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붉고 속은 파란 글로벌리스트···트럼프의 미국판 수박 전쟁

공급망 재편 전략을 대공황과 동일시 지금이 기회다 하고 나온 레이 달리오 트럼프 없는 트럼프주의 바란 머스크 피터틸 감시 자본주의형 정치 공학자

2025-06-09     이상헌 기자
트럼프 대통령의 취김 직후 열린 테크 서밋에 참석한 인물들. 왼쪽부터 아마존 제프 베조스, 알파벳의 래리 페이지, 페이스북 셰릴 샌드버그,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인, 트럼프 대통령, 페이팔의 피터 틸. /AP=연합뉴스

미국의 국가부채를 두고 글로벌리스트 진영에선 줄곧 '대공황의 재현'을 경고해왔다.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창립자는 '1930년대와 유사한 통화질서 붕괴'를 말했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역시 트럼프 대통령과의 결별을 선언하기도 했다.

9일 미국 워싱턴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의 국가부채는 2차대전 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의 국가부채가 2025년에 37조3600억 달러에 달해 국내총생산(GDP)대비 122.5%에 이르고 이러한 추세는 2030년에는 128%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가부채 비율이 GDP 대비 100%를 넘었던 것은 국방비 지출이 막대했던 2차대전 직후였다. 1946년 GDP 대비 119%까지 상승했다. 그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작은 정부를 표방했던 레이건 행정부 시절인 1981년 31%까지 하락했다. 하지만 미국발(發) 금융위기 이후 상승하기 시작해 2012년 다시 100%를 넘어서고 코로나가 발생한 2020년 132%까지 급등한 후 다시 다소 낮아졌으나 여전히 120%대의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다.

국가부채가 역사상 최고 수준에 근접하면서 이를 둘러싼 해석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월스트리트와 테크 자본의 대표 인물들은 '대공황의 재현'과 '시스템 리스크'를 거론하며 위기론을 부각한다. 그러나 감세나 투자 확대 같은 트럼프 정책의 장점에 대해선 의도적으로 말을 아끼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은 실물경제의 뿌리였던 내수와 신용이 동시에 붕괴하며 발생한 전면적 경제 파국이었다. 그러나 2025년 미국이 직면한 상황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현재의 불안 요인은 관세 전쟁에 따른 일시적 충격과 공급망 혼선에서 비롯됐으며 소비재·석유화학 등 관세 영향권 밖의 산업에서 일부 혼란이 관찰된 것은 전체 수요가 붕괴된 상황이 아니라 공급망이 재조정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특히 머스크와 같은 친 트럼프 성향이었던 인사들이 감세나 투자 확대라는 실질적 정책 논의에는 침묵하면서도 트럼프에 대해선 지속적으로 비판적 태도를 보이는 점은 의도를 의심케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 중인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은 법인세와 소득세 감면, 자녀 세액 공제 확대 등을 골자로 한 감세 연장 법안이다. 

머스크는 해당 법안이 지출을 늘린다는 이유로 "부채가 늘어난다"고 반대하지만 주장 자체가 모순을 내포한다. 국가가 가계처럼 수입 안에서만 지출해야 한다는 논리는 장기 성장이나 위기 대응 능력을 전제하지 못한 단견이란 얘기다. 실제로 미국의 국가부채는 늘어왔지만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자국 통화 발행권이라는 제도적 기반이었다.

미국이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최고등급을 잃은 것은 분명 중대한 사건이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재정이 방만해서 신용이 떨어졌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건 일차원적 오류다. 신용등급 강등의 배경에는 수치로서의 부채만이 아니라, 정치의 실패, 재정 설계 부재, 예산 운영의 예측 불가능성이 함께 작용한다. 즉 '부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부채를 관리하고 조율할 능력이 없다는 불신이 본질인 것이다.

트럼프 2기 집권 초반부부터 갈라선 트럼프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AP=연합뉴스

국가신용등급 하락은 역설적으로 지출 축소가 아닌 지출 설계의 필요성을 더 강하게 환기시킨다. 머스크가 제기한 국가부채 위기론은 역설적으로 기존의 비효율적 지출구조를 전면 재편하고 생산적인 지출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부채총량을 줄이는 것보다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 구조를 재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란 얘기다.

결국 글로벌리스트 진영이 강조하는 국가부채 경고는 재정건전성을 위한 중립적 제언이라기보다 민주당식 확장재정론에 정당성을 부여는 일종의 공포 시나리오에 가깝다. 이들은 겉으로는 재정 건전성을 외치지만 중국 의존도를 키우는 탈산업화와 전통 제조업을 파괴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에는 침묵했다. 머스크가 그동안 ‘친MAGA' 행보를 보여왔지만 실체는 겉은 붉고 보수처럼 보이지만 속은 완전히 푸른 글로벌리스트 논리로 가득찬 정치적 수박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 진영 내에서 테크 자본을 대표해온 머스크와 피터 틸두 인물은 겉으론 MAGA의 확장을 자처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트럼프 없는 트럼프주의'를 설계하려는 기술 엘리트들에 가깝다. 머스크는 시장주의를 앞세루지만 산업 보호나 생산 기반 재건에는 무관심하며 틸은 국가정보에 기대는 감시자본주의형 정치 공학자의 면모를 보인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국민과 실물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트럼프와는 애초부터 다른 궤도에 있었다.

트럼프의 공급 측 감세정책은 단순한 재정 지출 축소가 아니라 민간 부문에서의 자본 순환과 투자를 활성화해 전체 경제 파이를 키우겠다는 전략적 판단에 기초해 있다. 이는 세이의 법칙(Say’s Law) 즉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고전경제학적 원리를 따르고 있으며 위기 국면에서의 긴축보다 훨씬 생산적인 해법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미국 경제는 1930년대 대공황rhk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문제는 위기를 과장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이들에 의해 공포 마케팅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부채를 둘러싼 진짜 질문은 '얼마나 많은가'가 아니라 '그 부채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역시 최근 트루스소셜을 통해 "경제적 재앙을 막기 위해 연방 부채 한도는 전적으로 폐지되어야 한다"고 밝히며 부채 총량 자체보다 지출 설계가 문제라는 인식을 보여줬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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