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관 더봄] 단독주택 처마 아래 공간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일

[김정관의 단독주택 인문학] 경사지붕에서 빠져나온 처마의 중요한 역할 처마 없는 집에서 살면 후회할 확률이 높다 처마가 빠져나온 경사지붕은 단독주택의 필수

2025-07-19     김정관 건축사·도반건축사사무소 대표

‘우리집’에서 식구들과 마주 앉아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여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저녁밥을 먹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소확행이라 했던가. 따스한 햇살, 창밖으로 내리는 비, 산들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불어오는 집에서 누리는 소소한 일상이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랴. 비 오는 날이면 처마 아래로 떨어지는 낙숫물을 바라보며 소리를 듣는 것도 단독주택에서 사는 즐거움이다.     

처마 아래 공간이 있으면 비나 여름 햇볕은 단호하게 그어주고, 바람과 겨울 햇살은 기꺼이 들이면서 집 안의 일상이 쾌적하게 유지된다. 처마가 있어야 비 오는 날에 빗물이 외벽에 닿지 않아 거실의 문과 방의 창문을 열고 바깥과 마주할 수 있다. 처마 아래에 있는 문과 창은 바람이 천천히 드나들게 하며 실내 공간과 외부 공간이 자연과 함께 소통하도록 해서 하나가 된다. 집 안팎이 경계가 없어지도록 하는 영역이 바로 처마 아래 공간이다. 

경사지붕에서 빠져나온 처마의 역할을 모르면     

처마가 있으면 외벽과 창호에 빗물이 닿지 않으니 비가 샐 염려가 없다. 빗물이 닿지 않는 외벽은 오염될 일이 없어서 집을 오래 써도 지은 그대로 정갈하게 유지된다. 처마 아래 공간이 없다면 집에서 지내는 일상이 빗물과 다투고 햇볕과 실랑이를 벌여야 하니 내부 공간은 늘 분주할 수밖에 없다. 발코니 없는 신축 아파트에 살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지만 단독주택에서 그렇게 살고 있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정보 검색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예쁘게 디자인된 집들은 대부분 처마가 없다. 경사지붕을 하고 있는 집이든 박스 형태로 평지붕으로 된 집이든 처마 처리 없이 디자인된 외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설계자가 처마의 기능성을 제대로 알고 있으면 처마를 두는 건 선택의 여지가 없을 터인데 단독주택에서 살아보지 않았으니 그림 같은 집으로 설계하고 만다. 준공하자마자 찍어둔 사진은 건축사의 아바타가 되고 건축주는 곧 집이 짐이 되어 버거운 일상에 접어들게 된다.  

양동마을 관가정 사랑채 처마를 올려다보면 보이는 서까래 부재, 이 목재 부재가 관가정을 수백 년이나 버틸 수 있게 했다. /김정관
양동마을 관가정 사랑채와 처마, 한옥의 누각과 마루는 길게 빼진 처마 덕에 벽체나 창호로 가리지도 않고 비어 있는 공간을 쓸 수 있었다. /김정관

삼대적선(三代積善)의 공덕을 지어야 살 수 있다는 정남향 집에도 처마가 없는 집이 대부분이다. 남향은 여름에는 태양고도가 높아서 처마에 햇볕이 가려지고 겨울에는 햇살이 집 안 깊숙이 들어온다. 이런 남향집에도 처마가 없으면 여름과 늦봄과 초가을에는 뜨거운 햇볕이 실내로 들어온다. 남서향이나 남동향이면 여름 전후에 집 안에 드는 햇볕은 집 안에서 보내는 일상을 힘들게 한다.     

처마는 그 기능과 중요성을 설계자가 모르거나 무시하게 되면 외관 디자인을 방해하는 요소일 뿐이다. 만약에 처마의 역할을 알면서도 간과했으면 설계자는 건축주의 행복을 빼앗아 버린 셈이다. 또 처마가 집의 유지관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고 그랬다면 단독주택의 설계자로는 적임자가 아니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설계도가 완성되면 건축허가를 접수하기 전에 이 집에서 어떤 삶을 담을 수 있는지 시뮬레이션을 꼭 해 보아야 할 것이다.  

왜 경사지붕에 처마가 있는 외관을 채택하지 않을까?     

 처마가 빠져나온 경사지붕을 채용하여 외관이 특별해 보이도록 하는 건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마치 챙이 길게 난 모자를 쓰고 멋을 내는 게 쉽지 않은 이치와 같다. 옷에 맞춰 모자를 선택하든지 모자에 맞춰서 옷을 입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처마가 나온 경사지붕과 어우러지는 매스를 짜려면 평면은 단순하게 처리되어야 한다.     

설계자가 디자인에 대한 욕구가 강할수록 처마가 빠져나온 경사지붕은 작업의 걸림돌이다. 외관에 치중이 되는 설계는 형태가 복잡해지기 쉽다 보니 처마가 나온 경사지붕을 도외시할 수밖에 없게 된다. 외관 디자인을 우선하다 보면 집을 짓는 목적인 쓰임새를 평면도에 제대로 담지 못하게 된다. 챙이 긴 모자와 어우러지는 옷을 갖춰 입기가 쉽지 않으니 모자를 쓰지 않으려는 것과 같다.

필자 설계 경남 양산 소재 단독주택 심한재, 처마가 빠져나온 경사지붕을 가지면 고전적인 집이라고 일축하지만 디자인을 앞세운 진보적인 집은 살아보면 곧 후회할 확률이 높다. 집은 백 년 뒤에도 살 수 있어야 한다. /김정관

요즘 유행하는 단독주택의 디자인은 수평으로 누운 직육면체 박스가 많이 보인다. 단순하지만 과감한 외관의 느낌으로 시선을 끌 수 있는 집으로 디자인할 수 있다. 조각 같은 조형성을 갖추게 되므로 욕심껏 눈에 띄는 디자인을 뽐낼 수 있을 것이다. 남들이 보는 외관은 조형성이 두드러지니 멋진 집에 산다고 부러운 시선을 받을 수 있다.     

집에서 외관을, 시선을 끌 수 있도록 디자인이 우선되는 작업을 하면 아무래도 내부 공간이 희생될 수밖에 없다. 조각 같은 외관을 먼저 디자인하고 나서 그 틀에 맞춰 내부를 구성해 나가다 보니 내실(內實)보다 겉치레에 우선된다는 얘기다. 평면을 다듬고 나서 그에 맞는 외관 작업을 하다 보면 평범해 보이는 집이 되지만 집을 짓는 목적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고 만다.     

단독주택에 무조건 있어야 할 처마가 빠져나온 경사지붕     

챙이 나온 모자는 강한 햇볕도 가려주지만, 비가 내릴 때도 유용하다. 맹하(孟夏)라고 하는 한 여름의 뜨거운 햇볕이 집을 달구듯이 쏟아지는 장면을 생각해 보자. 또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 창문을 열어두고 밖을 바라보면 처마가 빠져나온 경사지붕 아래 공간이라 여유가 넘쳐난다. 한옥의 대청마루나 사랑채의 마루도 길게 빠져나온 처마가 있어서 실내 공간의 역할에 부족함이 없다.     

이 시대의 주택은 에어컨이나 바닥 난방과 환기장치로 말미암아 창이나 문을 닫고 지내도 일상생활에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공중에 떠 있는 집인 아파트는 그래도 상관없을지 모르지만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은 내외부 공간이 이어지는 공간 체계를 가져야 한다. 처마 없는 단독주택은 건물의 외벽이 집을 쓰는 최종 경계선이 되고 마는 반쪽 집이 된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필자 설계 경남 양산 소재 단독주택 석경수헌, 이 집을 지을 때 건축주의 나이가 여든이어서 집의 유지 관리에 초점을 맞추었다. /김정관
처마 아래에 설치된 외등을 켜니 외벽이 빛난다. 집의 사방이 처마로 둘려 있어서 일흔 나이에 집을 지은 건축주는 유지 관리에 애를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김정관

컵 하나를 쓰면서도 손잡이가 불편해서 뜨거운 물을 쏟기라도 하면 그다음에 쓰기가 망설여진다. 천신만고 끝에 단독주택을 지어 살면서 일상이 편치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근본이 흔들리면 고쳐 쓰는 일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공동주택처럼 쉽게 팔리지도 않는다. 처마가 빠져나온 경사지붕은 단독주택을 지으면서 빠뜨리면 안 되는 기본을 넘어 근본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외관은 남이 주로 보고 내부 공간은 우리 식구들의 일상이 담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예쁜 집에 산다고 부러워해도 우리 식구들의 일상이 편치 않다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것이지 다홍색이면 아무렇게나 치마를 지어도 좋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처마 없이 짓는 단독주택에서 살아보면 얼마 가지 않아 크게 후회할 일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설계 작업은 집이 지어지고 난 뒤에 안락한 삶을 보장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서 사소한 부분까지 철저히 검토되어야 한다. 건축사가 그의 심미안적 결과를 얻는 쪽으로 만든 작품에 건축주 식구들의 일상을 맞추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집이란 불편함이 없이 안락한 일상을 보낼 수 있어야 하니 모양새보다 쓰임새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 경사지붕과 처마는 모양새가 아니라 쓰임새의 요소라는 걸 꼭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처마는 햇볕을 여름에는 집에 들이지 않고 겨울이면 집안 깊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도 창문을 열고 바라볼 수 있으며,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과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는 처마는 자연과 교감하게 하는 기막힌 장치이다. 처마가 없는 집에 산다는 건 햇볕, 비, 바람이라는 자연을 외면하게 되는 것이다. 집은 안락한 삶을 오롯이 담아내야 하는데 이렇게 처마의 중요성을 구구절절 얘기하는 데도 처마 없이 지을 수 있을까?

여성경제신문 김정관 건축사·도반건축사사무소 대표 kahn7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