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타운 2.0] (33) 역이민·중산층·경증 요양자까지···더시그넘하우스 청라의 포용 전략

권혁중 더시그넘하우스 전무 인터뷰 강남·청라 설계부터 운영까지 총괄 케어형 구조, 어르신 장기 거주 지원 보증금 차감으로 생활비 부담 완화 저가 택지 공급·정책 자금 지원 강조

2025-06-24     김정수 기자
역이민 시니어, 요양원은 가기 싫은 노인, 생활비가 부담인 은퇴자. 주거 사각지대에 놓인 고령층을 폭넓게 수용하는 실버타운이 있다. 강남 자곡점을 시작으로 인천 청라에 문을 연 '더시그넘하우스'다. /김정수 기자

# 30년간 미국에서 살던 박모 씨(71)는 은퇴 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여생은 편안히 보내고 싶었지만 실버타운 입주를 앞두고 낯선 병원과 은행, 공동체 생활이 부담스러웠다. 생활은 익숙하지 않고 혼자는 막막했다.

# 서울에 혼자 사는 장모 씨(83)는 남편과 사별한 뒤 계단에서 넘어지는 사고를 겪었다. 요양원에 들어가기엔 건강하지만 혼자 지내긴 위험한 상황. 돌봄이 필요하면서도 이웃과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있었다.

# "집은 있지만 생활비가 문제예요." 김모 씨(68)는 중산층 은퇴자다. 공공주택 대상은 아니고 자녀에게 손 벌리기도 싫었다. 결국 보유 주택을 팔아 실버타운 보증금을 마련했지만 월 200만원이 넘는 생활비가 버겁다.

역이민 시니어, 요양원은 가기 싫은 노인, 생활비가 부담인 은퇴자. 주거 사각지대에 놓인 고령층을 폭넓게 수용하는 실버타운이 있다. 강남 자곡동을 시작으로 인천 청라에 문을 연 '더시그넘하우스'다.

더시그넘하우스 청라 로비 모습. 라운지는 담소를 나누거나 신문을 읽는 등 일상적 소통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특정 자리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소모임이 형성되기도 한다. /김정수 기자

청라점에는 해외에서 15년 이상 거주한 뒤 귀국한 직원이 있다. 역이민 입주자의 정착을 돕기 위해 은행·행정업무 지원까지 포함한 생활 밀착형 체계를 갖췄다. 간호사가 상주하는 ‘프리미엄 세대’는 일상생활 지원이 필요한 고령자가 요양시설로 이동하지 않고도 장기간 거주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중산층 고령자 현실에 맞춘 '역모기지형' 운영모델도 주목된다. 부동산에 자산이 묶인 이들을 위해 입주 보증금에서 생활비를 차감하는 방식을 자체 시행 중이다. 더시그넘하우스 강남·청라의 설계와 운영을 총괄한 권혁중 전무는 이를 제도화해 "열심히 살아온 중산층이면 누구나 실버타운에 편안히 거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24일 여성경제신문과 만난 권 전무는 "정부는 국공유지를 활용한 저가 택지 공급과 정책 자금 조달로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며 "우리 사회에서 소비자 덕에 돈을 벌어온 기업이라면 적어도 몇 개의 실버주택은 책임지고 운영하면서 사회에 기여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경제신문이 지난 18일 더시그넘하우스 강남·청라의 설계와 운영을 총괄한 권혁중 전무를 청라점 세미나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김정수 기자

ㅡ자곡과 청라 두 시설 모두 설계와 운영에 깊이 관여했다. 실버타운 산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건축을 전공하고 건설사에서 일하던 중 자곡동 부지에 대한 타당성 검토를 요청받은 것이 시작이었다. 실버주택에 적합한 입지라고 판단해 사업 보고서를 작성했다. 원불교 재단에서 최종적으로 채택하지 않으면서 당시 함께한 회장님과 직접 실버타운 사업에 뛰어들어 책임지게 됐다. 2013년 자곡점을 시작으로 약 13년간 관련 분야에 몸담고 있다. 자곡점 운영 후에는 청라 부지를 매입해 설계부터 사업을 이끌었다. 현재는 자곡과 청라 모두 전문경영인이 운영 중이다."

ㅡ초기 기획 단계에서 지향한 운영 철학과 핵심 설계 방향은 무엇인가.

"'오고 싶은 곳, 오면 행복해지는 곳'. 어르신의 니즈를 반영한 설계와 운영 방침을 잡았다. 초창기에는 건강한 노인을 위한 주거 공간만 계획했다. 하지만 어르신이 돌아가실 때까지 모셔야 한다는 생각이 변곡점이 됐다. 일본 사례 등을 참고하며 요양원까지 갖춘 복합형 모델로 설계를 수정했다. '행복해지는 시설' 다음에는 '돌아가실 때까지 편안하게 거주할 수 있는 시설'을 기획했다.

청라점은 규모상 요양원을 포함하기 어렵지만 대신 두 개 층을 프리미엄 서비스 존으로 구성했다. 출입이 자유로운 실버주택의 장점은 유지하되, 경증 요양자까지 포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더시그넘하우스 청라 아뜰리에는 동아리 모임과 미술 활동이 활발하며 입주민 간 재능기부 프로그램도 이뤄지고 있다. /김정수 기자

ㅡ청라점에는 해외에서 역이민 온 시니어 입주자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청라는 역이민자가 좋아할 위치로 현재 전체 입주민의 약 20%를 차지한다. 대표가 상당 기간 해외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다. 직원 중 15년 거주하다 돌아온 실제 역이민자도 있다. 귀국 후 초기 어려움을 실제로 겪고 있는 직원이 역이민 입주자들의 여러 어려움을 세밀하게 안내하고 있다. 특히 은행·행정업무 등 실생활 적응이 원활하도록 동행하며 지원하고 있으며 생활 안내 교육을 통해 한국의 생활 에티켓도 함께 공유하고 있다. 현재까지 입주민 간 문화 충돌이나 큰 문제는 없다."

ㅡ1~2층에 마련된 '프리미엄 세대'는 실버타운과 너싱홈의 중간 형태다. 건강하지만 돌봄이 필요한 고령층을 위한 이 구조가 갖는 장점은 무엇인가.

"프리미엄 세대는 실버타운에서 생활하던 어르신이 점차 일상생활의 지원이 필요한 시점에 도달했을 때 곧바로 요양시설로 옮기지 않고도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다. 간호사가 상주해 투약 관리와 생활 지원을 제공하면서도 주택의 자유로운 구조와 사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운영 경험상 요양원으로의 전환은 가족과 본인 모두에게 심리적 부담이 크다. 실버타운 생활을 지속하고 싶어 하는 어르신이 많지만 돌봄 수요가 늘어나면 일반 세대에서는 한계가 생긴다. 프리미엄 세대는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도입된 중간 단계 모델로 실버타운의 활기찬 일상을 유지하면서도 점진적인 건강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 청라점에는 총 2개 층, 29세대 규모로 운영 중이며 현재 절반가량 입주해 있다."

썬큰가든과 연결된 더시그넘하우스 청라 내부 식당 모습이다. /김정수 기자

ㅡ청라점은 아직 입주율 절반이 차지 않았다. 중장기적으로 어떤 입주 전략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실질적인 부담 완화를 위해 생활비 일부를 보증금에서 차감하는 방식은 적극 안내하고 있다. 예컨대 보증금 3억3000만원, 월 생활비 200만원 조건의 세대에서 입주자가 매월 100만 원만 현금 납부하고 나머지 100만원은 보증금에서 차감해 가는 구조다. 이 경우 20년간 약 2억4000만원 수준의 생활비를 보증금에서 조정할 수 있다.

중산층 노인이 가진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다는 현실을 고려한 접근이다. 특히 연금 수령액이 적은 세대에게는 주택 처분을 통해 마련한 보증금만으로도 노후 주거를 확보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열심히 살아온 중산층이면 누구나 부담 없이 거주할 수 있는 시설이 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ㅡ운영자 입장에서 느낀 현재 제도상 가장 시급히 개선돼야 할 점은 무엇인가.

"유료 실버타운의 건립과 운영과 관련해 국가로부터 받는 지원과 혜택이 없다. 그럼에도 각종 제약만 존재하는 현 구조가 운영자 입장에서 가장 큰 문제다.

지난해 실버주택 활성화 방안이 발표됐지만 그 안에 포함된 분양형 정책은 우려스럽다. 소유권을 넘긴 순간 사실상 서비스 행위는 종료된다. 의무식, 관리비 등 입주자와의 갈등 가능성이 높고 운영 책임도 애매해진다. 실제로 부대시설 일부를 소유하고 주택은 팔아서 부대시설을 강제 이용하게 하거나 주민 자치회가 운영을 맡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소유권 분양은 여러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더시그넘하우스 청라 C타입, 전용 면적 16평 모습. 보증금은 약 4억9000만원, 1인 생활비 약 260만원, 2인 생활비 약 359만원(월 60식 의무식 포함)이다. /김정수 기자

공급 측면에서 개선할 문제는 땅값이다. 도심 내 적절한 부지는 매우 비싸고 저렴한 토지는 임야이거나 접근성이 떨어져 어르신이 생활하기에 부적절하다. 국공유지를 보다 저렴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정책적 기반이 필요하다.

자금 조달 구조 역시 문제다. PF 등 민간 금융에 의존하면 비용이 커져 결국 어르신들의 초기 보증금과 생활비에 부담이 전가된다. 이는 입주자의 자산 안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실버주택에 정책자금이 도입돼야 한다. 과거 주택기금처럼 일정 조건을 충족한 실버주택에 저리의 정책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리츠 구조처럼 6~7% 수익을 전제로 하는 방식은 오히려 중산층 부담을 키우는 결과를 낳는다."

ㅡ실버타운이 중산층 노인의 대안 주거로는 여전히 진입 장벽이 높다는 지적이 있다. 정부 정책 차원에서 어떤 제도 보완이 필요할까.

"결국 비용 장벽을 낮춰야 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공급, 입주, 주거 순환의 세 측면에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공급 측면에서는 앞서 언급한 토지 공급과 정책 자금이 지원돼야 한다.

입주 활성화를 위해선 '역모기지형 제도'가 제도권에서 자리 잡아야 한다. 국내 중산층 고령자는 부동산 자산 편중이 심하고 현금 흐름이 매우 부족한 구조다. 이분들이 기존 집을 처분해 보증금으로 활용하고 생활비는 보증금을 담보로 일부 차감하거나 대출받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

더시그넘하우스 청라 A타입, 전용 면적 11.5평 모습. 보증금 약 3억3000만, 1인 생활비는 월 60식 의무식 포함 206만원이다. /김정수 기자

자사가 시행 중인 생활비를 보증금에서 차감하는 방식은 민간에서 감당하기 어렵다. 수익이 즉시 발생하지 않아 운영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국가 차원에서 제도화하고 은행이 확정된 보증금을 담보로 삼아 담보권을 적절히 행사할 수 있다면 열심히 살아온 중산층 고령자들이 실버주택에서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실질적 시스템이 될 수 있다. 또 '내가 번 돈은 내가 쓰고 간다'는 어르신들의 인식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실버주택 확대는 고령자의 주거 안정만이 아니라 젊은 세대의 주거 순환에도 도움이 된다. 어르신이 살던 집을 젊은 세대가 다시 활용하면서 새 신도시 개발 없이도 기존 인프라를 유지할 수 있고 학교 공동화 문제도 완화할 수 있다."

ㅡ실버타운의 입주 연령 기준 완화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실버타운에 입주하는 어르신 중에는 활기찬 노인도 있지만 건강이 다소 약화한 분들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가 함께 거주하며 대화를 나누고 일상적인 보조를 제공하는 것은 정신적·물리적으로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생활 안정에 긍정적 효과를 내는 것이다. 법적으로 이를 막아서 얻는 이익이 과연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부모에게만 의존하는 '캥거루족'에 대한 사회적 우려도 존재하지만 그와 다른 맥락에서 노년의 돌봄과 안정이라는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윗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강당, 명상실, 피트니스센터, 서예실 모습이다. 권 전무는 "명상실은 참여 어르신들의 만족도가 높아 이용이 점차 늘고 있다"며 "서예실은 하루 종일 자리를 지키며 활동하는 어르신이 있을 정도로 일부 공간은 매우 인기가 높다. 다만 골프장은 현재 활성화가 덜 된 상태로, 공간별 활용도에는 차이가 있는 편"이라고 했다. /김정수 기자

ㅡ끝으로 실버타운 사업에 진입하려는 운영사들에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실버주택을 직접 짓고 운영하면서 느낀 점은 이 사업의 본질이 서비스업이라는 것이다. '주택이 안 팔리니 고령자 대상 실버주택을 해보겠다'는 식의 얕은 생각으로 진입하면 결국 어르신에게 실망을 안길 가능성이 크다. 사업성만 보고 접근한 사람들이 실버주택 분양 규제를 풀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그대로 제도가 풀리게 되면 결국 피해는 다시 어르신에게 돌아간다.

우리 사회에서 소비자 덕에 돈을 벌어온 기업이라면 적어도 몇 개의 실버주택은 책임지고 운영하면서 사회에 기여했으면 한다. 일본에서는 철도회사, 철강회사, 호텔기업 등 대기업들이 자회사 형태로 실버타운을 운영하며 약 3000여 개의 실버타운이 만들어졌다. 기업의 사회적 소명이 작동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자사 역시 그런 철학을 가지고 이 일을 해오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기업, 운영사들이 같은 철학으로 실버주택 사업에 참여해 주기를 바란다."

지난달 27일 더시그넘하우스 청라 점심 식단이다. /김정수 기자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 여성경제신문은 오늘 6월 30일 실버타운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는 정책 토론회를 개최합니다. 아래 포스터를 클릭하시면 사전신청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장소가 협소한 관계로 사전신청하신 분부터 입장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