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이 더봄] 더운 날일수록 껴안고 싶은 짝꿍

[최진이의 아취 단상(雅趣 斷想)] 7월의 사물, 죽부인(竹夫人) 얼마나 좋았으면 사람처럼 대했을까

2025-07-17     최진이 레터프레스 작업자·프레스 모멘트 대표

2025년 6월 29일, 서울에 첫 열대야가 발생했다. 

작년에 비해 8일 늦게 열대야가 찾아온 걸 생각하면 다행인가 싶으면서도 6월의 열대야가 무슨 일이야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2025년의 폭염과 열대야는 어떤 기록을 남길까. 열대야일수 전국 년자료. 기간 2015 ~ 2024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

6월부터 더웠으니, 7월은 말할 것도 없다. 지구와 전기세를 생각하면 에어컨은 최후의 보루이건만 아침을 준비하다가도 에어컨을 켜고, 잠을 자다가도 더위에 잠을 설치다가 에어컨을 켜는 일은 다반사이다.

지구가 펄펄 끓고 있다고 하는데, 이에 따라 나도 같이 끓고 있으니 그게 더 문제다. 밤마다 두 아이는 덥다고 하면서도 엄마 살에 자기 몸 한군데는 붙여야 잠이 오는 모양이다. 수면시간만큼은 나는 아이들에게 바디 필로우(body pillow) 같은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었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던 걸까. 지금보다 지구의 평균기온이 높지 않았으니 살만했으리라 넘겨짚기엔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았으니 섣부른 추측은 접어두자. 무엇하나 허투루 하지 않았던 우리네 조상들은 이 지긋지긋한 계절을 어떻게든 지내기 위해 여러모로 고민했을 것이다. 

부채질하기, 등목하기, 삼계탕이나 추어탕 먹기와 같은 이열치열(以熱治熱), 계곡물에 발 담그기 등 몇 가지 떠오르는 방법들이 있지만, 이 중에서도 나와 아이들에게 시급하게 도입되어야 하는 방법은 ‘죽부인 껴안고 자기’일 듯싶다. 

죽부인 /국립민속박물관

키는 내 가슴께 오고, 한 아름 안으면 딱 좋은 크기에, 안은 비어 있어서 바람이 들고날 수 있다. 무게도 가벼워서 들기 쉽고, 딱딱하고 시원한 대나무 소재로 만들어진 죽부인. 속이 비어 있는, 시원한 베개라니. 아무도 안고 싶지 않은, 가까이 누군가 다가와 살이 닿기만 해도 이미 올라간 불쾌지수 때문에 금방이라도 폭발해 버릴 것 같은 이 무더운 여름에 죽부인은 이리 안고 저리 안아도 시원하기만 한 짝꿍임이 틀림없다. 

2025년 프레스 모멘트 달력 중 7월 /프레스 모멘트

어쩌다 이런 신박한 물건을 만들게 된 건지 쉬이 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을 해본다. 아마도 대나무로 돗자리, 채반, 바구니나 찬합 같은 것들을 만들다가 조금 크게 만들어진 것들을 몸 한군데에 받쳐보니 시원한 게 괜찮았겠지.

같은 재료로 살이 겹쳐 땀이 고이는 팔에 끼울 수 있게 토시도 만들어보고, 베개도 만들어 잠을 잘 때 베고 자보기도 하고, 그러다 길쭉하고 큰 베개를 만들어 품에 껴안고 자보니 더운 여름밤도 버틸 만했으려나.

대나무로 만든 다양한 물건들. (왼쪽부터) 바구니, 토시, 베개 /국립민속박물관

도대체 죽부인은 어떻게 만드는 건지 궁금해 영상을 찾아보았더니 얇고 긴 대나무 조각을 서로 맞물려서 풀리지 않게 짜 나가면서 원통 형태로 죽부인을 만드는 장인은 - 대부분의 장인이 그렇듯- 대수롭지 않다는 듯 쓱쓱 작업해 나갔다.

슬쩍 보기에는 너무 쉬워 보이는 작업인데 조금 더 집중해서 보면 ‘어떻게 저렇게 하는 거지?’라는 질문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다가 ‘저게 된다고?’하며 의심으로 끝나는 과정. 심지어 죽부인에 나 있는 구멍들의 간격들은 동일하기까지 하다. 자로 재면서 작업한 것도 아닌데···.

구멍의 간격까지 동일한 죽부인. 역시 장인은 장인이다. /프레스 모멘트

장인들은 셀 수 없이 많이도 만들었을 것이다.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버린 것도, 그래서 태운 것도 한가득일 것이다. 기술을 전수해 준 스승에게 잔소리, 쓴소리를 매번 들어가며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을 찾아갔을 것이다. 다가오는 여름내 죽부인을 끌어안고 시원한 밤을 보내고 싶어 하는 이들이 선주문한 여러 개의 죽부인을 열심히 짜고 또 짰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죽부인들은 여러 이들을 푹푹 찌는 더운 여름밤에서 구원해 주었을 테고, 그 대가로 한낱 대나무로 만든 보디 필로우는 죽부인이라는 인격체로 격상되기까지 했다.

죽부인과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몇 가지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아버지가 쓰던 죽부인은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옷가지와 함께 태워버렸다는 것, 여성들이 사용하던 것은 죽노(죽노비, 竹奴)라고 불렀다는 것 등등. 죽부인이 오죽이나 사랑스러웠으면 고려시대 문장가 이규보는 ‘밥상을 차리지는 못하지만, 조용한 것이 가장 마음에 든다’라는 내용으로 죽부인에 대한 시를 짓기도 했다. 

장인이 만든 고가의 죽부인을 인터넷 쇼핑몰 장바구니에 담아만 두었다가 두 달 넘게 남은 여름밤이 두려워 중고 마켓에 올라온 죽부인을 하나 저렴하게 구매했다. 물수건으로 열심히 닦아 아이들에게 안겨주려고 보니 웬걸, 대나무의 가시가 올라온 부분이 여럿이고, 부서진 부분도 있어 그대로 안고 자다가는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나게 생겼다. 역시 누가 쓰던 죽부인은 쓰는 게 아닌가 보다. 

문득 ‘상처 입히는 것이 사랑의 본질이다’라던 고대 로마의 철학자 플루타르코스의 말이 떠오르면서 문장가 이규보 선생에게 가닿지 못할 질문을 넌지시 던져본다. 

“선생님, 술이 과하셔서 수시로 사모님께 잔소리를 들으셨다면서요. 그래서인지 팔다리 없고 조용한 죽부인을 사모님보다 더 애정하신 것 같던데, 죽부인 안고 주무시다가 대나무 가시에 찔리신 적 있으시지요? 죽부인이 팔다리, 입만 없지 선생님께 드릴 메시지는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여성경제신문 최진이 레터프레스 작업자·프레스 모멘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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