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기 더봄] 인생 후반에서 돈보다 더 중요한 것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 어려운 순간 곁을 지켜줄 사람이 있는가? 죽음의 순간 명상을 인도할 영적 친구는?

2025-06-26     백만기 위례인생학교 교장

영어권의 격언에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다. 가족 간의 유대감은 다른 어떤 관계보다 끈끈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간경화로 간을 이식해야 하는 지인이 있는데 아들이 아버지에게 간을 기증하여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 아내의 친구 중에 신부전증에 걸린 아이에게 자신의 신장을 이식해 준 어머니도 있다. 이렇듯 가족은 어려울 때 서로 돕는다. 

그런데 가족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홀로 자식을 키운 아주머니가 있었다. 자식들은 성장한 후 독립하여 나가 살고 아주머니 혼자 생활하다가 말기 암 진단을 받고 호스피스센터에 입원했다. 생활이 여의치 못해 자원봉사자들이 아주머니를 돌보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암으로 투병하는데도 자식들이 와보지 않는 것이다. 아주머니에게 자식들의 안부를 물어도 그냥 희미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어느 날 임종이 가까웠음을 인지한 아주머니가 자기를 돌보아준 자원봉사자들을 불렀다. 그리고 아껴 놓았던 옷가지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좋은 날 입으려고 빚어놓은 예쁜 한복을 먼저 자원봉사자 한 사람에게 주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한복을 받았다. 이렇게 갖고 있던 옷가지들을 모두 나누어준 환자는 다시 한번 자신을 돌보아준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운명했다.

환자는 자신을 돌보아준 자원봉사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가족에게 연락이 되지 않아 자원봉사자끼리 장례를 준비했다. 예쁜 한복을 선물로 받았던 자원봉사자가 그 옷을 망자에게 입혔다. 좋을 때 입으려고 아껴두었던 옷을 죽어서 입게 된 것이다. 자원봉사자들은 가족과 같았던 망자를 보내며 눈시울을 적셨다. 비록 가족들과는 거리가 있어도 자원봉사자의 따뜻한 보살핌이 있어서 그녀의 임종이 쓸쓸하지만 않았다.

이처럼 어느 경우는 가족보다 피가 섞이지 않은 다른 사람들이 환자에게 위안을 주기도 한다. 톨스토이가 쓴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보더라도 그렇다. 임종을 앞둔 이반 일리치가 괴로웠던 건 용변을 볼 때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불쾌하고 힘든 일을 도와준 건 집사 일을 돕는 농부 게라심이었다.

어느 날 잠자러 갈 생각도 잊은 채 곁에서 지켜주는 그에게 미안함을 표하자 게라심은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습니다. 그러니 제가 당신을 위해서 수고 좀 못 하겠습니까?" 그는 게라심 같은 인물이 자기 곁에 있다는 것에 큰 위안을 받았다.

세계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의 일화가 매체에 보도된 적이 있다.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 경제전문지 포춘이 주최한 강연회에서 워런 버핏에게 물었다. "지금 위치에서 과거에 배운 교훈을 돌아볼 때 성공을 어떻게 정의하겠습니까?"

성공을 어떻게 정의하겠습니까? /게티이미지뱅크

버핏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내 나이가 되면 말입니다, 당신이 사랑해 줬으면 하는 사람이 당신을 사랑해 주면, 그게 성공입니다. 당신은 세상의 모든 부를 다 얻을 수도 있고, 당신 이름을 딴 빌딩들을 가질 수도 있겠죠. 그러나 사람들이 당신을 생각해 주지 않으면 그건 성공이 아닙니다." 이어서 버핏은 자신이 성공에 대해 이런 생각을 지니게 된 배경을 덧붙였다.

"오마하에 벨라 아이젠버그란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힌 경험이 있었죠.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 어느 날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친구를 사귀는 게 매우 더뎌요, 왜냐하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질문하거든요. 저 사람들은 나를 숨겨줄까 하고 말이에요. 당신이 70세나 80세가 됐을 때 주위에 당신을 숨겨줄 만한 사람들이 있다면 성공한 거예요. 반대로 아무도 당신이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는다면 당신은 성공하지 못한 거예요.'"

사람들은 흔히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부를 얼마나 이루었느냐로 성공을 가름한다. 그러나 돈이 많거나 높은 지위에 올랐다고 인생에서 성공한 건 아니다. 버핏이 얘기했듯이 비록 숫자는 적더라도 어려운 순간에 당신 곁을 지켜 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의학의 발달로 수명이 늘어났다고는 하나, 사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마지막 숨을 거둘지 알지 못한다. 특히 요즈음은 중환자실에서 홀로 죽어가는 사람이 많다. 죽음의 순간에 우리 옆에서 명상을 인도해 줄 그런 영적 친구가 필요한 때다.

여성경제신문 백만기 위례인생학교 교장 eggtre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