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더봄] 평화를 되짚으며 제주 길을 걸어 봤어요
[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평화바람길’에서 만난 제주 걸으멍 보멍 배우멍 하네요
5월 28일부터 3일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이하 제주포럼)에 참가했다. 다자외교 플랫폼인 제주포럼의 올해 주제는 '평화와 공동 번영을 위한 혁신'으로 외교·안보, 기후·환경, 경제, 교육·문화, 청년, 글로벌 제주 등 6분야 53개 세션이 진행됐고 전 세계 75개국에서 4900여명이 참가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도 대한민국 청년세대가 참여할 공공외교의 방향과 과제 모색을 테마로 세션을 운영했고, 이를 위해 출장을 가게 됐다.
제주도, 국제평화재단, 동아시아재단이 주최하고 제주평화연구원이 주관하는 제주포럼은 국내외 정상급 인사 및 각 분야 전문가가 매년 글로벌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특히 올해는 제주도가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지 20주년이 된 해로 급변하는 국제질서와 기후 위기 속에서 지속 가능한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가운데 제주가 상징하는 화해와 상생의 정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자리들도 행사 곳곳에 마련되었다.
2005년 노무현 정부는 도둑, 거지, 대문이 없다는 ‘제주도의 삼무(三無) 정신과 상부상조 공동체주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제주 4.3의 비극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키며, 평화 정착을 위한 정상외교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주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했고 국가 간 자유로운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지는 국제자유도시로 육성하고 평화 증진 및 확산을 위한 평화 실천 사업을 활발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공표했다. 제주포럼의 주최기관인 국제평화재단이 창립된 것도 이때이다.
포럼 기간은 운영하는 세션으로 다른 일정에 참석하기가 어려웠지만 공식 행사를 마치고 난 뒤 주최 측에서 마련한 부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 ‘평화를 걷다’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평화바람길 트레킹이었는데 이전부터 꼭 한번 걸어보고 싶던 길이었다.
산방산 아래 제주올레 10코스와 연결되는 길로 송악산에서 시작해 일제 동굴진지, 셋알오름 일제 고사포진지, 4.3 학살터,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등을 걸으며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제주 4·3 사건을 돌아보며 제주의 아픈 역사와 문화를 돌아보는 일종의 다크 투어리즘 코스다.
송악산 주차장에 내려 형제섬을 바라보며 북쪽으로 올랐다. 해송으로 덮여 있어 송악산이라 불리는 이곳은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분화구로 이루어진 산으로 태평양 전쟁 말기에 일본군이 만들어 놓은 동굴이 해안 절벽을 따라 이곳저곳에 뚫려 있는 것이 맨눈으로도 선명하게 보였다.
능선을 따라 좁은 길로 들어서 올라가다 보면 움푹 파인 원형 콘크리트 구조물이 보이는데, 일제 강점기에 설치된 고사포 진지의 흔적이라고 한다. 이곳의 고사포는 적군의 항공기를 격추하고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대공포로 1945년 무렵 지어졌다고 한다. 태평양전쟁 말기 전쟁의 일본의 마지막 저항 기지가 된 제주도의 모습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올레길을 따라 10여 분 걷다 보니 푹 꺼진 풀 구덩이에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웅덩이 두 개가 나타났다. 이곳은 서쪽에 있는 알오름이라는 뜻을 가진 섯알오름인데, 일제 강점기에 탄약고로 쓰이다가 미군이 폭파해 오름 형태가 무너졌다고 한다. 지금은 ‘섯알오름 양민 학살터’로 불리는데, 1947년부터 시작해 제주도 주민 2만5000~3만여명이 희생된 4.3사건의 비참했던 상황을 보여줄 수 있는 제주도 내 유일한 학살터다.
제주 4.3 사건의 초토화 작전이 마무리되면서 대규모 학살이 자행된 곳인데,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시신들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1950년 음력 7월 7일 새벽, 인근 모슬포 지역 149명과 한림 지역 62명의 사람은 아무런 재판도 받지 못한 채 이곳으로 끌려와 군인들에 의해 비밀리에 총살됐다.
시신 수습도 하지 못하게 해 가족들은 백골이 되어 뒤엉킨 시신을 6년 만에야 수습할 수 있었다고. 양 구덩이 중간에 설치된 콘크리트와 철근 더미, 유족들이 찾아서 모아 놓은 총알이 그날 벌어진 일의 끔찍함과 제주도민들의 아픔을 즉각적으로 느끼게 한다.
알뜨르 비행장에 도착했다. 알뜨르는 ‘아래 있는 넓은 들’이란 뜻의 제주어인데, 대륙 침략을 위해 항공기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일본이 중국과 일본의 중간 거점인 제주도 모슬포에 비행장을 구축했다. 현재는 국방부 소유로 농민들이 임대해 감자, 무 농사 등을 짓고 있다.
태평양전쟁을 거치며 80만 평(약 264만4628㎡)까지 확장되었던 알뜨르 비행장은 현재 20개의 비행기 격납고, 급수탑, 지하 벙커 등이 남아 있다. 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제주도민들은 애 어른 할 것 없이 일본의 군사시설과 인공동굴 건설을 위해 강제 동원되었다고 한다.
트래킹 전 제주포럼 현장에서 세계평화의 섬 제주에 관해 설문에 참여했었다. ‘세계평화의 섬’을 발전시키기 위해 어떤 것에 더 힘써야 할지 물어보는 질문이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제주, 개성 있는 섬 문화의 제주에는 이런 역사적 상처와 이를 딛고 일어섰기에 더더욱 평화와 함께 번영하는 미래에 가치를 둘 수밖에 없는 제주가 함께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말 그대로 제주는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되어야 한다.
김현주 공공기관인 hyunjoo7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