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조 KDDX '또' 연기···HD현대-한화 갈등, 이번엔 '정치'가 변수
이번 방사위 분과위 안건서 또 제외 관행상 기본설계 업체가 후속 맡아 한화오션, 별도 행정처분 없이 종결 노란봉투법 등 새 정부 의식 의혹도
1년 넘게 미뤄지고 있는 총사업비 약 8조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이 이달 열리는 방위사업추진위원회 분과위원회 안건에서도 제외되며 또다시 연기됐다. 조선업 호황 속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핵심 사업이 무기한 지연되자 업계에서는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라며 조속한 추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1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방위사업청은 이달 열리는 제127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 분과위원회에서 KDDX 상세설계 및 초도함 발주 관련 안건을 제외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4월 최종 상정이 보류된 이후 3개월 넘게 논의가 지연되며 연내 사업 착수도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KDDX는 이지스 시스템을 탑재한 차세대 구축함 6척을 건조하는 해군 주력함 사업이다. 선체와 이지스 체계를 모두 국내 기술로 개발·제작하는 첫 구축함으로 국산화율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2011년 이명박 정부 당시 최종 소요가 결정된 이후 올해로 준비만 14년째다.
KDDX의 개념설계는 2012년 한화오션이, 기본설계는 2020년 HD현대중공업이 각각 수행했다. 이후 방사청은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방식을 두고 △수의계약 △경쟁입찰 △공동개발 등 3가지 방안을 놓고 검토를 이어왔다.
지금까지 업계 관행에 따르면 기본설계를 완료한 업체가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까지 일괄 수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기본설계를 맡은 업체가 상세설계 등 후속 절차를 맡는 것이 사업 연계성과 책임소재가 명확해져 리스크 관리에 유리하다"라면서도 "이미 사업 전략화가 지연된 만큼 공동 발주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화오션은 과거 군사기밀 유출 전력이 있는 HD현대가 단독으로 사업을 수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경쟁입찰 방식을 주장해왔다. 이 과정에서 방사청의 추진 방식 자체를 두고도 논란이 제기됐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를 동시에 지정해 놓고 결국 한 곳과 수의계약을 추진하는 것은 업계 상도에 어긋난다"며 "애초부터 특정 업체를 단독 지정했더라면 지금 같은 혼란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사청의 판단 역시 양사 모두에 의문을 남겼다. 지난 4월 방사청은 분과위 최종 결정을 앞두고 한화오션이 개념설계 보고서 내 27건의 도표를 도용한 정황에 대해 행정처분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지난 15일 해당 사안에 대해 별도 처분 없이 사건을 종결하기로 했다.
당시 해당 사안은 방사청 의뢰로 조사에 착수한 국군방첩사령부가 공소시효 만료로 '불입건' 결론을 냈으나 이를 방사청이 이를 방사청이 다시 들춰내며 행정처분 검토에 나섰고 업계에선 이를 HD현대와의 수의계약 체결을 위한 명분 쌓기로 해석하기도 했다. 이에 방사청은 "한화오션에 대한 제재 검토는 KDDX 사업추진방안 결정과 관련이 없다"라며 선을 그었다.
복잡한 양사 갈등에 정치권까지 개입하면서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 그동안 수의계약에 무게가 실리던 분위기에서 최근에는 한화오션이 주장해 온 경쟁입찰 방식으로 방향이 전환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줄곧 경쟁입찰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던 안규백 의원이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며 그의 발언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국방부 장관이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만큼 안 후보자의 의중이 향후 결정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화오션의 최근 행보도 눈길을 끈다. 2022년 대우조선해양 시절 하청 노동자 불법 파업과 관련해 제기했던 47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나 최근 기존 입장을 뒤집고 소를 취하하기로 하며 변론 기일 연기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이재명 정부의 핵심 노동정책인 '노란봉투법'에 힘을 실어주는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가 한 목소리로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화오션의 선택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최근 한화 방산 3사(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시스템·한화오션)가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 문재인 정부 출신 인사를 영입한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서 전 장관은 과거 이재명 대선 캠프에서 국방안보자문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한편 최근 8조 원 규모로 추산되는 폴란드 '오르카(Orka)' 잠수함 사업 수주전에 양측이 '원팀'이 아닌 개별 참여한 것과 관련해 HD현대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오르카 프로젝트는 KDDX와는 완전히 별개의 해외 수출 사업으로 애초부터 각 사 개별로 추진해 온 사안"이라며 "정부 차원의 '원팀 수출' 기조가 나오기 전부터 추진해 온 만큼 중간에 구조를 바꾸기엔 어려움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후 캐나다 등 차기 해외 프로젝트부터는 협력을 전제로 양사가 각기 강점을 살려 역할을 나누는 방식으로 원팀 구성을 이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김성하 기자 lysf@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