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디지털 상담의 벽 앞에 놓인 이들

고령층·장애인 등 '금융취약계층' 상담 연결, 디지털 의존 구조에 갇혀 정보접근권 보장은 정책·인프라 과제

2025-06-10     박소연 기자
금융 취약계층은 상담 접근 과정에서 구조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AI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신용카드 이용 중 앱이나 온라인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기계음 안내만 반복됐고 상담원 연결 방법은 어디에도 안내되지 않았다. 결국 상담원 연결을 위한 절차를 인터넷에서 따로 검색해야 했다. 상담 접근 자체가 디지털 환경에 의존하는 구조였다. 고령층, 장애인 등 금융취약계층은 이 벽을 어떻게 넘고 있을까.

고령층이나 장애인 등 일부 고객은 AI나 자동응답 시스템만으로 문제 해결이 어려워 여전히 사람과의 상담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 추가 인력을 투입하는 일은 예산과 노동 여건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인력과 자원의 보강이 당장의 해법처럼 보일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존 시스템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다. 올해 1분기 4대 금융그룹의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6.8% 증가한 4조9289억원으로, 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같은 실적을 감안하면 취약계층 전용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한 자원 투입 여력 자체가 부족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금융권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우대금리 적금, 금융 교육, 사회복지 후원 등 다양한 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고객의 실제 접점에서 작동하는 ‘기본적인 서비스 품질’에 대한 점검이다. 단순히 공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고객이 실제로 필요할 때 그에 맞는 방식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일상적인 금융 서비스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는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많은 금융사는 장애인 지원 사업이나 고령층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인 금융 상담에서는 여전히 문턱이 높다.

기존 시스템을 보다 효율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취약계층에 대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선별하는 방식도 검토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고객의 자발적 등록 정보나 디지털 접근성 테스트 결과 등을 바탕으로 취약계층을 식별하는 방식이 고려될 수 있다. 다만 취약계층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연령, 장애 정보 등은 민감정보에 해당하는 만큼 수집과 활용 과정에서 법적·윤리적 기준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정비된 데이터는 고객이 전화를 걸었을 때 자동으로 인식돼 해당 고객이 취약계층에 해당하는지를 판별하고 우선적으로 사람 상담원과 연결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첫 상담 시점에 ‘고령층’, ‘장애인’ 등의 정보가 등록되고 이후 동일 고객이 재접속했을 때 자동으로 사람 상담원에게 연결되는 구조다. 물론 이러한 방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개인정보 보호 관련 법적 기준을 철저히 따르면서 데이터 보안도 함께 강화돼야 한다.

이미 콜센터에서 고객 등급이나 금융상품 보유 여부에 따라 자동 연결 경로가 구분되는 시스템은 활용되고 있다. 취약계층 인식 역시 기술적으로 새로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우선순위'로 배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취약계층 고객이 AI나 자동응답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사람과 연결되는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정보 접근성 격차를 줄이는 데 실질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단순한 편의 제공을 넘는 조치다. 그만큼 더 많은 고객이 금융 서비스를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열린다. 변화의 열쇠는 기술이 아니라 고객 접점에서 무엇을 우선순위에 둘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획의 방향성에 있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실현되려면 취약계층 정보를 식별·활용하는 체계 전반이 법적 범위와 공공 인프라에 기반해야 한다. 민간 금융사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책 설계와 공공 조정 기능이 병행돼야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