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FEEL思)] 오롯이 혼자 먹는 점심 '고독한 혼점'의 이로움

[최영은의 필사(FEEL思)] 어른이 가질 수 있는 이상적 식사 혼자 먹는 점심 '혼점'의 장점과 매력

2025-05-30     최영은 기자

책에서 읽은 것을 잃지 않고자 필사 합니다.

책 속에서 제가 느낀 감정(feel)과 생각(思)을 여러분께 전달합니다.

<기대를 현실로 바꾸는 혼자 있는 시간의 힘>,사이토 다카시, 위즈덤하우스, 2015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시집>, 한겨레출판, 2022

 

점심 시간에 구내식당에 가서 혼자 밥을 먹었다. 앞에 앉은 또 다른 혼밥러(혼자 밥을 먹는 사람)에게 누군가 “왕따라서 혼자 밥먹냐?”라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식사 후 냉커피를 들고 계단을 오르는데 또 다른 회사 분이 “오늘도 밥 혼자 먹었어?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서?”라는 질문을 했다. “네에~”라고 대답하며 자리로 향했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왜 혼자 밥 먹는 사람을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서’라고만 생각하는 걸까? 혹시 회사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 해서 혼자라고 보는 걸까? 그래서 오늘은 혼자 밥을 먹는 이유에 대해 제 생각을 들려드릴까 한다. 대답은 “어떻게든 오롯이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입니다.”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회사에서는 하루 종일 상사, 동료, 거래처 직원 등 여러 사람과 대화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타인에게 신경을 쓰는 시간이 많다. 이런 환경에서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 부족하다. 누군가는 이렇게도 말 할 수 있겠다. 회사에 일하러 오는데 혼자만의 시간을 갖냐고 말이다. 점심 시간은 팀원과 교류하고 정보를 얻는 자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비즈니스 미팅이 아닌 ‘목적 없는 친목을 위한 점심’에서 감정적 교류나 유의미한 정보를 얻은 적은 거의 없었다.

<기대를 현실로 바꾸는 혼자 있는 시간의 힘> 필사

회사에 믿고 교류하는 동료 기자들이 있지만 각자 사무실과 출입처에서 바쁘게 일을 하고 한 달에 한번 하는 전체 회식에서 만나면 회포를 풀곤 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래서 혼자 먹기로 결심했다. 구내식당, 김밥집 등 좋아하는 메뉴를 마음껏 고르며 점심을 즐겼다. 명동에서 교육을 듣던 날엔 유명한 명동칼국수 집에서 1인석을 발견했다. 혼자 식사하는 사람을 배려한 자리였다. (물론 1인 고객을 잡기 위한 전략이겠지만)

고독한 미식가의 이노가시라 고로. /도라마 코리아 캡처

그 순간 마치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이노가시라 고로가 된 것처럼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식사를 즐겼다. 김치도 먹을만큼만 덜고 칼국수도 면발을 조금씩만 들어 면에 베인 국물 맛을 음미했다. 식사를 하면서 누군가와 대화하기 위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마시며 오후 업무를 생각하거나 그날 배운 내용을 복기하기도 하고 후식으로 먹을 디저트도 생각했다.

남은 일정과 이런저런 생각 정리로 혼자만의 점심 시간은 끝났지만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사이토 다카시는 이를 ‘내관’이라 했다. 내관하기 위해서는 정해진 공간 혹은 3일에서 일주일 동안 자신에게만 집중해야 한다. 이때는 밥도 혼자 먹고 신문이나 텔레비전도 보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혼자 점심을 먹는 것까지는 어렵지 않지만 완전히 외부와 차단한 채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건 쉽지 않은 도전일 것이다.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늘려가 보기로 했다. 만약 마음 둘 곳이 없어 괴로울 때는 ‘몽상’을 하는 것도 좋다고 한다. 사이토 다카시는 바슐라르의 말을 인용해 몽상은 고독을 극복하는 하나의 기법이라고 설명한다.

시인들은 몽상의 세계에서 놀며 오감을 인식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고독을 보통 사람보다 능숙하고 긍정적으로 활용한다. 이마주(imagerie)에 뛰어난 것이다. 이마주는 이미지와 동의어로 들리지만 이미지는 시각적인 포착이라면 이마주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세계에 빠져들어 오감으로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혼자 먹는 점심의 이로움을 이야기하려다가 내관과 고독, 몽상까지 와버렸다. 이왕 혼자서 있는 시간을 늘려가기로 했다면 몽상까지 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는 회사에서 너무 현실에만 매여있으니까. 단조로운 삶에서 벗어나 어른이 가질 수 있는 이상적인 식사 '혼점'도 해보고 더 나아가 시인이 되어 몽상의 세계를 경험해보길.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혼자 점심 먹는 여러분을 위해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시집>중 강혜빈 시인의 시 '다가오는 점심'을 바친다. "맛점(맛있는 점심)하세요!"

 

다가오는 점심

강혜빈

 

여자는 오후 열두 시가 되면

언제나 혼자서 이곳에 온다

 

메밀국수 한 그릇 주문하고

대부분 벽을 응시한다

 

벽 속에서

아는 사람의 글씨체를 보았다고

 

어느 날에는 중얼거린다

 

미래의 언어를 쓴다는 그 사람은

자신의 시대가 아직 오지 않음을 슬퍼하며

먼 곳으로 떠났다는데

 

「어서 오십시오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식당입니다」

 

발들이 문을 열 때마다

짤랑이는 종소리

 

여자는 언제나 나무젓가락을

반듯하게 쪼개는 일에 실패했다

 

어릴 적, 목구멍에 걸린 생선 가시를

핀셋으로 뽑아낸 적이 있다고 했다

적막이 흐르는 공간을

금세 웅성거리게 만드는 법을 안다고 했다

 

언제나 혼자였던 사람

반드시 혼자서 알고 있는 사람

 

물컵을

두 손으로 떠받치고 있으면,

흐릿한 신호가 느껴진다고

 

시간과 공간의 테두리를 벗어난

차가운 면발을 집어 올리며,

여자는 묻는다

 

눈 밑에는

한 호흡에 그린 것처럼 정확한

점 하나

 

도시의 소리에는 규칙이 있고

물고기가 달려 나가고

자전거가 헤엄치는 광장이 있고

 

말하는 사람의 의중을 파악하는 일은

물맛의 차이점을 느끼는 일과 비슷해서

 

점심이라는,

어떤 장르를 만드는 일과 같아서

 

그러나 여자에게

가벼운 친밀감을 느끼기 시작할 때

오늘분의 점심시간은 끝이 나고

 

사람들은 문득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서둘러 바깥으로 나선다

 

아무것도 없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허공처럼

이곳은 이곳에 있다는 사실만이

이곳을 있게 해서

 

이곳은 있으면서 없다

 

나는 묵묵히 메밀을 씻는다

남겨진 벽이 새하얗다

사이토 다카시의 <기대를 현실로 바꾸는 혼자있는 시간의 힘>, 강혜빈, 김승일, 김현, 백은선, 성다영, 안미옥, 오은, 주민현, 황인찬의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시집>

여성경제신문 최영은 기자 ourcye@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