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아직도 낯선 '신탁 서비스'···제도 정비·인식 개선 과제로
상품 구조 제한, 인식 장벽 여전 상속 아닌 삶의 설계로 보는 흐름 제도 유연성·접근성 확대 과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신탁이 자산관리 수단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단순한 상속 수단을 넘어 생애 전반에 걸쳐 자산을 설계하고 운용할 수 있는 제도로서의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신탁제도는 여전히 금융회사 중심의 진입 구조와 제한적인 상품 설계에 머물러 있어, 제도적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여성경제신문취재를 종합하면 신탁제도를 보다 폭넓게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은 정책·연구 차원에서 지속되고 있으며 고령층을 상대하는 현장에서는 인식 장벽과 낮은 이해도가 실질적인 한계로 언급된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서정호 선임연구위원은 금융브리프 ‘신탁 서비스의 대중화를 위한 과제’를 통해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국내에서 신탁이 유용한 금융수단임에도 불구하고 대중화 속도는 여전히 더디다고 분석했다. 지난 2022년 발표된 ‘신탁업 혁신 방안’이 조속히 법제화돼야 하며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소액신탁 활성화를 위해 과감한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또한 온라인 기반의 신탁업자와 관련 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진입 허용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서 연구위원은 “한국이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면서 안정적인 노후생활과 상속재산 관리를 위한 금융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며 “해외에서는 이러한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신탁이 폭넓게 활용되고 있음에도 국내에서 신탁의 대중화는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일본의 경우 저출산 · 고령화 추세에 대응하여 교육자금증여신탁, 결혼·육아자금신탁 등에 대해 과감한 세제 혜택을 부여했으며 그 결과 신탁의 대중화 측면에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는 설명이다.
국내 신탁의 대중화를 위해 추진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그는 △‘신탁업 혁신 방안’의 조속한 법제화 △소액신탁에 대한 세제지원 확대 △온라인 기반 신탁업 진입 허용 △수탁재산 규모에 따른 서비스 차별화 등을 제시했다. 또한 금융회사들이 소비자 설명 과정에서 느끼는 거부감을 고려해 ‘유언대용신탁’이라는 용어 대신 ‘생전신탁’ 등 보다 이해하기 쉬운 표현으로의 명칭 변경도 고려할 수 있다는 견해도 덧붙였다.
고령층을 직접 상대하는 금융교육 전문가들은 신탁 제도에 대한 낮은 인식 수준과 심리적 거리감이 여전히 제도 활용의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제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상품 구조나 정책뿐 아니라인식 개선과 정보 접근성 확보도 병행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오영환 시니어금융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은 여성경제신문에 “유언대용신탁이라는 말은 고령층에게 다소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용어 자체가 생소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탁은 살아 있을 때 미리 자산을 어떻게 활용할지 설계하는 제도인데, 어르신들은 신탁이 무엇인지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며 “이름을 바꾸는 것도 의미 있지만, 신탁이 어떤 제도인지 알릴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더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신탁 제도를 잘 활용하면 자녀 간 분쟁이나 배우자와의 법적 다툼 같은 상황을 줄일 수도 있다”며 “자산을 단순히 이전하는 게 아니라 의미 있게 유산을 설계하는 수단으로 쓸 수 있다는 점을 고령층에게 미리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