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주 칼럼]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보여준 K문화의 새로운 가능성
[허영주의 크리에이터 세상] 케이팝 데몬 헌터스 세계적 인기 작품의 특별한 매력과 이유 분석 성공뒤에 남는 아쉬움과 가능성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영어권 영화 부문 넷플릭스 톱10에 무려 93개국 이상에서 이름을 올렸고 OST 앨범은 미국 빌보드 200 차트에서 최고 2위까지 치솟았다. 가상의 K-POP 아이돌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 실제 글로벌 차트까지 장악하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필자는 시청 초반에 김밥, 컵라면, 한옥, 저승사자, 남산타워 등 한국적 소재가 "이것이 한국이다!"를 외치듯 쏟아져 나오는 모습에 조금 당혹스러웠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고 시청이 끝난 후엔 어느새 OST 'Golden'을 흥얼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매력이 대체 무엇일까?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매력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신선함'에 있다. 이 작품은 악마, 호랑이, 도깨비, 아이돌, 갓 등 전통과 현대, 판타지와 K팝이라는 섞기 어려운 요소들을 과감하게 결합해냈다. 이러한 조합은 자칫 잘못하면 '짬뽕' 같이 느껴질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선 여러 조합이 이질감보다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음악의 퀄리티도 기대 이상이었다. 가상 아이돌이 부른 OST라고 해서 대충 만든 곡이 아니라 실제 K팝 산업의 정교한 제작 시스템을 그대로 반영한 듯한 완성도를 보여줬다. 특히 메인 테마곡 'Golden'은 전형적인 K팝의 곡 구조를 따르면서도 극의 분위기와 캐릭터의 정서에 잘 어우러지는 완성도를 보여줬다.
스토리 역시 글로벌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 서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선과 악의 대립, 성장, 우정, 희생 등 인류 공통의 감정을 자극하는 구조 속에 한국적 정서를 녹여내면서 낯선 듯 친숙한 세계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등장인물들의 개성도 한몫했다. 헌트릭스의 세 멤버, 루미(Rumi), 미라(Mira), 조이(Zoey)는 실제 K팝 아이돌 그룹처럼 각자의 '포지션'이 명확하다. 루미는 리더이자 메인 보컬로 팀의 중심을 잡아주며 미라는 비주얼 겸 메인 댄서로 무대 위 화려함을 책임진다. 조이는 메인 래퍼이자 막내로 통통 튀는 에너지와 유쾌한 매력을 발산한다. 이와같이 실제 아이돌 그룹처럼 구성된 완성도 높은 캐릭터 설정은 작품의 핵심 매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시각적으로 완성시킨 것이 바로 비주얼이다.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의 기술력으로 구현된 화려한 액션 시퀀스와 한국적 미장센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그 자체로 새로운 미적 경험을 선사했다.
성공 뒤에 남는 아쉬움
이런 다층적 매력으로 글로벌 성공을 거둔 케이팝 데몬 헌터스지만 한편으로는 복잡한 감정이 든다. 한국 문화를 소재로 한 글로벌 히트작이 정작 외국에서 먼저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K팝의 세계적 영향력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고 전 세계로 유통하는 역량은 아직까지도 미국이 앞서 있다는 사실을 이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소프트파워는 충분히 강력하지만 그것을 산업화하는 시스템과 인프라에서는 여전히 갈 길이 남았다.
우리가 발견해야 할 문화적 가능성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문화의 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증명했다. 전통적인 K팝의 틀을 벗어나 애니메이션, 판타지, 액션 등 다양한 장르와 결합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과감한 시도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적 시도와 함께 한국적 요소들을 더욱 당당하게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다.
이제는 한국인 스스로 우리의 문화를 다시 봐야 할 때다. 우리 스스로에겐 다소 과하게 느껴질 수 있는 요소들이 외국인들에게는 오히려 신선하고 흥미롭게 다가간다는 것을 기억하자.
필자는 한국 창작자들이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우리 고유의 정체성을 과감하게 드러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글로벌 무대는 이미 열려 있다. 문제는 누가 어떤 시선으로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느냐다.
K문화의 가능성은 충분히 확인했다. 이제 실현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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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 허영주 크리에이터 ourcye@seoulmedia.co.kr
허영주 크리에이터
성균관대학교에서 연기예술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걸그룹 ‘더씨야’, ‘리얼걸프로젝트’와 배우 활동을 거쳐 현재는 팬덤 640만명을 보유한 글로벌 틱톡커 듀자매로 활동하고 있다. <2022콘텐츠가 전부다> 책을 썼다.
다재다능한 ‘슈퍼 멀티 포텐셜라이트’로서 여러 채널에서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를 설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한평생 내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어 열정적으로 살아보기’를 실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