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번에 돈 쓸어 담는 출판기념회···정치인 관행 타파 방안은

규제 없는 ‘검은돈’ 통로, 투명성 제로 野 방지법 발의했지만 통과는 미지수 전문가 "선관위에 금액 신고하게 해야"

2025-06-25     이상무 기자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이마를 만지고 있다. /연합뉴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가 단 두 차례의 출판기념회로 2억5000만원을 벌어들였다고 밝히면서 정치인의 출판기념회가 사실상 '탈법 모금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본래 저자와 독자가 만나 저작의 의미를 나누는 문화의 장이었던 출판기념회가 정치인들의 세 과시와 자금 조달 수단으로 변질된 현실을 타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출판기념회는 선거 자금 등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쉽고 매력적인 모금 수단인 것으로 나타났다. 출판기념회를 통한 도서 판매 수익은 ‘경조사’로 분류돼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다.

김 후보자는 이날 청문회에서 세비 외 수입에 대해 "출판기념회와 축의금, 조의금 등은 평균 출판기념회 1권당 5만원 정도의 축하금을 받았던 것으로 생각이 된다"며 "일반인 눈에서 봐서는 큰돈이지만 평균으로 봐서는 그다지 과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연간 1억5000만원으로 한도가 정해진 정치후원금은 모든 내역을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출판기념회의 유일한 규제는 선거일 90일 전부터 개최를 금지하는 것뿐이다. 책 내용은 대부분 자기 인생의 빛났던 시절만 부각하는 홍보성 자서전이다.

출판기념회는 법의 허점 때문에 고전적으로 음성적인 자금이 오가는 통로가 되기 쉬운 구조다. 향후 개발권이나 사업권을 노린 기업이나 단체가 건네는 사실상의 뇌물일지라도 정당한 책값으로 위장하면 증명할 방법이 없다. 실제로 의원실에 카드 단말기를 두고 피감기관을 상대로 책을 강매하다시피 하는 사례까지 벌어지는 등 폐단은 심각하다. 누가, 몇 권의 책을, 얼마에 샀는지 확인할 방법이 전무해 투명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처럼 정치인의 출판기념회가 기승을 부리면서, 정작 진짜 작가들은 설 자리를 잃고 조용한 ‘북토크’로 밀려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비정상적인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법안 통과를 위한 초당적 협력과 정치권의 자성적인 결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출판기념회 자체가 선관위에 신고를 안 해도 되기 때문에 예를 들면 책값이 만원이라고 쳤을 때 '나는 이게 10만원 이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지불해도 문제가 없다"며 "완전히 통제 밖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출판기념회를 막으면 '서예전' 같은 게 생길 거기 때문에 일단 허용을 하되 책은 정가대로 받게끔 해야 할 것"이라며 "카드로만 받는다든지 하고 한 사람이 10권을 사더라도 정가대로 사면 그거 가지고 뭐라 할 수 없는데 선관위에 금액을 전부 신고하게 하면 어느 정도 개선될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입법 시도는 꾸준히 있었다. 지난해 총선 전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출판기념회 서적 판매 시 카드 결제를 의무화하고 수익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당시 다수당인 민주당의 외면 속에 무산됐다.

최근 김민석 후보자 논란을 계기로 다시 한번 제도 개선의 불씨가 지펴졌다. 이번에는 야당이 된 국민의힘의 주진우 의원이 출판기념회 수익을 정치자금에 준하여 관리하도록 하는 일명 ‘검은봉투 방지법(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은 △정가 초과 판매 금지 △수익 공개 의무화 △신용카드 결제 의무화 등을 핵심 내용으로 담았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출판기념회를 통한 정치자금 유입을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내용의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후보 등이 출판기념회를 통해 벌어들인 출판물 판매 수익이나 참가비 등은 모두 정치자금에 포함돼 정치자금법의 규율을 받게 된다. 도서 가격은 도서정가제 또는 통상적인 시중 가격을 초과할 수 없으며 1인당 구매 수량도 1권 또는 1세트로 제한된다.

하지만 이번에도 법안의 본회의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출판기념회를 통한 자금 조달이 오랜 관행으로 자리 잡은 ‘공생 구조’가 정치권에 굳건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는 법안에 선뜻 동의할 의원이 많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청문회에서 "저도 처음 영입돼 (선거에) 나와 출판기념회를 못 했지만, 다니기는 여러 군데 다녔다"라면서 "의원님들, 예비후보들까지 11월, 12월 열심히 다녔는데 (그때가) 시즌이다. 연말에 몰려 하는 거다. 후보자가 중책이라는 것과 상관없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해 3월 21대 국회의원 77명이 91회 출판기념회를 개최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오늘날 출판기념회는 정치인이 선거에 출마하는 출정식의 의미와 함께 정치후원금을 모집하기 위한 행사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라면서 "각 정당이 출판기념회 정치자금 거래 제한을 위한 제도 개선을 선거 공약화할 것을 촉구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무 기자 sewoen@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