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카 로망 실현?"···EV컨버전 시대 왔지만 韓 제도 '미비'

유럽·미국 개조 업체·전환키트 시장 활발 전기차 전환의 실질적 보완책으로 부상 정부, EV컨버전 제도적 가이드라인 부족 "친환경·일자리 창출 두 마리 토끼 효과"

2025-07-16     김성하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 카운티 페블비치에서 열린 '페블비치 투르 델레강스'에서 참가 차량들이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해당 사진은 EV컨버전과 무관하다. /AP=연합뉴스

기존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개조하는 'EV컨버전(EV Conversion)' 시장이 전기차 전환의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클래식카 등 올드카의 수명을 연장하면서 마니아층의 로망을 지켜주는 수단으로 각광받는다. 산업 성장 가능성은 높지만 국내에선 관련 법규가 마련되지 않아 제도 기반이 미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5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각국의 탄소 배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EV컨버전 산업이 급부상하고 있다. EV컨버전은 차량의 엔진과 변속기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전기 모터와 배터리를 탑재해 동력원을 전기로 바꾸는 방식이다. 차량 프레임은 그대로 두고 동력계만 교체하는 구조가 특징이다.

EV컨버전은 올드카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특히 클래식카 문화가 깊이 뿌리내린 유럽과 미국에서 전동화 시대에도 내연기관차의 감성을 유지하려는 수요가 늘며 시장이 활성화됐다. 현지에선 전문 업체들이 개조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자가 전환을 위한 키트도 판매되고 있다.

시장 성장 가능성도 뚜렷하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직 마켓 애널리시스에 따르면 EV컨버전 키트 시장은 2022년 약 25억 달러(약 3조5000억원)에서 2030년 68억 달러(약 9조8000억원)로 커질 전망이다.

기아 프라이드 5도어 LX 모델의 전기차 개조 사진. /기아영국법인

친환경 정책을 보완하는 수단으로도 EV컨버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노후 차량을 재활용해 탄소 배출을 줄이는 효과가 있어 환경적 효과가 두 배에 달한다는 평가다. 정부가 목표로 제시한 '2030년 전기차 비중 50%' 달성에도 현실적인 보완책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따른다.

완성차업계도 EV컨버전 산업에 주목하고 있다.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모든 신차를 전기차로 전환하는 전략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포드, 미니, 르노 등 글로벌 기업들도 컨버전 사업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포드는 마하-E GT 모델에 탑재되는 독립형 전기 모터를 전기차 개조용으로 4340달러(약 566만원)에 별도 판매하고 있으며 미니는 '리차지드(Recharged)' 프로그램을 통해 1959~2000년 생산된 빈티지 미니를 대상으로 전기차 개조 사업을 진행 중이다.

기아도 EV컨버전에 나선 사례가 있다. 기아 영국법인은 브랜드 80주년을 맞아 1993년 출시된 '프라이드 5도어 LX'를 전기차로 개조해 공개했다. 현지 컨버전 전문업체와 협력해 제작됐으며 보닛 아래에는 엔진 대신 배터리가 탑재됐다. 

개조전기차 주행 안전성 실증사업. /중소벤처기업부

국내에선 한국자동차연구원이 2021년부터 정부 과제로 EV컨버전 실증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나 속도는 더디다. 개조 차량이 실제 도로를 달리기 위해선 한국교통안전공단(KATRI)의 안전성 심사를 통과해야 하지만 현재까지 승인 사례는 없다. 업계 관계자는 "구체적인 심사 기준과 관련 가이드라인이 여전히 부족하다"라고 지적했다.

최근엔 디젤 차량을 전기차로 개조하려는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올해 디젤 차량의 전기차 튜닝 안전성 검증을 위한 기술개발에 착수했다. 이는 전기차 튜닝 시장의 기술 표준과 안전 체계 마련을 위한 첫걸음으로 EV컨버전 차량의 안전성 평가 시스템, 정기·튜닝검사 기술, 절차 수립, 인력 양성 방안 등을 포함한다.

다만 넘어야 할 산도 존재한다. 개조 차량은 구조적 안전성과 신뢰성 측면에서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특히 노후 차량의 경우 고전압 시스템을 견딜 수 있는 한계가 존재하고 전기 모터와 배터리를 정교하게 장착하는 기술도 필수적이다. 양산형 전기차와 달리 배터리 탑재 공간이 제한적인 만큼 충분한 성능 확보에도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개조하는 EV컨버전은 이미 7~8년 전부터 제도화 필요성이 제기됐던 사안"이라며 "해외에서는 중소기업 중심으로 시장이 활성화돼 있고 정부 보조금도 지원되는 상황이지만 한국은 관련 부처 간 이견과 구조적 문제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등 관련 부처 간 권한 다툼으로 시범 사업조차 수년째 지지부진한 상태"라며 "기존 내연기관차를 활용해 친환경 전환 효과를 극대화하고 중소기업에 새로운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만큼 정부 차원의 명확한 기준 정립과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라고 강조했다.

여성경제신문 김성하 기자 lysf@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