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美 관세·세액공제 '채찍과 당근'···韓 반도체 셈법 '복잡'
8월 1일부터 모든 한국산 수입품에 관세 부과 반도체 등 품목관세 포함, IT 가격경쟁력 우려 정부, 통상·외교안보 수장 방미 통해 막판 협상 "OBBBA, 일부 수혜일 뿐 투자 확대는 어려워"
미국이 다음달 부터 모든 한국산 수입품에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 국내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기존에 기본 관세가 면제됐던 반도체 분야까지 대상에 포함되며 수출 전략 전반의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서한을 통해 오는 8월 1일부터 모든 한국산 수입품에 25%의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를 비롯한 주요 수출 품목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관세 우려에 따른 '풀인(Pull-in)' 수요가 반도체 수출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상반기 반도체 수출액은 732억7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1.4% 증가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인공지능(AI) 관련 메모리 수요 확대와 단가 상승, 선구매 수요 증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기존 반도체는 품목 관세 부과 대상으로 현행 기본 관세(10%)가 부과되지 않았으나 미국이 '모든' 한국산 수입품에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으면서 반도체 수출도 예외가 아니게 됐다. 이는 1997년 미국 주도로 발효된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정보기술(IT) 기기에 무관세가 적용돼 온 것으로 관세가 부과될 경우 가격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이번 조치가 WTO 정보기술협정의 취지와 배치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호 관세'라는 명목으로 다자간 협정을 우회하며 사실상 이를 무력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미국은 2018년에도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며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운 바 있다. 당시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수입 제한 조치를 단행했으며 EU와 중국, 캐나다 등이 이를 WTO에 제소해 위법 판정을 받아냈다. 하지만 미국이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WTO 체제의 한계를 드러냈다.
산업부는 이날 관세 서한 공개 후 참고 자료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서한은 사실상 상호 관세 부과 유예가 연장된 것으로 판단된다"라며 "남은 기간 동안 관세로 인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상호 호혜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협상에 박차를 가하겠다"라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5일과 6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과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을 각각 미국에 파견해 협상에 나섰다. 여 본부장은 워싱턴 도착 직후 취재진과 만나 "AI,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에너지, 바이오는 미국의 제조업 재건에 필수적이며 한국이 경쟁 우위를 가진 분야"라며 "관세 협상과 중장기 산업·기술 협력을 함께 논의해 '포지티브섬' 방식으로 풀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가 추진해 온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이 상원을 통과하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에는 뜻밖의 수혜가 생겼다. 기존 25%였던 반도체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가 35%로 확대됐으며 2022년 말 이후 가동되거나 2026년 말 이전 착공되는 시설이 대상이다.
법안이 하원까지 통과될 경우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실질적인 재무적 혜택을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2021년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제2파운드리 공장을 착공했으며 내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인디애나주 웨스트 라피엣시에 첨단 패키징 공장 설립을 발표하고 현재 착공을 준비 중이다.
다만 법안의 하원 통과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일부 공화당 강경파는 해당 법안이 "무기력하다"라며 반대하고 있으며 민주당도 반대표를 예고한 상태다. 상원에서는 찬반이 50대 50으로 팽팽히 갈린 가운데 부통령인 J.D. 밴스의 캐스팅보트로 간신히 통과됐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현재로선 정해진 것이 없어 대응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며 "국가별 상호 관세나 품목별 관세 모두 구체적인 결정이 내려지지 않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OBBBA 상원 통과와 관련해 그는 "내년 말까지 착공하는 반도체 시설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는 이미 진행 중인 투자에 일부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해 약간의 수혜가 있을 수 있다"라면서도 "해당 법안이 기업의 투자 결정을 근본적으로 바꿀 만큼의 유인은 아니며 갑작스러운 투자 확대나 새로운 시장 창출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김성하 기자 lysf@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