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타운 2.0] (27) 노인 주거 정책 단골 소재 '은퇴자마을'···"수년째 그림뿐"
정치권, UBRC 등 은퇴자 공동체 추진 늘 반복된 소재···정책 수혜자 명확해야 민간 협력 등 중산층 모델 고민 필요
정치권이 반복적으로 내놓는 ‘은퇴자 공동체’ 주거정책이 정작 현실 수요와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중산층 고령자의 실질적 거주 대안은 제도권 밖에 머무르고 있다.
10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1대 대선에서 고령자복지주택 확대, 도심 내 지원주택 공급, 생애주기형 공공임대, UBRC(대학 연계 은퇴자 공동체) 등 다양한 노인 주거 정책을 제시했다. 다만 대부분 공공 중심 모델에 머물러 있으며 운영 주체, 입주 대상, 민간 연계 등 핵심 설계가 빠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치권에선 특히 은퇴자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 모델이 강조되고 있다. 대학 캠퍼스 인근에 평생교육과 헬스케어 기능이 결합한 한국형 UBRC를 도입하고 은퇴자 공동체 중심의 대규모 거주 시설을 통해 고령자 거주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지역 균형 발전과 연계해 지방대 유휴시설을 활용하는 방안도 함께 거론된다.
공공주택 차원의 정책도 언급됐다. 고령자복지주택은 기존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공공임대 모델을 확장하면서 미끄럼방지 바닥재, 비상벨, 화장실‧욕실 지지대 손잡이 등 유니버설 디자인을 도입해 안전성과 편의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생애주기형 맞춤형 공공임대는 청년부터 노년층까지 포괄하는 구조로 돌봄서비스 특화 주택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도심 지역 내 확충한다는 ‘지원주택’은 병원이나 시설에서 퇴원‧퇴소한 어르신들이 가정과 같은 편안한 환경에서 머물며 생활할 수 있는 주택이다. 독거 또는 부부 어르신에게 저렴하게 임대하고 주택 단지에 공동 식당, 빨래방 등을 운영해 일상생활을 지원한다. 복지관, 물리치료실, 경로당, 요양보호실 등도 설치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러한 공약이 실질적인 주거 대안으로 작동하려면 정책 수혜 대상을 보다 정밀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수도권 A 실버타운의 운영자는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은퇴자마을이라는 말은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누가 짓고 누가 운영하며 누가 입주할지에 대한 세부 설계가 빠져 있다. 이름만 걸어놓고 브랜드만 만든 상태”라며 “은퇴자마다 은퇴 사유도 소득도 다르다. 교수와 노동자의 은퇴가 같은 조건일 수 없는데 하나의 제도 안에 모두를 넣으려 하면 결국 시장 원리를 무시한 제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제시된 정책 대부분이 공공 혹은 준공공 영역에 집중돼 있어 중산층 이상 고령층을 위한 민간 주거 모델과의 연계는 부재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간 운영 경험을 제도 설계에 어떻게 담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목소리다.
박동현 전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회장(전 더클래식500 사장)은 여성경제신문에 "최근 대선 공약을 봐도 노인 주거 정책은 실질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 과거도 현재도 정부 정책은 큰 틀만 있을 뿐 운영의 실제를 모르고 설계된다. 오히려 수요가 있는 곳에 바로 반응하는 건 기업이다. 이들이 더욱 현실을 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UBRC 등 은퇴자 공동체, 공공 중심 모델 등은 늘 반복돼 온 이야기"라며 "지금의 주거 정책은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중심으로 양극화돼 있고 정작 수요가 폭발하는 중산층을 담을 설계가 없다. 그 '미들그레이드'를 어떻게 제도화할지가 핵심"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인 주거 문제는 표면적으로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긴급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다루기 힘들다. 결국 전문가나 현장 요구가 쌓일 때마다 그때그때 사례별로 대응하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