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먼 소버린 AI의 길···LG 출신 배경훈 장관 후보의 한계
국가대표 자처 LG 신규 서비스 내놓지만 성능 진전 불구 명령 주도할 역량 공백 소버린 AI 핵심은 흐름 통제와 가치 판단
LG 인공지능(AI)연구원이 엑사원(EXAONE) 4.0과 신규 AI 서비스를 대거 공개한다. 한국어 역량과 암 진단 등 특화 기능에서 강점을 보이는 엑사원 시리즈는 배경훈 원장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것과 맞물려 ‘소버린(국가주권형) AI’ 전략의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엑사원 딥’과의 통합을 통해 전문성과 범용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시도는 기술 자립의 의미 있는 진전이다. 다만 ‘소버린 AI’의 본질이 기술 자립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해당 전략에는 아직 공백이 존재한다. AI 주권은 모델을 보유하고 파라미터를 늘리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사용자의 업무 흐름, 언어 구조, 명령 설계 습관까지 장악하는 ‘코파일럿 생태계’와 그 위의 명령 구조 설계권이 핵심이지만 한국은 생태계의 진입 문턱에도 다다르지 못한 상태다.
24일 빅테크 업계에 따르면 LG AI연구원은 다음달 준비 중인 토크콘서트에서 ‘엑사원 4.0’과 ‘엑사원 패스 2.0’, 엑사원 기반 멀티 모델 등 4~5종의 신규 AI 서비스를 공개한다. ‘엑사원 4.0’은 지난해 12월 공개된 ‘엑사원 3.5’의 후속작이다. LG AI연구원은 약 6개월 만에 신규 모델을 선보이며 성능 고도화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3월에는 추론 모델 ‘엑사원 딥(Deep)’도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되는 4.0 모델은 추론 모델 엑사원 딥과의 통합으로 범용 활용성을 넓히는 데 초점을 맞췄다. 추론 모델 엑사원 딥은 과학, 수학, 바이오, 화학 등 전문적인 영역에서의 문제 해결에 탁월하다. 그러나 거대언어모델(LLM)에 요구되는 일반적인 답변에는 다소 취약하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LG AI연구원은 엑사원 4.0을 전문적인 영역과 일반적인 LLM 영역을 아우르는 통합 모델로 고도화해 엑사원의 이용을 확장시키겠다는 포부다. 오픈 소스로 공개된 엑사원은 지난 17일 기준 허깅페이스에서 누적 다운로드 수 310만 회를 기록해 국내 AI 모델 중 1위를 차지했다. 엑사원에서 파생된 모델은 187개에 이른다.
엑사원을 ‘국가대표 AI’로 키우고 싶다는 것이 LG의 포부다. 현 정부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은 지난 2월 엔비디아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GTC 2025’에서 엑사원 딥을 공개하며 “글로벌 기업의 대형 모델을 완전히 넘을 수는 없지만 이번 추론 모델로 글로벌 경쟁력이 충분히 검증됐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엑사원 3.5는 4월 미국 스탠퍼드대가 선정한 ‘주목할 만한 AI 모델’에 국내 AI 모델 중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메타의 LLaMA 3.1·3.2, 구글의 Gemma 2, 알리바바의 Qwen 2.5 등과 비교해 장문 처리, 수학·코딩 능력, 한국어 사용성 등에서 우위를 보였다는 평가다.
다만 한국어 처리 역량은 글로벌 AI 경쟁력 판단에서 본질적인 지표로 보기 어려운 현실이다. 세계 시장은 영어 기반 명령 설계와 생태계 주도권이 핵심인 만큼 특정 언어에서의 우위가 곧장 시장 지배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LG의 AI 전략은 점진적 성능 향상과 응용 분야 확장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으나 국내적 평가 지표에 머무를 경우 글로벌 LLM 경쟁에서 기술, 문화, 플랫폼 지배력을 확보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소버린 AI는 일반적으로 AI 모델과 인프라를 자국 내에서 개발·운영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기술적 독립성만으로는 완전한 자율성이 확보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소버린 AI는 세 단계의 개념을 충족해야 한다. 첫 번째는 모델과 데이터, 인프라를 자체 보유하는 형식적 주권, 두 번째는 사용자 흐름을 통제하는 명령 구조의 설계권을 포함한 실질적 주권, 세 번째는 AI가 반영하는 가치 기준과 윤리 체계에 대한 정의 권한인 문명적 주권이다.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는 형식적 주권 수준에 집중돼 있으며 실질적·문명적 주권은 미국의 플랫폼 기업 주도로만 실현되고 있다.
LG AI연구원 원장으로 재직하며 엑사원 개발을 주도한 배경훈 과기부 장관의 이력은 형식적 주권의 기반을 강화하는 데는 유효하지만 사용자 인터페이스 통제력과 명령어 구조 표준화, 생태계 확산을 포함하는 실질적 주권 확보와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글로벌 플랫폼이 이미 코파일럿 생태계를 기반으로 사용자 습관과 업무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 모델의 기술적 성능 향상만으로는 초격차를 좁히기 어렵다.
이재명 정부의 AI 정책 기조는 고성능 모델 확보와 데이터 인프라 확충, 산업 생태계 육성에 중점을 두고 있으나 AI가 반영하게 될 가치 체계, 판단 프레임, 문화적 코드에 대한 정책적 감각은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다. 소버린 AI가 사회적 판단 구조에 직접 관여하는 설계 역량을 포함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정부 정책은 사실상 첫발도 못 뗀 상태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AI 전문가들이 잇따라 기용되며 정책 전면에 나서고 있다.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인 하정우 전 네이버클라우드 센터장은 지금이 골든 타임임을 강조해온 인물로 한국어 특화 LLM인 ‘하이퍼클로바X’ 개발 이력이 있지만 ‘소버린 AI’라는 개념을 기술 독립성 중심으로 좁게 해석해 플랫폼 질서에 대한 관점은 부재한 인물이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인 한성숙 전 네이버 CEO도 모바일·웹툰·결제 등 서비스 혁신을 이끈 인물로 평가된다. 한 후보자는 민간 플랫폼 성장을 이끈 상업적 성공 경험은 풍부하지만 AI 산업 전반을 제도와 정책으로 조직하는 작업에는 직접적 경험이 없다. 이용자 기반 서비스 확대와 국가 차원의 산업 생태계 조성은 요구되는 접근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기술과 시장 감각이 곧장 정책 역량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로 남았다.
인공지능이 정보 판단의 기반이 되는 시대에는 기술적 자립보다 더 중요한 것이 통제권이다. 국내 최고 인공지능 구조분석 전문가는 여성경제신문에 “AI의 경쟁력은 모델 성능을 넘어서 생태계 흡수력과 업무 흐름 통제권까지 포괄하며 결국 누가 설계한 해석 구조를 따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며 “명령 구조를 주도하지 못하는 국가는 자연스럽게 외부 해석 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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