로벌 리전(region)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SKT를 비롯해 네이버, LG, KT 등 국내 대기업들이 아무리 자체 LLM을 만들어도 머신러닝 단계부터 글로벌 인프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셋방살이’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특히 이번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샘 올트먼 CEO의 만남은 단순한 협력 논의를 넘어선 글로벌 리전 확장 전략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영국 역시 최근 오픈AI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AI 인프라 확충과 공공서비스 혁신을 추진하고 있으며 브리스톨에 구축된 ‘이삼바드-AI’ 슈퍼컴퓨터는 엔비디아 GH200 기반 21엑사플롭스 성능으로 영국 내 AI 거점으로 자리잡았다.
SK그룹의 에너지부터 반도체, 건설까지 계열사가 총동원될 울산 데이터센터는 중국의 클라우드 일대일로(一带一路)에 대응한 트럼프 대통령의 동아시아 최초의 전략적 요충지가 될 전망이다. 지난 6월 20일 현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 AI 고속도로’ 출범식에는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당시 LG AI연구원장)과 하정우 AI미래수석을 비롯해 정신아 카카오 대표, 이준희 삼성SDS 사장, 서범석 루닛 대표,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가 대거 참석했다.
다만 역설적으로 울산 데이터센터 구축에 투입되는 총 7조원 중 5조원이 아마존웹서비스(AWS)의 투자금인 점을 감안할 때 물리적 인프라의 주도권이 글로벌 클라우드 네트워크에 넘어간 것이 이재명 정부 소버린 정책의 큰 장애물다. 한국 내 AI 기업들이 머신러닝이나 파운데이션 모델 훈련을 진행할 때조차 AWS가 자원 배분을 어떻게 해줄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더 나아가 울산 리전의 물리적 한계도 거론된다. 데이터센터 운영의 핵심인 전력과 냉각 자원 역시 가장 많은 연산 자원을 소비하는 쪽에 우선 배분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AI 슈퍼컴퓨터가 연산 부하를 일으킬 때 GPU 클러스터가 필요로 하는 자원은 국내 기업이 아닌 오픈AI 중심으로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적 제약은 정부가 추진하는 ‘소버린 AI’ 전략에도 빨간불을 켜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데이터센터 인프라 주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거머쥔 건설 허가권이 아니라 설계 단계에서부터 엔비디아 GPU 클러스터와 멀티테넌시 자원 배분 알고리즘까지 지배할 권한을 확보해야 하는데 물리적·논리적 설계 주도권이 글로벌 생태계로 넘어가 독자적 통제력이 사실상 상실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오픈AI는 최 회장과의 만남에 앞서 일본과 영국까지 글로벌 리전을 확장하며 중국을 제외한 ‘AI 지구망’을 완성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특히 이들 리전은 인공지능 시대의 황금 광맥으로 불리는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호출에 최적화된 구조로 설계된다. 토큰 단위로 비용을 부과하는 ‘토크나이징’을 통해 AI 서비스 제공의 주도권까지 쥐고 흔드는 형태다. ※관련기사 : '황금 광맥' 토큰 단가 낮추는 샘 올트먼···AI 기축통화 거머쥐나
정부가 100조원의 예산을 쏟아붓더라도 ‘소버린 AI’ 프로젝트는 전력·GPU 자원의 제약 속에 공회전하는 상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빅테크 한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한국의 사례은 AI 역사에서 한때 반짝였던 지역적 실험으로만 기록될 것”이라며 “스페셜 토큰맵으로 개인 민감 정보나 크롤링하고 시뮬라크르(simulacre)나 만들던 나라가 AI를 주권적 기술로 착각한 대가는 매우 혹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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