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웅익 더봄] 도봉산은 나의 큰바위얼굴

[손웅익의 건축마실] 작은 것 사소한 것에 마음 쓰일 때 찾아가는 우리 동네 뒷산

2025-06-16     손웅익 건축사·수필가
북한산 인수봉과 백운대가 바라보이는 마을 /그림=손웅익

내가 사는 동네 주위로 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일명 불·수·사·도·북이라고 부르는 강북 5대 명산이다. 여기 5개의 산을 한 번에 종주해야 진정한 산악인이라는 말도 있다. 쉬지 않고 종주하는 데 대략 20여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저녁에 불암산을 출발해서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을 넘고 다음날 오후에 북한산 종점에서 마무리하는 산행은 그야말로 체력과 정신력 끝판왕들의 행군이라 하겠다.

나의 고등학교 동창생들이 젊은 시절 매년 불수사도북 종주 행사를 하곤 했다. 하룻밤을 꼬박 새워가며 다섯 개의 험한 산을 계속 넘어야 하는 산행이라 별의별 에피소드가 많았다. 산행 때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선두에서 길을 잘못 드는 것인데, 한참을 가다가 “이 길이 아닌가 벼···” 할 때는 힘이 쭉 빠지곤 했다는 것이다.

만 하루 동안의 산행을 마친 동기들이 막걸리를 마시면서 즐기는 사진을 볼 때마다 은근히 부러웠다. 그때마다 나는 위험하기도 하고 경관이 보이지도 않는 야간산행을 굳이 해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했지만, 실은 체력에 자신이 없어 참여하지 못했다.

여기 5개의 산은 우리 동네 어디에서나 다 보인다. 그 모양도 각기 다르다. 불암산은 거대하고 둥그런 바위 하나로 이루어진 산처럼 보인다. 그 형상이 마치 송낙을 쓴 부처의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불암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산을 오르다 보면 수많은 바위가 다 둥글둥글하고 그 생김새가 특별해서 마치 바위전시장 같다.

도봉산 자운봉의 가을 /그림=손웅익

불암산에 바로 붙어 있는 수락산은 불암산과 달리 산의 실루엣이 뾰족뾰족하고 산 높이에 비해 경사도가 상당히 심하다. 산 정상이 뾰족해서 주의하지 않으면 매우 위험하다. 등산객들이 추락하는 사고도 자주 났다. 정상을 앞두고 깔딱 고개를 오를 때에는 숨이 턱턱 막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깔딱 고개의 고통 때문에 언제부턴가 수락산을 찾지 않았다.

수락산과 사패산은 서울에서 의정부로 가는 도로가 갈라놓았다. 수락산을 내려와서 도로를 몇 개 건너야 사패산으로 갈 수 있다. 사패산은 도봉산과 북한산의 명성에 가려진 덕에 자연환경이 더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사패산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많지만 사패산 터널은 잘 알려져 있다. 사패산 터널은 그 길이가 4㎞에 달하며 4차선 광폭 터널로는 세계 최장이라고 한다.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사패산 터널을 공사할 때 사패산 도롱뇽과 관련된 일화는 유명하다.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은 계속 이어진 산이다. 대부분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을 타다 보면 아래에서 바라본 것과 달리 산세가 상당히 험하다. 많이 알려진 봉우리로는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 오봉,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의상봉, 원효봉 등이 있다. 봉우리마다 그 생김새가 특별하다. 그중에 선인봉의 높고 넓은 바위 형상이 특이한데, 오랜 세월 눈비가 깎아내린 거대한 바위의 형상이 마치 주름진 커튼이 늘어진 것처럼 보인다.

위풍당당한 도봉산 선인봉 /그림=손웅익

내가 사는 동네는 도봉산에 가깝다. 봄에는 소귀골 계곡으로 해서 진달래 능선으로 오르는 산길이 온통 진달래로 물든다. 아직 겨울잠에서 다 깨어나지 않은 나목 아래 진달래꽃의 엷은 분홍색은 겨울바람으로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해 준다. 도봉산은 깊고 높아 계곡을 흐르는 물은 맑고 그 양도 적당하다. 폭우가 내리는 여름날엔 병풍처럼 둘러선 거대한 바위벽에 반향되는 거대한 천둥소리가 가슴을 뻥 뚫어준다.

비바람이 몰아치다가 어느 순간 해가 날 때면 산의 자태가 슬쩍 드러났다가 금세 짙은 회색 구름이 산을 휘감는다. 여름의 도봉산은 천의 얼굴이다. 가을 도봉산엔 내려놓음을 배우러 간다. 눈처럼 날리는 낙엽은 아직도 많은 것을 꼭 쥐고 있는 나에게 다 내려놓으라고 한다. 새로운 봄을 기대하며 눈보라와 찬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는 겨울날의 나목과 마주하면 마음이 뜨거워진다.

구름이 흐르고 비바람과 눈보라가 치는 수많은 계절이 지나도 언제나 의연한 도봉은 나의 큰바위얼굴이다. 작은 것 사소한 것에 마음 쓰일 때 나는 도봉산으로 간다.

여성경제신문 손웅익 건축사·수필가 wison7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