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줄이고 가격은 그대로”···저도주 트렌드 뒤 숨은 가격 인상 꼼수
롯데칠성 ‘처음처럼’ 도수 16도로 낮춰 저도주 트렌드에 희석식 소주 수요 감소 ‘주정’ 함량 줄이고 도수 낮춰 원가 절감 주류업계 “주정 외에 다른 비용 증가”
최근 소주업계가 잇따라 제품 도수를 낮추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원가 절감용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알코올 함량을 줄이면 주세 부담과 원재료 비용이 동시에 낮아지는 구조인 만큼, 소비자 건강과 취향을 내세운 마케팅 뒤에 숨은 비용 절감 의도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0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롯데칠성음료는 소주 ‘처음처럼’의 알코올 도수를 4년여 만에 16.5도에서 16도로 낮추기로 결정했다. 롯데칠성음료는 이번 도수 조정과 함께 작년에 변경된 라벨 디자인과 출고가는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회사 측은 저도주 트렌드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인구 감소, 음주 문화 변화 등에 따라 지속적으로 감소하던 주류 소비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가 강해지고 자연스럽게 음주횟수 감소, 저도주 선호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최근 희석식 소주 수요는 감소하고 있다.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2023년 국내 희석식 소주 출고량은 84만4250㎘로, 전년보다 약 2.0%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91만5596㎘)과 비교하면 약 7.8% 감소한 수치다. 같은 기간 전체 주류 출고량은 각각 1.0%, 4.1% 줄어드는 데 그쳐, 희석식 소주의 감소폭이 유독 두드러졌다.
반면 상대적으로 도수가 낮은 하이볼과 칵테일 등 리큐르의 경우 2019년 2536㎘에서 2023년 3406㎘으로 약 34% 증가했다. 주류 시장의 흐름이 점차 저도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롯데칠성음료는 2006년 첫 출시 당시 20도였던 처음처럼의 도수를 19.5도(2007년), 19도(2012년), 18도(2014년), 17.5도(2014년), 17도(2018년), 16.9도(2019년), 16.5도(2021년) 등으로 점차 낮춰왔다.
경쟁사인 하이트진로의 '참이슬 후레쉬'와 '진로' 등 소주 제품의 도수도 16도다. 참이슬 후레쉬는 출시 초기에는 23도였으나 2019년 17도까지 점차 낮아지면서 지난해 초 16.5도에서 16도로 또 한 번 도수를 내렸다. 진로도 지난해 16.5도에서 16도로 도수를 낮췄고, 지난해 출시한 '진로 골드'의 경우 이보다 낮은 15.5도로 부드러운 목넘김을 강조했다.
이처럼 주류업계가 제품의 알코올 도수를 인위적으로 낮췄음에도 불구하고 출고가나 소비자 가격에는 변동이 없어,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가격 인상 효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동일한 가격을 지불하고도 낮은 도수의 제품을 구매하게 되면서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성비는 떨어진다는 평가다.
희석식 소주는 소주 원료인 주정(에탄올)으로 알코올 도수를 결정하는데, 도수가 낮아질수록 주정이 덜 들어가서 원재료 비용 부담이 감소한다. 또한 도수를 낮추면 주세 부담도 낮아진다. 소주를 포함한 주류에 부과되는 주세는 ‘알코올 도수’에 따라 세율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구조적 특성을 비춰봤을 때 제조원가는 절감하면서도 가격은 동결하는 방식이 사실상 가격 인상이며 결국에는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비판으로 번지고 있다.
하지만 주류업계는 도수를 낮추면서도 가격을 유지하는 데에 원가 구조와 시장 트렌드, 업계 관행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정 외에도 원가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의 비용이 상승하고 있음에도 내부적으로 소비자 부담을 낮추기 위해 감내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주정 값이 물 값보다 비싸기 때문에 주정이 덜 들어가면 똑같은 상황에서 이익률이 개선되는 건 맞다”면서도 “하지만 주정 외에도 원가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 그런 요소들의 우상향에 의해 출고가는 변동 없이 도수만 인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격 상승 요인이 있을 때 즉각 출고가에 반영할 수 없다보니 현실적으로 일정 부분은 감내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다”며 “타사 같은 경우에도 알코올 도수를 낮출 때 출고가를 인하한 경우가 없었다. 또한 결과적으로 저도주 트렌드가 강세다보니 이런 추세를 맞춰 가려했던 게 크다”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류빈 기자 rba@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