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통합 외치면서 갈등만 키웠다
대선 후보들 말끝마다 "갈라치기"라며 남 탓 갈등 극복 커녕 분열만 체감한 사회 토론회
'갈라치기'. 제21대 대선 후보 2차 토론이 끝난 후 가장 또렷하게 남은 단어다.
지난 23일 열린 사회 분야 대선 토론회 주제는 '사회 갈등 극복과 통합 방안'이었다. 그러나 후보들은 통합을 논하는 자리에서 오히려 갈등을 재연하는 데 집중했다. 그들의 말끝마다 대립이 드러났고 그 말들이 부딪히는 장면마다 국민은 통합보다 분열을 체감했다.
"가정도 통합 못하는데 국민 통합을 말할 자격이 있냐", "본인은 갑질을 하지 않았냐. 소방관한테 전화해서 '나 김문수인데' 라고 했다. 어쩌라는 건가." 김문수 후보와 이재명 후보의 공방이다. 반격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상대의 과거를 들춰내거나 정치적 연대를 의심하며 의도를 재단했다. 통합 방안보다는 감정과 해묵은 갈등, 그리고 정쟁이 토론장을 채웠다.
정작 자신이 받은 질문에는 답하지 않거나 회피했다. 간병비 15조원의 재원 마련 방안을 묻자 의료쇼핑 절감을 언급한 이재명 후보는 그 수치 자체를 부인하며 논점을 비껴갔다. 이준석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본인의 연금 개혁 방안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이끌 것인지 묻자 세대 간 갈라치기를 한다는 말에 궤변이라며 되받아치는 데 그쳤다. 정책은 쟁점이 되었지만 해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권영국 후보는 이준석 후보에게 "갈라치기"와 "장애인 혐오"를 비판하면서도 이재명 후보에 대해서는 비교적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특히 "지금은 이재명"이라는 발언은 발언 구조상 질문의 형태였지만 실제 토론 분위기에서는 이재명 후보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하는 인상도 남겼다. 권 후보는 이후 "책임 있는 답변을 요구하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물론 대선 TV토론은 형식상 제약이 많다. 시간은 짧고 메시지는 압축돼야 하며 지지층 결집을 전제로 구성된다. 날카로운 상호 비판이 불가피한 이유다. 그러나 갈등을 극복하고 통합하는 방안을 논하는 자리였다면 적어도 서로를 존중하고 책임 있는 언어를 쓰는 자세는 보여야 했다. 오히려 이번 토론회는 '분열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보여주는 교본처럼 보였다.
더 아쉬운 점은 정책의 실종이다. 기초연금 인상, 간병비, 의료 개혁, 연금 구조 개혁 등 현실적인 주제가 테이블에 올랐지만 정작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었다. 숫자는 오갔지만 계획은 없었고 구조를 바꾸겠다는 말은 있었지만 설계도는 없었다. 유권자는 감정이 아니라 설계도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토론회에 남은 것은 말보다 말투였고 해법보다 의심이었다.
갈등은 정치를 통해 조정돼야 한다. 그러나 그 정치를 말하는 이들이 갈등의 당사자로 나선다면 조정은커녕 증폭만 남게 된다. 통합을 말하려면 먼저 그 언어에 걸맞은 태도를 보여야 한다.
대통령 후보의 언어는 단지 공격이 아니라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는 신호가 되어야 한다. 갈라치기를 반복하는 정치는 분열만 키울 뿐 어떤 사회에도 해법이 될 수 없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