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익종 더봄] "폭싹 속았수다"

[한익종의 삶이 취미, 취미가 삶] 천국으로 출근하는 여인에게 건네는 인사

2025-06-06     한익종 발룬티코노미스트·알나만교장

이 이야기는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평생을 전업주부로 보냈던 아내가 60이 된 어느 날 내게 말을 건넵니다.

“여보, 나 공부해서 자격증 따려고 해요.”

그 후 아내는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자격을 획득했고 2019년 제주로 내려온 이후 이제까지 시골의 자그마한 노인요양시설에서 요양보호사로 입소 노인들을 보살피고 있습니다.

그런 아내가 내게 다시 자신의 진로를 밝힙니다.

“여보, 나 이제 요양보호사 그만두려고 해요.”

처음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 어르신들을 케어한다고 나설 때나 이제 그 일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나 나의 반응은 적극 찬동과 응원입니다.

해양쓰레기 수거봉사를 위한 비치코밍 중 휴식을 취하는 우리 부부 /사진=한익종

인생 후반부 자기 혼자만의 행복을 위해 돈, 명예, 지위를 추구하는 삶이 얼마나 허무한 삶인지를 강조하며, 인생 3막은 자신이 즐기는 일을 업으로 삼아 함께 하는 삶을 영위해야 한다고 주창한 내가 아내의 요양보호사 일의 가치를 알았고, 다시 또 다른 발룬티코노미스트 적 삶을 살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자격증 취득 이후 최저 시급에 해당하는 요양급여를 받으며 입소 노인들의 수발을 드는 고된 일을 해 내고 있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우리 사회에서 요양보호사에 대한 인식이나 대우는 그야말로 최악의 수준입니다.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3D 업종 중에서도 이런 일은 없다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이런 직업을 가진 아내의 6년은 일반적 인식과는 달리 행복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오죽하면 내가 아내의 별명을 '천국으로 출근하는 여인'이라고 했을까요. 온갖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도 회사에 출근하려면 고개를 저었던 나의 직장 생활을 상기한다면 그야말로 요해 불가의 상황입니다만, 왜 그런 행복한 출근이 가능했는가를 생각하면 충분히 수긍이 갑니다. 

바로 자신이 사회적 니즈를 충족시키면서 다른 이를 도우며, 소정의 보상도 받는다는, 나이 들어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데서 오는 자존감의 획득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행복감으로 노인들을 보살피니 요양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고, 입소 어르신들이 아내를 좋아하고 반기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오래전 취미생활에 대해, 특히 인생 후반부 취미에 대해 칼럼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돈만 쓰는 취미, 트렌드를 쫓는 취미, 자신만을 위한 취미의 한계에 대해서입니다. 취미도 다 때가 있는 듯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취미들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수고한 아내를 위한 저녁 캠핑 /사진=한익종

그리고 명심해야 할 사항이 나이가 들어가면 아무리 좋은 취미도 영속적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 좋아하던 등산도 육체적 한계로 인해, 골프도 경제적 또는 인간관계로 인해 못 하는 상황도···. 예외는 있겠습니다만 인생 후반부 영속적으로 해갈 수 없는 때가 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존감보다는 자존심을 내세우는 취미생활의 한계, 나만을 위한 취미의 한계, 그리고 애당초 지속 가능한 모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생 후반부 지속 가능한 취미가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요건이 있습니다. 과거의 욕심을 줄이고, 이웃과 사회와 함께하며,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즐기는 취미를 업으로 이어가는 것입니다. 바로 발룬티코노미스트 적(취미, 봉사, 경제활동의 동시 추구) 취미, 삶입니다.  

천국으로 출근하던 여인인 아내가 이제 요양보호사를 그만두려고 합니다. 노노(老老)케어의 한계에 온 것 같습니다. 다 알다시피 요양보호사의 업무는 상당한 육체적 부담을 수반합니다. 그런 육체적 이유로 요양보호사를 그만두어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미 다른 발룬티코노미스트의 삶이 자리 잡고 있을 겁니다. 또 응원하렵니다.

제주에 내려와 살고 있으니 그동안 수고한 아내에게 제주 방언으로 인사를 건넵니다.

“폭싹 속았수다*.”

여성경제신문 한익종 발룬티코노미스트·알나만교장 immagic59@naver.com

*폭싹 속았수다 : '정말 고생많으셨습니다'란 의미의 제주도 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