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예산 0원으로 실버타운 살릴 묘안, '입주 자격 완화'

[유튜브 채널 '공빠TV' 문성택 대표] 실버타운 입주 연령, 현실과 괴리 자녀 동반 금지 규정, 가족 돌봄 막아 비용 없는 제도개선 해법 될 수 있다

2025-07-01     문성택 유튜브 '공빠TV' 대표
현행법상 실버타운 입주 자격은 60세 이상 노인과 24세 미만 자녀로 제한돼 가족 동반 입주가 불가능하다. 이를 개선해 55세 이상 및 자녀 동반 입주를 허용하면 민간 투자 활성화, 복지비용 절감, 가족 삶의 질 향상 등 사회 전반에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내가 왜 그런 곳에 가야 하느냐?”

대한민국이 내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지금 실버타운 이야기를 꺼내면 부모님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다. 실버타운을 요양원처럼 오해하고 아직은 갈 곳이 아니라고 거부한다. 그런데 실제 살아본 분들은 이렇게 말한다.

“더 늦기 전에 들어올 걸 그랬어요. 이제야 살 것 같아요.”

한데 실버타운 입주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 현실 앞에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법 규정이다.

현행 '노인복지법' 제 33조의 2(노인복지주택의 입소자격 등)는 입주 자격을 ‘60세 이상의 노인’으로 한정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동반 입주 규정이다.

같은 법 조항 제1항 제2호에 따르면 입주자와 함께 살 수 있는 자녀는 ‘입소자격자가 부양을 책임지고 있는 24세 미만의 자녀·손자녀’로 명시되어 있다. 때문에 부모를 모시고 함께 입주하려는 중년 자녀의 길은 원천적으로 막혀있는 셈이다. 이 규정이 실버타운의 본질을 ‘가족 공동체’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

인천 청라국제도시에 위치한 ‘더시그넘하우스청라’에 최근 입주한 한 부부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미국에서 오랜 세월 화가로 활동하던 남편은 70대에 접어들어 파킨슨병을 앓게 되면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부모님의 노후를 걱정한 두 딸이 한국의 실버타운 입주를 간곡히 권했지만 부부는 처음엔 완강히 거부했다. 딸들의 정성 어린 설득은 2년 넘게 이어졌고 마침내 부부는 입주를 결정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남편은 매일 단지 내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며 위축되었던 발성과 언어 능력을 회복했고 청라 신도시의 쾌적한 공원과 산책로를 꾸준히 걸으며 기력을 되찾았다. 여기에 규칙적인 식사와 다채로운 커뮤니티, 건강 프로그램을 통해 몸과 마음 모두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감동적인 변화는 아내에게 찾아왔다. 남편의 간병에 묶여 있던 아내는 남편이 점차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해질 만큼 건강을 회복하자 비로소 자신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이제 직접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인생 2막을 새롭게 열어가고 있다.

이 사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자녀들의 역할이다. 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둘째 딸은 실버타운 인근으로 이사했고 큰딸은 미국에서 수시로 왕래하며 부모님을 돌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만약 이 중년의 딸들이 부모님과 함께 실버타운에 입주하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2년간의 길고 힘들었던 설득 과정은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부모님의 입주와 건강 회복은 훨씬 앞당겨졌을 것이 분명하다.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입주 연령을 55세로 낮추고 둘째, 만 24세 이상 자녀와의 동반 거주도 허용해야 한다. 실버타운을 ‘노인만 사는 곳’이 아닌 생애전환기를 맞은 시니어와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플랫폼으로 만들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이 제안의 가장 큰 강점은 정부의 직접적인 예산 투입이 전혀 필요 없는 ‘비용 제로’ 정책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 효과는 사회 다방면에 걸쳐 나타나는 강력한 ‘나비효과’를 일으킬 것이다.

첫째, 민간 기업의 사업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입주 연령을 55세로 낮추고 자녀 동반을 허용하면 잠재 수요층이 경제력 있는 50대 후반과 그 가족 단위까지 대폭 확대된다. 이는 실버타운을 건설하려는 기업에게는 안정적인 분양을, 이미 운영하는 기업에게는 높은 입주율과 운영 안정성을 보장한다.

공실 위험이 줄고 예측 가능한 수익 구조가 만들어지면 기업들은 더 과감하게 투자하고 양질의 시니어 주거 서비스를 공급하는 선순환이 시작될 것이다.

둘째, 정부의 막대한 복지 비용을 절감하는 ‘사전 예방’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시니어들이 활동적인 커뮤니티 안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내게 되면 만성질환의 발병 시기를 늦추고, 질병에 걸리더라도 더 빨리 회복할 수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국민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을 높이고 노인 의료비와 간병비 지출을 대폭 줄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수조 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사후 복지 정책보다 규제 완화라는 ‘돈 안 드는 정책’ 하나가 더 효과적인 예방책이 될 수 있다.

셋째, 시니어와 자녀 세대 모두의 삶의 질이 높아진다. 입주를 꺼리는 부모님을 더 이상 설득할 필요 없이 자녀가 함께 입주해 초기 적응을 도우며 심리적 안정감을 드릴 수 있다. 또한 돌봄이 필요한 후기 고령의 부모님을 전문 서비스를 받으며 바로 곁에서 모실 수 있으니, 이는 현대적 의미의 ‘효도’를 실천할 새로운 기회가 된다. 동시에 은퇴를 앞둔 50대 후반 세대 역시 자신의 인생 2막을 활기찬 커뮤니티 안에서 미리 준비하고 누릴 수 있게 된다.

결론적으로 입주 자격 완화는 기업에게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정부에게는 재정 부담 완화를 시니어와 그 가족에게는 더 나은 노후를 선물하는 모두를 위한 최고의 '윈-윈-윈' 전략이다.

실버타운은 중장년과 가족이 함께 사는 노후 주거 혁신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 입주자격 완화라는 작은 제도 개선이 가족의 부담은 줄이고 입주자 만족도는 높이며, 정부와 민간 모두가 윈윈하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이 변화가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의 미래 주거를 바꾸는 커다란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

문성택 유튜브 '공빠TV' 대표

문성택 공빠TV 대표는 한의사로 25년간 의료현장에서 진료하며 행복한 노후의 집을 연구하고 있다. 『실버타운 올가이드』,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의 집』, 『행복 계약서』를 펴냈고, 유튜브 채널 ‘공빠TV’를 통해 고령자 주거, 실버타운, 요양시설 정보를 24만 구독자와 공유하고 있다. 정부·지자체·학회 등의 정책 자문과 강연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