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억으로 전세 못 구하는데”···이주 앞둔 재건축 조합 ‘날벼락’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 금지  이주 단계 대출금 6억원 이하 제한 시공사 이주비 지원 부담 급격 상승

2025-07-03     유준상 기자
서울 서초구 잠원동 ‘메이플자이’ 공사 현장 /GS건설

정부의 고강도 대출 규제가 재건축 소유주에게 큰 타격을 입힐 전망이다.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이 불가해지고 새 아파트가 지어질 때까지 살 집의 전세금으로 쓰게 될 이주비 대출을 6억원까지만 받을 수 있게 된다. 

3일 금융위원회 등에 따르면 6·27 부동산 대책 발표 전까지 전세 임대차 계약서를 쓰지 않은 수도권·규제지역 단지는 일명 ‘갭투자용 전세대출’로 불리는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이 불가능하다. 재건축 후 입주를 앞둔 단지도 적용 대상이다.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은 세입자가 전세자금대출을 받는 날 해당 주택의 소유권이 바뀌는 조건으로 진행된다. 입주 단지의 경우 전세대출을 받는 주체가 세입자이기 때문에 대책 발표 전에 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은 불가하다는 것이 정부 판단이다.

이에 따라 전세보증금을 받아 잔금과 정비사업 분담금(조합원이 새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을 내려 했던 조합원들도 비상이 걸렸다.

지난달 30일 입주를 시작한 서울 서초구 잠원동 ‘메이플자이(3307가구)’를 비롯해 올해 서초구 방배동 ‘래미안원페를라(1097가구)’, 강남구 청담동 ‘청담르엘(1261가구)’, 송파구 신천동 ‘잠실래미안아이파크(2678가구)’ 등이 입주를 앞두고 있다. 부동산 프롭테크 업체 직방에 따르면 올 하반기 서울 아파트에는 모두 1만4043가구가 입주할 전망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재건축·재개발 단지가 적용받는 대출 규제가 이것 말고도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먼저 이주 단계에서 대출금이 6억원 이하로 제한된다. 지난달 27일까지 관리처분인가를 받지 못한 단지가 대상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 3월 기준 사업시행인가를 마치고 관리처분인가를 앞둔 정비사업장은 모두 52곳, 4만8633가구에 이른다. 용산구 한남2구역, 강남구 개포주공6·7단지, 노량진1구역 등이 포함돼 있다.

이번 대출 규제로 서울 주요 정비 사업지 조합원은 이주 계획에 큰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강남권 재건축 단지와 한남2구역 등 강북 재개발 지구는 대출을 6억원만 받아서는 이주가 불가능한 것으로 분석됐다. 여기에 2주택자 이상은 이주비 대출이 아예 나오지 않는다.

강남 지역의 한 재건축 조합장은 “최대 6억원을 받아도 강남권에서 전세를 구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다른 재건축 단지 조합장은 “큰 평수를 가진 조합원일수록 이주비가 많이 필요한데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며 “자칫 대형 평형 보유자의 사업 추진 의지가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근 건설사들의 수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부 사업장에서는 건설사가 자체적으로 이주비를 지원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대출 규제 이전에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 50%까지 이주비 대출이 됐기 때문에 건설사가 나머지를 지원해주는 구조였다.

이번 대출 규제에 따른 재정 부담은 개별 건설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라는 게 건설업계 시각이다. 조합원이 조달할 수 있는 금액이 6억원으로 제한돼 건설사가 부담해야 할 몫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사도 이주비를 빌리려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보증을 받아야 하는데 이자가 연 6% 수준”이라며 “일부 대형 건설사를 제외하곤 사업비 대출을 감당할 곳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을 잘 넘겨서 입주 단계에 들어가면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뿐만 아니라 잔금대출 6억원 규제의 영향까지 받게 된다. 만일 운 좋게 세입자를 구해도 실거주를 위해 집주인이 들어가려 할 때 문제가 또 생긴다.

지난달 28일 이후 이뤄진 임대차 계약은 전세반환대출이 ‘생활안정자금 목적 주택담보대출’로 분류돼 대출 상한이 1억원으로 묶이기 때문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강남 등 선호 지역일수록 6억원이라도 대출을 받아 입주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라며 “전세 물건이 크게 줄어들고 반전세(전세+월세)가 대세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번 대출 규제가 수요 억제를 넘어 주택 공급까지 막을 수 있어 세밀한 정책 조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획일적인 대출 규제는 수요 억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정비사업 동력을 떨어뜨려 공급 억제로 이어질 우려가 높다”며 “저소득층 주거 안정에 정책 목표를 두고 공급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핀셋 규제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여성경제신문 유준상 기자  lostem_bass@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