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더봄] 꽃과 새가 어우러지는 세계를 만났어요
[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조선시대 민화 화조화를 보며 일상의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읽다
지난 주말 대구 간송미술관에 다녀왔다. 대구의 시립미술관으로 작년에 개관한 이곳에서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유산을 상설 전시하고 있는데, 마침 첫 기획전이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게 됐다.
다음 달 3일까지 열리는 ‘화조미감(花鳥美感)’ 전시는 제목 그대로 조선 민화 중 화조화를 시대별로 소개한다. 화조화는 꽃과 새를 주 소재로 그리는데, 이 두 가지 외에도 나무와 풀, 산과 강, 곤충과 동물들도 곳곳에 등장해 감상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전시 소개 글에 따르면 16~17세기에는 화조화에 문인의 이상을 담아 가치를 부여했다면, 18세기에는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 등 깊이 있는 관찰과 시정을 통해 자신만의 화법으로 완성한 화조화가 등장했고, 19세기에는 전문 화원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며 오원 장승업 등 탐미적 미감을 표현한 작품으로 이어진다.
이런 맥락 속에서 조선시대 화조화를 두루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에 대구까지 가는 길이 멀지 않았다.
겸재의 진경산수화, 단원의 풍속화가 익숙했던 나에게 이들이 그린 화조화를 한자리에서 감상한다는 건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16세기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발전시킨 것으로 보이는 겸재의 ‘하훼영모화첩’은 패랭이꽃과 맨드라미 등의 꽃과 닭, 고양이, 매미, 나비 등 다양한 자연 속 생물들을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그림을 보고 있자니 겸재의 화조화를 진경 시대의 화조화로 부르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고양이가 그려진 화조화도 눈에 띄었다. 겸재와 단원은 물론 변상벽의 화조화에 등장했는데, 고양이의 털부터 감정까지 정밀하게 그려진 이 그림들은 한자로 70세를 의미하는 ‘모’ 자가 고양이 ‘묘’ 자와 발음이 비슷하기에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같이 그려진 국화와 나비 역시 장수를 기원하고 암수 한 쌍으로 그려진 동물들은 부부간의 금실과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이라 하니 민화가 기복과 기원을 담은 그림이라는 것이 자연스레 이해됐다.
마침 지난달 말 부서원들과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조선민화전’을 보러 갔었다. 책가도, 문자도, 백선도, 화조도, 어락도, 호작도 등 민화를 소재별로 나눠 전시한 대규모의 고미술 기획전이었는데 이때도 작품을 감상하며 조선시대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과 그들이 그림에 담고 싶어 한 기원들을 자연스레 엿볼 수 있었다.
조선 민화는 그리는 방식에 있어 왕실과 양반을 위해 그려진 장식성이 강한 그림과 틀에 구애받지 않고 창의력을 발휘한 서민을 위한 그림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아무래도 후자의 그림들이 더 자유로운 구성과 색채를 사용했는데 그때 감상했던 화조도가 떠올랐다.
‘모란도 10폭 병풍’이었는데 전체 그림을 2단으로 나눈 창의적 구성으로 위쪽에는 활짝 핀 모란을 아래쪽에는 동물을 배치한 그림이었다. 크고 화려한 모란은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꽃이고, 좋은 소식을 가져다주는 까치와 나쁜 기운을 쫓아내는 호랑이 등 그림을 보며 당시 사람들이 기원했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현실생활에서의 부귀와 행복을 염원하는 길상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도 민화 감상의 매력이다. 그중에서도 화조화는 꽃이 뿜어내는 좋은 향기와 듣기 좋은 새들의 지저귐까지 상상할 수 있어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그림이다. 여기에 주문을 외우듯 행복을 기원하는 당시 선조들의 바람이 담겨있는 그림이라니, 오랫동안 화조화가 사랑을 받아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
민화라는 용어를 처음 제시한 일본의 민예 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는 민화를 '민중 속에서 태어나서, 민중을 위하여 그려지고, 민중에 의해서 구입되는 그림'이라고 말했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과 원하는 삶을 해학을 가미해 그려낸 민화.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끼게 된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주 공공기관인, 전 매거진 편집장 hyunjoo7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