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영 더봄] 피레네산맥과 압록강 7백리, 닮은 점 다른 점

[강정영의 부국강병]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 피레네산맥 양단에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기 싫은 두 민족이 있고 압록강 건너 중국에는 역사성 있는 한국인의 후예가 살아가고 있다

2025-06-23     강정영 청강투자자문 대표

피레네산맥은 약 500km로 스페인과 프랑스를 가르고, 압록강 7백 리는 중국과 한반도를 가른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경에는 많은 경우, 산맥과 강 등 자연 장벽이 있다. 유럽처럼 사오십 개 나라가 있는 경우에는 역사적인 전쟁으로 국경선이 그어진 경우도 있지만···.

피레네는 아름답다. 그래서 경치 좋은 곳을 찾아가는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 사이클 코스에서 이곳은 늘 빠지지 않는다. 겨울에 먹이를 찾아 아프리카로 날아갔던 철새들이 포르투갈을 거쳐 이곳을 넘어 북유럽으로 되돌아가는 하늘길이기도 하다.

국경지대에는 어디든 수많은 역사적인 사연을 품고 있다. 강을 건너서 산맥을 넘어서 이 민족 저 민족이 섞인 경우도 흔하다. 피레네도 ‘나는 스페인인이 아니다’, ‘프랑스인도 아니다’ 하면서 독립을 주장하는 지역이 두 곳 있다. 한 곳은 스페인 서북부 빌바오를 중심으로 하는 바스크 민족이고, 지중해 쪽으로는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하는 카탈루냐이다.

스페인 프랑스 국경인 피레네산맥은 무척 아름답다. /프랑스 트래블 가이드

바스크족은 최근까지 스페인에 테러를 가하면서 강력히 독립 투쟁을 한 바 있다. 그 중심에 ETA(바스크 조국과 자유) 무장단체가 있었다.

그 배경은 민족의 DNA와 언어가 스페인과 완전히 다르다는 데 있다. 또 중세 시대부터 17세기까지 이곳 나바라(Navarre) 지역에 존재했던 바스크계 독립 왕국이 있었다.

한 연구에서는 바스크족을 켈트족, 웨일스족과 유전적으로 연관시킨다. 일부 연구자들은 바스크어와 코카서스 어족 간에 유사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한발 더 나아가 유럽의 정착지, 강, 산, 계곡, 풍경의 이름 대부분이 바스크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피레네산맥 동쪽의 카탈루냐가 독립을 주장하는 것은 좀 다른 배경이 있다.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가 지역의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피레네산맥의 험난한 지형을 방패 삼아 이슬람으로부터 왕국을 보호할 완충지대로 변경주(邊境州)를 설치했다. 이게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카탈루냐라는 정체성의 시초다.

그 이후 카탈루냐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치권을 상실했다가 다시 찾는 등 오랜 부침이 있었다. 최근 자치권의 범위가 대폭 확장되었다가 2008년부터 스페인 경제 상황이 점점 나빠지면서 최고재판소 판결로 자치권의 범위가 대폭 축소되었다. 그러자 2014년부터 독립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2017년 카탈루냐 분리독립 주민투표로 독립선언을 했지만 스페인 정부의 강경한 대응으로 단 5일 만에 무산되었다.

한중 국경 저 너머에는 역사성을 가진 한민족의 후예들이 살고 있다. /픽사베이

중국과 한반도를 가르는 압록강과 두만강은 어떨까. 뗏목이 흘러가고 시베리아에서 한반도를 오가는 기러기 떼가 쉬어 가는 ‘낭만의 강’일까. 아니면 김동환의 ‘국경의 밤’이란 시에 나오는 한 많은 강일까.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 없이 건넜을까? 저리 국경 강안을 경비하는 외투 쓴 검은 순사가 왔다-갔다-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는데 발각도 안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소금실이 마차를 띄워놓고 밤새 가며 속 태우는 젊은 아낙네, 물레 젓던 손도 맥이 풀려서 “파!”하고 붙는 어유(魚油) 등잔만 바라본다. 북국의 겨울 밤은 차차 깊어만 가는데…”

이와 같이 한중 국경의 강은 긴장과 비극으로 점철된 강이다. 근래에는 북에서 탈출하려면 필사적으로 건너야 하는 강이었다. 강 건너 저편에는 중국의 동북 삼성이 있다. 길림, 요령, 헤이룽장(黑龍江)성이 그것이다. 그곳에는 일제 강점기에 먹고 살기 위해서 또는 독립운동을 위해서 건너간 한국인들의 후예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있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의 이승만 대통령이 독립 자금 조달을 위해 독립공채를 발행한 적이 있다. 그 공채를 사준 고귀한 뜻을 기리기 위해 정부에서 한시법을 정해서 산 가격의 몇백 배에 달하는 보상을 추진한 바 있었다.

그때 필자가 그 업무를 맡고 있어서 독립군들이 많이 활동했던 연변 지역을 방문한 바 있다. 후손들에게 정부의 그런 취지를 알리고, 혹시 그 후손들이 독립공채를 보관하고 있다면 꼭 신고할 것을 그곳 방송국을 통해 홍보했다.

당시 연변 자치주 주장(주지사)을 맡고 있던 남상복이라는 분이 그곳 조선족은 교육열이 높아 공부를 많이 시켜서, 사회적 지위가 중국 한족보다 못하지 않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연변 도문이라는 북한 접경 도시를 방문, 두만강 건너 북한 땅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우리 민족은 왜 분단되어서 살아가야 하는지, 무심하게 흘러가는 두만강을 바라보면서 깊은 감상에 젖었던 기억이 새롭다.

이와 같이 동서를 불문하고 국경 지역은 수많은 사연을 품고 있는 곳이다. 아름다운 피레네산맥 동서의 끝에는 스페인에 반기를 드는 민족이 있는가 하면, 한반도와 중국의 국경 저쪽에는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건너갔던 우리 민족의 후예들이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한국에 와서 일하는 조선족들을 식당이나 일터에서 가끔 만나게 된다.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이런 역사성을 가진 분들이다. 따뜻한 눈길로 대해줄 것을 당부하고 싶은 마음이다.  

여성경제신문 강정영 청강투자자문 대표 himabai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