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타운 2.0] (48) 요양원은 이르고, 실버타운은 비싸다···딱 두 가지 길만 있는 한국

실버타운은 비싸고 요양원은 빠르다 자립도 낮은 노인, 제도 밖에 방치 ‘중간 돌봄 주거’ 도입 논의 필요

2025-07-20     김현우 기자
실버타운은 비싸고 요양원은 아직 이르다는 노인들이 갈 곳이 없다. 자립과 간병 사이에 위치한 ‘중간 돌봄 주거’가 제도화되지 않아 많은 노인이 사각지대에 놓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70대 중반의 박정애 씨는 올해 초 혼자 생활하는 게 힘들어졌다. 허리 디스크 후유증이 심해져 식사 준비와 빨래는 커녕 대중교통을 이용한 병원 방문도 버거워졌다. 아들이 실버타운 입주를 권했지만 월 비용을 전해듣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요양원은 아직은 너무 이르다고 느꼈다.

“아픈 것도 아니고 치매도 아닌데 요양원에 가면 너무 불쌍해 보이잖아요. 그렇다고 집에 계속 있기도 무섭고…”

결국 박 씨는 자비로 방문간호와 식사 배달 서비스를 조합해 ‘집에서 버티는’ 길을 택했다. 매달 들어가는 비용은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

17일 여성경제신문 기획 '실버타운 2.0'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의 노년 주거는 극단적이다. 하나는 ‘노후 자립형 고급 주거시설’(실버타운) 즉 노인복지주택이고 다른 하나는 ‘돌봄 중심의 집단 수용시설’(요양원) 즉 장기요양보험을 활용한 요양시설이다.

그 사이에 있는 부분적 돌봄이 가능한 ‘중간 주거’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경제신문이 실버타운 43곳(2024년 기준)과 요양원 1646곳(노인장기요양보험 지정 기준)을 비교 분석한 결과, 입주 조건과 제공 서비스가 명확히 양분되어 있는 구조다.

한국의 노년 주거는 실버타운(자립형)과 요양원(의존형)으로만 양분돼 중간 단계 시설이 부재하다. 적절한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은 제도 밖에서 고립되고 있으며, ‘중간 돌봄 주거’의 제도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경제신문

익명을 요구한 보건복지부 산하 장기요양정책위원은 여성경제신문에 “실버타운은 여유로운 시니어 그리고 상대적으로 건강한 이들에게 문을 열고 요양원은 일정 장기요양등급 이상을 받을 정도로 몸이 좋지 않아야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노인이 훨씬 많다”고 했다. 

예를 들어 장기요양 3~5등급을 받은 노인은 일상생활의 60% 이상은 스스로 가능하지만 장시간 혼자 있기는 어렵다. 이런 경우 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 방문요양이나 주야간보호센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주거는 여전히 ‘집에서 혼자’가 기본 전제다.

요양원은 오히려 부담이다. 경기도 하남에 위치한 한 법인 요양시설 원장은 “(요양원의 경우) 촉탁 의사도 있고 식사도 꼬박 하루 세 번 나오지만, 사회적 활동은 거의 없다. 3등급 노인에게 시설은 너무 빠르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다.

실제로 2023년 기준 요양원 입소자의 30% 이상이 3등급 이하 수급자였다. 많은 이들이 ‘가정이 감당 못 하는 사정’ 때문에 요양원에 들어가는 구조다.

해외에는 중간단계 주거모델이 이미 정착돼 있다. △미국 Assisted Living Facility (ALF) △일본: 서비스付き高齢者向け住宅 (서비스형 고령자주택) △프랑스: EHPAD와 Résidences autonomie 이원화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이들 모델은 자립 가능한 고령자 중 경증 질환자나 경도 인지저하 상태의 노인을 위한 주거시설이다. 월 100만 원 내외의 비용으로 정부가 일정 부분 보조한다. 한국도 시범사업은 있었다. 2016년부터 서울시가 도입한 ‘노인 공공임대주택+생활 지원’ 모델이 그것이다. 그러나 장기요양보험의 적용 대상이 아니고, 국가 지원체계도 부재해 확산되지 못했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들면서 노인의 건강 상태는 단선적이지 않다. 오늘은 자립 가능하지만 다음 달엔 목욕이 어렵고, 1년 뒤엔 약 복용을 못 할 수도 있다. 그 변화에 따라 돌봄의 ‘강도’도 연속선상에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자립형(실버타운)과 전적 의존형(요양원)으로만 이원화된 구조는 점점 더 많은 노인을 제도 밖으로 밀어낼 수 있다고 했다.

사회복지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돌봄이 필요한데 너무 건강하고 너무 가난한 노인 이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라며 “그 틈을 메울 시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 차원에서 현재 제도 내 도입 계획은 없다”면서도 "실버타운은 주택법과 임대주택법 등으로 요양원은 장기요양보험법으로 관할이 나뉘다 보니, 그 사이 공간은 법적 제도화 대상이 되지 않는다. 법부터 바꾸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실버타운과 요양원 중간 단계의 개념은 사실상 먼 훗날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