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프로는 경쟁하고 아마추어는 정쟁한다
‘내란 심판’ 발언의 역설 정쟁으로는 통합이 없다
대통령 후보의 입에서 심판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유권자는 피고석에 앉은 듯한 기분을 느낀다. 10년 전엔 적폐 청산 그 전에는 정권 심판. 그리고 이제는 내란 심판이다. 달라진 건 말의 주인공일 뿐 단어는 낡았고 감정은 식지 않았다. 정치가 정쟁의 재판장처럼 변할 때 정작 국민은 언제나 배심원이 아니라 방청객으로 전락한다.
프로는 경쟁을 하고 아마추어는 정쟁을 한다.
2025년 5월 23일. 제21대 대통령선거 사회 분야 TV 토론회. "이번 내란 사태를 엄격하게 심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방안이다." 사회 통합을 논하는 자리에 내란 심판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국민의 반응은 갈렸다. 누군가는 통쾌해했고 누군가는 불쾌해했다.
질문이 생긴다. 갈등을 심판으로 해결하겠다는 논리 과연 통합을 말할 자격이 있을까.
정치가 분노를 자산으로 삼을 때 그 끝은 대개 파괴적이다. 토론회에서 국민의힘 후보는 내란 세력이 됐다. 이 표현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선다. 청산의 언어다. 심판의 언어다. 법치 위에 정치가 군림할 때 사회는 심판받는 쪽과 환호하는 쪽으로 나뉜다. 통합의 길은 사라지고 전선만 남는다.
토론회는 내내 공격적이었다. 특정 후보는 경쟁자를 향해 전광훈 목사 집회에서 눈물을 흘린 사실과 경기도지사 시절 소방관 갑질 논란까지 끄집어냈다. 그러나 유권자는 토론장에서 유치한 말싸움을 보러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이쯤 되면 토론이 아니라 품평회다. 누가 더 말을 잘했는가보다 누가 더 자제했는가를 봐야 할 시점이다.
공격은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공격이 공익보다 개인 감정에 기댄 것이라면 결국 정치 혐오만 키운다. 여야 후보 모두 강한 지지층을 바탕으로 돌파하려 한다. 하지만 강성 지지층이 후보들을 구원할지는 미지수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실패를 심판하겠다는 프레임은 반문(反文)에서 반윤(反尹)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을지 몰라도 대안이 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정쟁의 종착역에서 우리 삶은 나아졌는가.
심판은 통쾌하지만 통합은 고통스럽다. 나라를 책임질 지도자가 던져야 할 메시지는 통쾌함이 아니라 책임감이어야 한다. 그 말 한마디가 정쟁의 불씨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질서와 희망의 신호탄이어야 한다.
국가 지도자의 언어는 무겁다. 대통령 후보의 말은 정책이 되며 이념이 되고 나아가 국정 철학이 된다. 내란 심판이라는 단어는 단지 정치적 수사로 흘려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정치적 경쟁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경쟁이 국민의 분열로 이어져선 안 된다.
이제 유권자가 물어야 할 차례다. '심판'을 외치는 정치가 과연 내 삶을 바꿔줄 수 있을까. 그 답은 토론장이 아닌 투표장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선택은 심판이 아니라 희망을 향해야 한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