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의료진 신뢰도 올랐지만···수치 뒤에 숨은 구조적 공백

지난해 8~11월 응급실 환자·보호자 면접 조사 의료 공백으로 전문의 전담·환자 수 감소 영향 중증 환자 배제···주관적 조사 의미 부여 어려워 현장 개선 시급한 점 "정부의 명확한 목표 제시"

2025-05-26     김정수 기자
응급실 파행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9월 8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 진료 지연 안내문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의료 공백기 중 실시된 응급실 신뢰도 조사에서 의사와 간호사에 대한 신뢰 응답 비율이 오히려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중증 환자는 응답 대상에서 배제됐을 가능성이 높으며 신뢰의 기준이 모호해 실질적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26일 국립중앙의료원에 따르면 중앙응급의료센터가 지난해 8월~11월 전국 응급실을 이용한 만 20세 이상~80세 미만 내원 환자와 보호자 4000명을 면접 조사한 결과 의사·간호사 등 응급실 내 의료진에 대한 신뢰도가 전년보다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응급실 진료를 전문의가 전담하고 환자 밀집도가 내려간 영향으로 해석된다.

'응급실 내 의사 진료를 신뢰하느냐’의 물음에 90.1%가 ‘신뢰한다' 혹은 '매우 신뢰한다'고 답했다. 1년 전 조사에선 87.7%였는데 2.4%포인트 올랐다. 연구진은 "응급 의료 서비스에 대한 환자와 보호자의 신뢰가 향상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응급실 내 간호사 간호 활동에 대한 신뢰율'도 91.6%로 전년(88.9%)보다 2.7%포인트 올랐다. 연구진은 "응급실 내 간호사들의 간호 활동에 대한 환자와 보호자의 인식이 개선되고 있고 응급 의료 서비스에서 간호사의 역할이 신뢰받고 있다"고 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신뢰도 조사 결과는 전문의 진료 전환 등 일부 영향은 있을 수 있지만 통계학적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 응답 대상도 중증 환자가 아닌 귀가, 퇴원 환자 위주일 가능성이 크다"며 "'신뢰한다'는 기준이 치료 결과나 사망률 같은 객관적 지표가 아닌 주관적 평가이므로 어떤 의미를 가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외부의 다른 의료 기관에서 병원을 옮기는 '전원'으로 응급실로 올 때 걸리는 시간은 전년보다 줄었다. 전년도 조사에선 평균 31.3분이 걸렸는데 작년에는 25.8분이 걸려 전년 보다 5.5분 감소한 것이다. 응답자 10명 중 8명(79.9%)은 응급실에서 의사 진료를 받을 때까지 대기 시간이 적당했다고 답했다. 2023년(66.7%)과 비교하면 13.2%포인트 올랐다. 다만 응급실 도착부터 처음 의사 진료를 받을 때까지 걸린 평균 대기 시간은 16.4분으로 이전 해보다 1.6분 늘었다.

이 회장은 "대기 시간이 짧아졌다는 응답은 전체 환자 수가 줄어든 데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며 "실제로 상급종합병원 기준 내원 환자가 50% 가까이 줄었고 전공의 없이 전문의끼리 직접 의사소통하면서 진료 결정 속도도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응급 의료 서비스에 불만족한 응답자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접수 후 대기시간이 길다'는 응답이 59%로 1위로 조사됐다. 이어 높은 진료 비용(20.5%), 설명 부재(7.7%), 불친절함(7.7%) 등이 뒤를 이었다. 연구진은 "진료 대기 시간과 진료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력 확충과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응급실이 어떤 역할을 하도록 설계돼야 하는지에 대한 정책적 방향의 부재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형민 회장은 여성경제신문에 "응급의료 현장에서 가장 시급한 건 '우리가 어떤 응급실을 만들 것인지' 정책 목표를 먼저 설정하는 일"이라며 "모두가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응급실을 만들겠다면 인력과 재원을 지금보다 서너 배 늘릴 계획부터 내야 하고 반대로 중증만 보겠다면 경증 환자 진입을 제한할 장벽을 세워야 한다. 방향이 정해져야만 제도와 계획도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지난 수십 년간 경증 환자는 응급실을 이용하지 말라고 하지만 사실상 누구나 응급실을 편하게 이용하도록 정책을 펼쳐왔다. 그렇다면 누구나 편하고 저렴하게 응급실을 이용하겠다는 게 정책 목표라고 명확히 이야기하라는 것"이라며 "응급실 뺑뺑이가 문제라면 구체적으로 몇 퍼센트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먼저 제시해야 한다. 목표도 없이 비난만 하는 지금 방식으로는 어떤 개혁도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