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츤도쿠 가족의 믿을 구석 서울국제도서전

서울국제도서전 현장 방문기

2025-06-28     최영은 기자
서울국제도서전 로고. /서울국제도서전 

말 많고 탈 많았던 2025 서울국제도서전(서국도)에 다녀왔다. 이번 행사에는 국내외 총 17개국 535개 출판 관련 단체가 참여했으며 15만명 사전 예매로 현장 티켓 판매는 하지 않았다. 다행히 츤도쿠(‘책을 사서 읽지 않고 쌓아두는 것’ 또는 그런 습관이나 사람) 가족 일행은 사전 예매를 해서 지난 21일에 방문할 수 있었다.

가히 텍스트 힙(‘텍스트(글, 책)’과 ‘힙하다(멋있다, 개성 있다)’를 합한 신조어) 시대다운 열기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대한민국 업계 1위 서점의 성적표가 떠올랐다. 교보문고의 2024년 영업이익은 마이너스 122억원이다. 1980년 창립한 교보문고는 2019년부터 적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책 외에도 즐길 매체가 많아지면서 사람들의 여가 시간을 채우며 책은 설 자리를 잃어간다고도 하지만 여전히 텍스트의 힘을 믿는 사람들은 책이 주는 경험을 즐기기 위해 서국도를 찾았다.

입장은 10시부터 시작이지만 9시에 도착해 대기 줄에 섰다. /최영은 기자

츤도쿠 가족 역시 책 잔치에 빠질 수 없어 서국도 오픈런을 했다. 입장은 10시부터 시작이지만 9시에 도착해 대기 줄에 섰다. 1시간을 기다린 끝에 들어갈 수 있었다. 코엑스 A홀과 B홀을 꽉 채운 출판사 부스가 츤도쿠 가족을 반겼다.

입장 전 미리 뽑아둔 부스 배치도에서 위치를 표기했다. 사고 싶은 책을 여백에 적었고 남동생이 가고 싶은 부스와 비교해가며 동선을 짰다. 츤도쿠 엄마는 ‘우리 셋은 보는 대로 사려고 하는 경향이 있으니 충동 구매하지 말고 한도를 정하라’고 단도리를 하기도 했다.

부스 보는 것만 보고 책 사는 건 한도 정해 놓고 사려고 했다고 대답했지만 과연 츤도쿠 남매는 지갑을 봉인할 수 있었을까? 동생은 서국도에서 책을 구매하려고 근 한 달간 책 구매를 중지하기까지 했다. 우려와 함께 셋은 책을 이고 갈 큰 사이즈의 가방을 들고 코엑스 B홀로 들어섰다.

들어가자마자 계획했던 구매 목록에 있는 책을 사러 찍어둔 부스로 향했지만 해당 도서는 품절이었다. 서국도에서 처음 공개하는 도서여서 인기가 많았던 것 같다. 되려 엄마가 제일 먼저 지갑을 열었다. 책 제목에 이끌려 즉흥적으로 구매했다. 과연 충동구매를 하지 말라고 단도리를 했던 사람은 누구인가 웃음을 짓게 하는 순간이었다.

어느 정도 책을 구매한 뒤에는 출판사에서 제작한 굿즈를 사기 위해 줄을 섰다. 서국도에서 자체 제작한 굿즈는 오전 10시 30분 경에 이미 동난 상태였다. 사려고 했던 에코백은 구매하지 못 하고 한 대형 출판사의 굿즈를 사러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그 출판사의 굿즈도 오전 판매분은 끝났고 오후 판매분만 남았다고 했다.

책과 더불어 각종 굿즈도 서국도에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기는 요소 중 하나였다. 요즈음 책을 즐기는 독자들은 책꾸(책을 꾸미는 행위)에도 열정적이다. 책을 감싸는 북커버에서부터 책갈피, 분진 등 하나의 취향 소비로 독서를 즐기고 있었다. 각자의 취향 소비로 상기된 얼굴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츤도쿠 가족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서국도 현장 열기에 츤도쿠 동생은 “서국도에 대해 긍정적 여론과 부정적 여론이 공존하는 것을 발견했다. 부정적 여론은 출판업계는 불황인 반면 굿즈를 소비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찬 북페어의 의의를 논하는 입장으로 나뉘었다.

긍정적 여론은 굿즈, 도서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많이 늘어나면 책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늘어나지 않겠냐는 입장이었다. 현장에서 살펴본 바로는 양쪽의 입장이 모두 일치했다. 실제로 대형 출판사의 부스는 굿즈 구매 대기줄이 도서 구매 대기줄보다 훨씬 길었고 그 외 유명 출판사의 굿즈는 10시에 개막한 후 10~30분 만에 매진되었다. 또한 배우 박정민의 출판사 무제X에피케의 경우 아예 한 공간을 구매 대기줄로 배정해야 할 만큼 팬 사인회라도 무방할 긴 줄이 있었다.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도서전에 대한 관심도 좋지만 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며 일시적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이어 츤도쿠 엄마는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참여 인원으로 혼잡했고 쉴 공간이 부족했다”고 아쉬운 점을 짚었다.

서울국제도서전 포스터 /서울국제도서전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는 디지털 시대, 역설적으로 성공적인 전시였던 서울국제도서전을 방문하며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믿을 구석은 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열기는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장은 개막식에서 “삶이 불확실하고 고단할수록 마음 둘 곳을 찾게 된다. 책은 언제나 믿음직한 구석이 돼 왔다”고 말했다.

서울국제도서전 현장을 나서며 츤도쿠 가족은 각자 손에 무게감 있는 책가방을 들고 있었다. 비록 계획했던 책이나 굿즈를 모두 손에 넣지는 못했지만 예기치 못한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더 컸다. 도서전의 북적임과 활기는 책을 둘러싼 사람들의 애정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줬다.

책을 사서 쌓아두는 츤도쿠 가족처럼 각자의 속도로 책과 가까워지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책이 주는 위안과 영감, 그리고 도서전에서의 소소한 설렘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길 바라며 내년 도서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믿을 구석’으로서의 책을 찾길 기대해 본다.

여성경제신문 최영은 기자 ourcye@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