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타운 2.0] (44) "비상벨이 안 보여요"···스마트 기술 도입의 맹점
시니어타운 스마트 돌봄 기술 도입 활발 "연계 인프라·내부 시스템 구축" 제언도
비상벨, 낙상 감지 센서, 생체 모니터링까지. 스마트 기술이 실버타운에 속속 도입되고 있지만 이를 실제로 작동시킬 대응 체계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1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고령자 주거시설에 다양한 스마트 기술이 도입되고 있다. 움직임 감지, 응급 호출, 생체 신호 감지 장치 등이 설치되며 고령자의 안전을 강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다만 기술의 실제 작동성과 효용을 좌우하는 대응 체계는 아직 미비한 실정이다. 고령자의 사용 편의성과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병행돼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스마트 기술 도입의 대표 사례로 케어닥이 운영 중인 배곧신도시 케어홈·너싱홈이 있다. 이곳은 독일 시찰단에 ‘K-스마트 돌봄’ 사례로 소개됐다. 낙상 알림 시스템, 스마트 기저귀 센서, 생체신호 기반 정신건강 기기 등 다양한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을 접목하고 있다. 통신사, 건설사, 헬스케어 스타트업 등도 고령자 주거 시장에 진입하며 기술 도입이 더욱 활발해지는 추세다.
이처럼 일부 시설은 다양한 스마트 설루션을 시도하고 있지만 상당수 고령자 주거시설에서는 호출 버튼이나 움직임 감지 센서 등 기본적인 안전장치 위주로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박동현 전 더클래식500 사장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움직임 감지 센서나 호출 버튼은 대부분의 노인 주거시설에서 기본적으로 설치한다”며 “시설마다 틀리지만 일반적으로는 생활 동선에 따라 화장실, 침실, 거실 등 주요 공간에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기술 도입만으로는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어떤 체계 안에서 작동하느냐’가 핵심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고령자의 특성을 함께 고려해야 하며 설치된 기술이 실제 대응 체계와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동되는지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박동현 전 사장은 “아무리 유익한 기술이라도 고령자들이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면 생활 속에서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며 “기술 도입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르신들이 그걸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박광재 한국주거학회 회장은 여성경제신문에 “센서나 호출 벨 등의 기술 자체는 대부분 잘 작동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대응 체계에 연계하느냐’라는 시스템의 문제”라며 “센서가 감지되거나 버튼을 눌렀을 때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인력, 시간, 거리 등의 조건이 충족돼야 실효성이 생긴다. 결국 119 등 공공시스템과 연동하는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안전도 공공이 담당해야 할 핵심 영역”이라며 “시설 내 인력이 도달한다고 해도 실제 할 수 있는 조치는 제한적이다. 결국 생명과 관련된 대응은 공공과 연계돼야 하며 이를 위한 시스템을 국가 차원의 인프라로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공간 설비 기준은 법으로 만들기 쉬운데 이를 실제로 작동시키는 운영 체계나 유지·관리 인력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다”며 “서비스 인력을 법으로 의무화한다고 해도 인건비 부담은 민간 시설이 모두 떠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인력을 늘리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공공이 담당할 안전 기능과 민간이 선택할 편의 서비스는 구분하고 각각의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며 “공간 설계와 복지 서비스, 공공 안전 체계가 통합 작동하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설치 기준은 존재하지만 ‘잘 작동하는지’의 문제는 별개인 사례도 있다. 박 회장은 “비상 호출 버튼의 경우 이미 제도적으로 설치 기준이 명확히 마련돼 있다. 예컨대 화장실 변기에 앉은 상태에서 누를 수 있는 위치나 바닥에 쓰러졌을 때 작동할 수 있도록 바닥에서 약 25㎝ 높이 등에 버튼을 설치하도록 규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버튼의 디자인, 크기, 형태 등은 자율에 맡겨 있다. 그는 “어떤 곳은 손으로 당기는 줄 형태, 어떤 곳은 무선 버튼 형태로 설치돼 있고 방수 기능 여부나 크기 및 디자인도 제각각”이라며 “기능 자체는 잘 작동하지만 크기가 너무 작거나 눈에 잘 띄지 않아서 위급할 때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이런 사례가 있다고 해서 호출 벨의 크기, 색, 디자인을 법으로 일률 규정하자는 식으로 접근하면 오히려 문제 해결보다는 산업과 기술을 경직시킬 수 있다”며 “핵심은 그 기능이 실제 사용자에게 잘 작동하느냐며 현장에서 제품을 적절히 선택하고 관리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