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타운 2.0] (24) "O월까지 입주 시 900만원 할인" 이면엔 공실·재정난 우려
고객 유치 위한 할인 마케팅 눈길 형평성 논란·장기 운영 리스크 우려 자본력·운영 철학 가진 주체 필요
'생활비 900만원 할인', '부부 한정 1+1 프로모션', '5월까지 계약 완료 시 위약금 면제'
실버타운에서 제공되는 입주 혜택이 눈길을 끌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형평성 논란과 수익 구조 불안, 운영 신뢰 저하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24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일부 실버타운은 매달 할인 혜택을 앞세운 입주 프로모션을 이어가고 있다. 광고성 문자 메시지나 웹사이트 공지를 통해 '3월 말까지', '4월 말까지' 등 유효 기간을 명시한 이벤트가 매달 갱신되는 식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공실 장기화에 따른 고객 유치 전략으로 보고 있다.
수도권 A 실버타운 광고 메시지를 보면 △900만원 상당의 월 생활비 할인 △부부 한정 '1+1 프로모션' △5월 말까지 계약 완료 고객 대상 위약금 면제‧식사 1개월 무료 제공 등 다양한 혜택이 포함돼 있다. 제보자 B씨는 여성경제신문에 "날짜만 바꿔 매달 문자가 온다. 3월에는 3월 말까지라고 했다가 다음 달에는 4월 말까지로 바뀌는 식"이라고 전했다.
이지희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사무국장(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입주가 안 되니까 할인하는 것"이라며 "만실이 아닌 실버타운 중에서 할인하지 않는 곳도 있다. 운영 철학이 있으면 그런 방식으로 입주를 유도하지 않는다. 할인은 결국 문제가 생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할인 이벤트는 신규 입주자 유치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입주자 간 형평성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할인 혜택을 받은 신규 입주자가 생기면 이전에 정가로 입주한 주민들과의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운영자 입장에서도 생활비 인하로 인해 일정 수준의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재원 마련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지희 사무국장은 "할인 프로모션을 통한 입주자 유치는 결국 현금 흐름이 좋지 않다는 의미다. 프로모션이 끝난 후 누군가가 제 돈 내고 들어간다면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할인된 가격은 수익이 나지 않는 구조다. 또 실버타운은 평생 살 집인데 할인한다고 입주를 결정하는 경우는 드물다"라고 했다.
실버타운 시장은 정부의 공급 확대 기조 속에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운영 기준이나 계약 가이드라인은 부재한 상황이다. 가격 책정, 계약 조건, 서비스 항목 등은 모두 운영 주체의 자율에 맡겨져 있으며 입주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는 사실상 전무하다.
이 사무국장은 "가격이나 계약 기준은 시설마다 다르다. 지역, 평수, 프로그램, 정원 등이 다르기 때문에 정부가 표준화하긴 어렵다. 결국 시설 운영자가 철학을 갖고 판단해야 한다"며 "문제는 철학 없이 무작정 시설을 열고 입주가 안 되자 가격 할인에 의존하는 구조가 반복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구조는 시설 내부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할인 유치가 반복되면 결국 시설 운영이 흔들리고 그 피해는 입주 어르신들에게 전가될 수 있다. 이 사무국장은 "적정 인원이 돼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계속해서 유치한다는 것은 입주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신호다. 업계에선 기존 입주한 어르신이 퇴소해야 하는 상황이 올까 봐 걱정하는 것"이라며 "그렇게 시설 도산 뉴스라도 보도되면 업계 전체 이미지가 타격을 받는다. 현재 잘 운영되는 시설도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픈하자마자 만실이 되는 실버타운은 없다. 10년이 지나면서 만실이 된 곳도 있다"며 "결국 문제는 자금력이다. 시간을 견딜 힘이 있는가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현상은 단순히 개별 시설의 문제가 아니라 수요자 파악 부족 등 구조적 한계와도 연결된다. 김정은 숭실사이버대학교 요양복지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실버타운은 복지시설보다 부동산업에 가깝기 때문에 정부가 운영을 규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지자체가 국공립으로 운영하는 경우라면 가이드라인 제시는 가능하겠지만 민간 전체에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시니어 주거 시설의 공급 부족이 거론되지만 왜 실제 입주로 이어지지 않는지에 대해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며 "실제 입주로 이어지지 않는 건 건강할 때만 살 수 있고 케어가 필요해지면 퇴소해야 하는 실버타운 구조에 대한 불안감 때문도 있다.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할 모델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지금은 시행착오를 거쳐 한국형 시니어 주거 모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본다"면서도 "노인 인구가 천만이 된다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됐던 일이지만 민간도 정부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채 이제야 급하게 시장에 뛰어드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