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돌봄 공백’···공공 모험자본이 메운다
스타트업 의무투자 법안 발의 장기요양 시장 활성화 계기될까
대한민국이 초고령사회로 본격 진입한 가운데 장기요양 분야의 구조적 공백이 심화되고 있다. 급증하는 고령자 수요에 비해 요양인력은 이탈이 가속화되고, 제도 중심의 대응은 한계에 봉착했다. 정부는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장기요양보험 제도를 운용 중이지만 공급 부족과 지역 격차, 현장 인력난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회에서 법정기금 여유자금을 기술혁신형 스타트업에 의무적으로 투자하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되면서, 돌봄 공백 해소의 ‘새로운 해법’으로 장기요양 스타트업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 6월 26일,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가재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정부가 운용하는 67개 법정기금의 여유자금 중 일정 비율을 기술혁신형 벤처기업에 투자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개정 조항(제63조 제2항 신설)에 따르면 기금관리주체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법'상 벤처기업에 여유자금을 투자해야 한다. 투자 방식은 직접 투자뿐 아니라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 제66조에 따른 한국벤처투자(모태펀드)를 통한 간접 투자도 허용된다.
법정기금에는 건강보험기금, 장기요양보험기금, 고용보험기금, 국민연금기금 등 대형 사회보험성 기금이 포함된다. 2024년 기준 전체 법정기금 자산은 약 3050조 원, 이 중 1400조 원 이상이 예금이나 국채 등 저위험 자산에만 운용되고 있다.
박 의원은 “기금의 보수적 운용이 신성장동력 발굴을 가로막고 있다”며 “공공자금이 혁신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법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스타트업 업계에선 이번 법안이 장기요양 분야 스타트업에 대한 첫 공공투자 진입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기존에는 요양서비스 스타트업이 시장 수요는 충분하더라도, 수익화까지 긴 시간이 소요되고 제도적 제약이 많아 민간 투자 유치가 거의 불가능했다.
예컨대 프리미엄 방문요양 플랫폼, 요양보호사 구인·매칭 플랫폼, 치매 인지케어용 AI 모니터링 기술 등은 현장 필요성이 분명하지만, 벤처캐피털 등 민간 투자기관은 수익성 불확실성을 이유로 투자를 꺼려왔다.
하지만 이번 법안이 통과되면 한국벤처투자 등 공공 펀드를 통한 간접 투자 방식으로 돌봄 관련 스타트업에 자금이 유입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특히 건강보험기금과 장기요양기금의 일부 여유자금이 민간혁신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다만 법안 통과만으로 곧바로 시장 활성화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정책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라는 지적도 많다.
건강보험기금과 장기요양기금은 각각 국민건강보험법과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 보험급여의 안정적 제공을 위한 목적기금으로 설계돼 있다. 따라서 직접적인 스타트업 지분 투자보다는, 정책 연계형 간접 투자 또는 보완적 펀드 구조를 활용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는 분석이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복지성 기금은 운용목적의 법적 제약이 크기 때문에 **복지부의 정책 방향성과 기금운용 방침이 일치해야 실제 투자로 연결될 수 있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부터 ‘장기요양 디지털 전환 전략’을 통해 일부 ICT 기반 재가요양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서비스 수가에 기술 솔루션을 반영하거나 요양기관 대상 납품을 허용하는 제도 개선에 나설 경우, 장기요양 스타트업이 정책 대상이자 공공 투자 대상으로 확실히 자리잡을 수 있다.
특히 고령자 1인 가구 증가, 요양시설 기피, 요양인력 부족 등 현재 장기요양 체계의 취약성을 고려하면, 기술 기반 방문요양 중심의 재가 돌봄 스타트업은 향후 복지 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민간 기반 인프라로 주목받는다.
박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단순히 공공기금을 벤처시장으로 유도하는 예산기술을 넘어, 공공재원의 전략적 쓰임을 제도화하는 구조 개혁의 실험으로 평가된다.
한 공공투자 전문가는 여성경제신문에 “재정은 있지만 쓸 곳이 없고, 시장은 있지만 돈이 들어가지 않던 구조에 제도적 연결고리를 만드는 시도”라며 "이번 법안은 고령사회에 대응하는 복지 정책과 재정정책의 접점을 여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