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준 더봄] 두 번째 서른아홉, 다시 시작한 꿈
[최익준의 낭만밖엔 난 몰라] 내 나이 서른아홉 땐 실직 걱정하는 가장이었다 두 번째 맞은 서른아홉은 문학도의 꿈 향해 도전
서른아홉에 마흔 고개를 앞두고 있으신가요? 아니면 서른아홉을 지나셨다면 당신도 저처럼 뜬 눈으로 그 밤을 새웠을까요?
제 나이 서른아홉에서 마흔으로 넘어가던 2002년은 월드컵 4강의 꿈을 이룬 대한민국이 강대국 러시아, 네덜란드 그리고 브라질을 제치고 국민소득 세계랭킹 11위의 자리에 오른 해이기도 합니다. 그 시절 우리 국민은 대부분 가까운 날에 행복한 중산층이 되거나 성숙한 민주주의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유쾌한 시민이 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신 없는 말은 못 하고 믿는 길이 아니면 행하려 하지 않던 젊은 신념은 푸른 눈에 금발을 한 외국인 상사의 눈에서 살짝 벗어난 듯했습니다. 나폴레옹의 말대로, 불가능은 별로 없을 거라며 빛나던 서른아홉은 빛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권고사직의 위협 앞에서 전전긍긍 두렵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가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긍심과 실직 사이에서 상처받은 중년으로 마흔을 시작한 생일에 생활비 걱정으로 미역국을 꾸역꾸역 삼키고 출근하던 날의 먹먹함을 밤하늘의 구름에 가려진 별처럼 선연히 기억합니다.
그렇게 마흔으로 넘어간 나의 시간은 정지한 듯 길었습니다. 혁명이든 혹은 중상층이든 둘 중에 하나는 건질 거라 믿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실직을 걱정하고 실업급여를 어떻게 신청할지 몰라 고민하는 가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풍진 세상에 처자식을 태운 인생의 수레바퀴를 끌면서 하염없이 늙음의 시작을 체감한 나는 불면의 당나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서른아홉은 결코 시련의 파도에 밀려간 마흔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나폴레옹이 말 탄 그림을 표지로 둔 '완전정복 시리즈 참고서'로 공부하며, 불과 서른다섯에 황제가 된 정복자 나폴레옹만큼은 못 되어도 '국민교육헌장'의 한 문장대로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으로 쭈욱 애국 중상층이 될 줄은 알았습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양극화의 문제를 해결하는 효능감을 유지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서른아홉에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 했으며, 아이들의 학원비를 꼬박꼬박 벌어야 하는 아빠이자 가장이었습니다.
서른아홉을 새롭게 시작한 가장으로서의 용기는 나폴레옹 못지않게 위대했습니다. 첫사랑 같은 문학전집들을 책장에서 싸악 정리하고 적성에 맞지 않은 MBA, 증권, 기업가 정신, 투자 기법 등등··· 자본주의적 승부에 필요한 책들이 책장의 영토를 쉼 없이 넓혀 나갔습니다. 내 나이 두 번째 서른아홉을 그렇게 시작하지 않았다면, 하마터면 내 인생이 뻔하고 지루할 뻔했음을 지금에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전윤호 시인의 '서른아홉'이란 시를 읽다가 목젖을 타고 오른 울컥함으로 나의 첫 번째 서른아홉을 되짚어 봅니다. 소설 한 권과 시집 한 권은 쓸 것 같았던 열정과 습작의 시간은 아쉽게 사라져 갔지만, 조직과 처자식을 보살핀 책임만큼은 완수했습니다. 윤리경영과 지속 경영의 양심은 칼같이 준수했습니다.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킨 야심가 나폴레옹보다 법과 도덕을 준수한 전문경영인으로 두 번째 서른아홉을 살았으니 내 인생은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꿈보다 높이 뛴 물가를 견디기도 힘겨운 시대로 변했습니다. 꿈꾸는 대로 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세상의 양극화가 깊은 오늘의 서른아홉 후배들에게 미안함을 고백합니다. 먼저 서른아홉을 잘 건너간 선배라고 후배에게 '라때는 말이야' 아재의 말로 우기거나 내세울 건 하나도 없습니다.
후배들이여! 당신들은 고물가에 취직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어려운데, 혁명도 없이 지나가는 서른아홉이 지루할 여유가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취향에 맞는 책 한 줄 읽고 좋아하는 취미를 포기하지 말길 바랍니다. 그리고 경주마 선배들처럼 앞만 보고 뛰지만 말고 주변을 돌아보고 씩 웃으며 작은 친절을 베풀며 함께 살아가는 서른아홉 새 시대를 열어가길 바랍니다.
두 번째의 서른아홉을 사는 저의 책장에는 젊은 날 문학전집들을 다시 들여다 놓았습니다. 요즘은 과학 서적과 생물심리학 책을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학창 시절 피해 다녔던 양자역학과 물리학 책도 구입하니 기쁘고 행복합니다. 하루 커피 한 잔 값을 기부 나눔하고, 나이 어린 작가님으로부터 비평도 달게 받으면서 책 한 권 써서 출판을 꿈꾸는 두 번째 서른아홉 문학도의 삶을 시작합니다. 꿈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니체의 초인이 되기는 어렵지만, 위버멘쉬(Ubermensch)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인간으로 살아 보고 싶습니다.
지루할 틈 없이 바빠진 나의 두 번째 서른아홉을 사랑합니다.
여성경제신문 최익준 박사·산업정책연구원 교수/(주)라온비젼 경영회장
sebastiancho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