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타운 2.0] (25) 요양급여 대신 ‘실버 문화 바우처’···복지 전환 가능할까
의료·요양 중심 복지에서 삶의 질 중심으로 문화 바우처 도입 땐 고령층 자존감·활력 기대 “즐거움이 복지” 실버 정책 패러다임 전환 시급
요양급여 중심의 노인복지와 별개로 일명 '실버 문화 바우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일부 지자체를 중심으로 노인 문화·여가 예산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요양급여' 대신 '문화 바우처'를 지급하는 방안이 제도화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26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노인복지의 핵심인 노인장기요양보험은 2008년 도입 이후 돌봄·요양에 집중돼 있다. 다만 인지 기능이 정상이거나 비교적 건강한 고령층은 요양등급을 받기 어려워 공적 혜택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문화·여가 활동은 신체·정신 건강 모두에 영향을 주는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재정 지원은 미비하다.
한 실버타운 운영사는 여성경제신문에 “입주 어르신들이 음악, 미술, 운동 등 다양한 활동에 관심이 많지만 개인 지출로만 운영되고 있다”며 “공공지원이 있으면 훨씬 더 적극적인 프로그램 운영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실버 문화 바우처’는 요양등급 유무와 무관하게 일정 나이 이상의 고령층에게 문화·여가 활동비를 월 단위 또는 연 단위로 바우처 형식으로 지급하는 개념이다. 지원 항목은 미술·음악·스포츠 강좌, 공연 관람, 디지털 교육 등으로 확대될 수 있다. 실버타운 거주자뿐 아니라 일반 노인 복지관 이용자도 활용 가능하다.
이 제도가 실현되면 요양 중심에서 ‘활동 중심’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특히 퇴직 후 자존감·소속감이 낮아지는 70~80대에게는 정신 건강 예방 차원의 정책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해외는 이미 노인 문화정책을 강화 중이다. 독일은 고령자 문화예술 프로그램에 지방정부 차원의 문화예산을 별도로 책정했다. 노년기 우울증 예방 프로그램과 연계한다. 일본은 ‘노인 생애현역 정책’ 일환으로 65세 이상 문화·자원봉사 활동 참여자에게 지역포인트 지급한다. 영국의 경우 문화예술기관과 연계한 ‘문화 처방(Culture Prescription)’ 정책을 통해 60세 이상에게 공연·강좌 할인권 정기 제공한다.
복지부는 지난해 고령자 맞춤형 복지전략 연구용역을 통해 ‘고령자의 정서적·사회적 고립감 해소 방안’으로 문화 접근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일부 지방정부는 문화누리카드 확대를 통해 노인 대상 문화바우처 시범을 제한적으로 운영 중이다. 하지만 국가 차원의 제도화는 아직 전무하다. 관련 예산은 전체 노인복지 예산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실버 문화 바우처 도입이 현실화되려면 △요양급여 중심 재정구조의 분산 △지자체 참여 확대 △실제 수요 기반의 사업 설계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김정민 실버타운문화기획 매니저는 여성경제신문에 “어르신들은 더 이상 단순 수급자가 아니라, 능동적 소비자이자 시민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지방복지정책 기획관은 여성경제신문에 “현재 요양 등급을 받은 어르신에게는 연 1000만원 넘게 쓰면서 요양등급이 없는 어르신에게는 연간 문화비 10만원도 지원하지 못하는 게 현행 구조”라며 “삶의 질을 ‘치료’가 아닌 ‘경험’으로 정의할 수 있는 정책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