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타운 2.0] (42) 실버타운 대신 대학 기숙사···젊은 은퇴자 레지던스 나온다

남서울대, 국내 첫 기숙형 UBRC 추진 복지시설 아닌 교사시설로 인허가 시도 "교육·주거 결합한 은퇴자 주거 모델"

2025-07-09     김정수 기자
건강하지만 일상 돌봄은 필요한 은퇴자를 위한 새로운 시니어 주거 모델이 등장했다. 기숙사 형태로 교육과 생활을 결합한 UBRC(University-Based Retirement Community)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다. /챗GPT

# "젊은 시절 배우지 못했던 분야를 공부하고 싶어요." 57세에 은퇴한 A씨는 관심 있던 학문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다. 혼자 사는 일상도 불편해졌다. 시니어타운에 들어가기엔 이른 그는 인생 2막을 설계할 새로운 주거지가 필요했다.

건강하지만 일상 돌봄이 필요한 65세 미만 은퇴자를 위한 시니어 주거 모델이 떠오른다. 기숙사 형태로 교육과 생활을 결합한 UBRC(University-Based Retirement Community)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다.

8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충남 천안의 남서울대학교는 캠퍼스 내에 시니어 전용 기숙사 1000실을 설계하고 UBRC 도입을 추진 중이다. 입주자는 대학 평생교육원에 입학한 학생 신분으로 기숙사에 거주하는 구조다. 남서울대는 지난달 19일 한국UBRC위원회와 공식 자문 계약을 체결하고 교사시설로 인허가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UBRC는 대학 캠퍼스나 인근에서 은퇴한 시니어가 교육과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며 생활하는 모델이다. 국내에서는 주거지를 복지시설이 아닌 교육시설의 기숙사로 접근한 첫 사례다. 김종률 한국UBRC위원회 위원장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기숙형 UBRC를 추진하는 이유는 건강하고 젊은 은퇴자가 대상이기 때문”이라며 “복지시설(노유자시설)은 입주 연령이 60세 이상으로 제한된다. 교사시설로 접근한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UBRC는 단순히 주거만 제공하는 것이 아닌 리스타트(재시작)의 개념”이라며 “은퇴자도 계속 일하고 배워야 새로운 산업 참여와 함께 선순환 구조가 이뤄진다. 교육과 주거를 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기숙형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형식은 기숙사지만 서비스는 복지시설 수준으로 제공된다”고 덧붙였다.

남서울대학교 UBRC 조감도 /한국UBRC위원회 제공

남서울대 UBRC는 입주자가 대학 인프라를 활용해 교육은 물론 건강관리, 멘토링 활동까지 함께하는 구조로 설계되고 있다. 대학과 연계한 순환 거주 프로그램을 통해 대학별 특성화 교육과정을 경험하고 지역 명소를 방문해 새 친구를 사귀는 등 다양한 경험과 추억을 쌓을 수 있는 환경도 마련한다. 젊은 학생들과 소통하는 멘토링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미국의 UBRC와 제휴를 통해 글로벌 시각도 넓혀갈 계획이다.

김 위원장은 “평생교육원도 기숙사 설치가 가능하다. 정규 학생이 아니더라도 교육받는 원생 대상 기숙사로 인허가를 받을 수 있다”며 “기숙형 레지던스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지금까지 이 모델로 인허가를 낸 대학이 없어 사례가 없을 뿐”이라고 했다.

교육시설 부지 용도 전환 과정에서 교육부 승인 여부가 쟁점으로 제기되지만 김 위원장은 “교사시설은 원래 교육 목적이므로 용도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 수익용으로 전환될 때만 교육부 승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남서울대는 자문 계약을 바탕으로 인허가 검토, 자금 유치, SPC 설립, 설계 착수 등 본격적인 사업화에 들어간 상태다. 오창환 남서울대 기획조정처 부장은 여성경제신문에 “정식 자문 계약을 체결하고 진행하는 것은 국내에서 남서울대가 처음”이라며 “계약서와 보고서를 기반으로 한 구조화가 선행돼야 사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모델은 고령자 주거 문제를 넘어서 지방대 구조조정, 지역사회 활성화 해법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다만 제도상 과제도 남아 있다. 핵심 쟁점은 ‘기숙사 내 취사 시설 설치’ 문제다. 현행법상 기숙사는 제한된 비율만 취사 공간을 허용하고 있다.

오 부장은 “이미 일부 대학 기숙사에 주방이 설치된 사례가 있다”며 정부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방대에는 유휴부지가 많지만 제도적 한계로 활용이 어렵다. 이번 시도가 지방대·지역경제·고령자 복지까지 모두 살리는 선도 모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김종률 위원장도 “기숙사 내 취사 시설은 법적으로 일부 제한이 있지만 서울대 관악생활관 가족생활관처럼 예외 사례가 있다. 대학원생 부부가 거주하는 공간은 투룸 구조에 취사 시설이 갖춰져 있다”며 “기숙형 UBRC도 시니어 부부를 모시는 구조로 기본적인 취사 시설은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이 부분만 원만히 해결된다면 (기숙형 UBRC가) 법적으로 문제 될 사항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남서울대는 7~8월 중 기숙사와 취사 시설 설치 등과 관련해 교육부·국토부와 협의를 진행하고 진척이 없을 경우 9월 임시국회에서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오창환 부장은 여성경제신문에 “지방대 유휴부지를 활용한 이 모델은 대학, 지역, 고령층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구조다. 새로운 주거 모델로 제도적 장려가 필요하다”라며 “행정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2026년 7월 건축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