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타운 2.0] (50) “공동시설은 설치가 아니라 운영이 핵심”‘···조건부 허가’ 도입 목소리
‘무늬만 실버타운’ 반복 막으려면? ‘허가 요건’보다 ‘운영 조건’ 명시 필요
고령자 주거시설의 제도적 빈틈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실버타운을 포함한 현재의 노인주거시설 인허가 체계는 ‘설계도면상 공동시설이 있는가’만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실제 입주 이후 해당 시설이 운영되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가 없다. 이런 구조는 결국 입주민들의 생활권 침해로 이어지고 있다. ‘공동시설 운영을 전제로 한 조건부 허가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22일 여성경제신문 기획 '실버타운 2.0'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서울의 한 민간 실버타운 A는 입주 당시 입주민에 ‘하루 2식 제공’을 강조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식당은 있지만, 식사 제공은 하지 않았다. 민간업체가 초기 분양 마케팅용으로 식당을 설계도에 넣고 인허가를 받은 뒤, 일정 시간이 지나 운영을 중단한 것이다. 고령 입주민들은 결국 외부 배달음식에 의존하거나 가족이 매일 도시락을 들고 와야 했다.
A 입주민 자녀 김모(52) 씨는 “우리 부모님이 직접 요리할 수도 없는데, 식당 운영이 멈춘 순간부터 생활 자체가 붕괴됐다"고 호소했다. 비슷한 사례는 전국에 걸쳐 있다. ‘건강관리실’, ‘여가공간’, ‘공동세탁실’ 등의 시설이 비치돼 있어도 사람이 배치되지 않거나 운영 시간이 제한되면서 실질적 서비스는 제공되지 않는 식이다.
현행 노인복지법 및 주택법상 실버타운은 임대형, 분양형, 노인복지주택 등 다양한 유형으로 존재하나, 이들에 적용되는 인허가 기준은 주로 ‘설치 여부’에만 집중돼 있다. 공동식당, 건강관리실 등의 공간이 확보됐다는 것만으로 사업 승인이 가능하다.
운영 여부나 지속성, 인력 배치 등에 대한 법적 강제력은 사실상 전무하다. 지방자치단체가 사업자에게 시정 명령을 내리더라도 법적 근거가 약해 실제 제재로 이어지긴 어렵다.
지방의 한 고령자주택 인허가 담당 공무원은 여성경제신문에 “허가 당시 ‘공동시설이 있다’는 조건만 충족하면 끝이다"면서도 "이후 운영은 민간사업자 재량에 맡겨진다. 주민 생활과 직결되는 사안을 ‘양심’에 기대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설치보다 중요한 건 운영”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고령자는 식사, 건강, 여가 서비스를 한 곳에서 제공받는 ‘생활 밀착형’ 주거를 원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공간 제공을 넘는 실질적 서비스가 없다면 실버타운은 그저 ‘비싼 아파트’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최근 일부 지자체와 시민단체, 전문가들은 ‘공동시설 운영을 조건으로 명시하는 허가제도’, 즉 ‘조건부 허가제’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설계도면상 공동시설의 운영계획(식수 제공 횟수, 인력 배치 등)을 함께 제출하도록 의무화 △실제 운영 미이행 시, 지자체의 시정명령 및 과태료 부과 가능하도록 법령 정비 △일정기간(예: 최초 입주 후 3년간) 공동시설 운영을 의무 지속 조건으로 지정 △‘노인복지법 시행령’ 또는 ‘노인복지주택 고시’에 관련 규정을 포함
최민환 고령주거대책포럼 운영위원장은 “설치만 해놓고 운영은 안 해도 그만인 구조는 제도 실패"라며 "인허가 때부터 서비스 수준과 지속성을 전제로 해야 ‘진짜 실버타운’이 나온다”고 했다.
실제로 소비자 입장에서 실버타운 계약은 일반 아파트보다 복잡하다. 일부 분양형 실버타운은 ‘공동시설 운영’에 관한 조항이 분양계약서에 명시돼 있지 않거나, ‘사업자의 판단에 따라 변경 가능’이라는 단서 조항을 넣어 둔다.
결국 소비자는 기대한 서비스를 받지 못해도 손해배상 청구조차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소비자보호 측면에서도 공동시설 운영 관련 법적 명문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 관계자는 “노인주거 정책에서 ‘복지서비스’가 빠지면 고령자 삶의 질은 보장받기 어렵다”며 “공동시설의 실질 운영 여부를 법제화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