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커피 원가 120원’, 참을 수 없는 말의 가벼움
이재명 후보 커피 원가 120원 발언 논란 자영업자 현실 외면한 탁상공론 지적 정치인 발언의 무게와 책임 신경 써야
지난 16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군산 유세 현장에서 “5만원 주고 땀 뻘뻘 흘리며 닭죽 한 시간 고아서 팔아봤자 3만원밖에 안 남지 않나. 그런데 커피 한 잔 팔면 8000원에서 1만원 받을 수 있는데 원가가 내가 알아보니까 120원”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이 후보가 2019년 경기도지사 시절 ‘계곡 불법 영업’을 정리하며 상인들과 협상할 때 했던 말을 인용한 것으로, 상인 설득 사례로 활용됐다. 닭 삶는 노동과 비교하며 나온 이 한 마디는 현장을 웃음 짓게 했을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커피 한 잔에 생계를 건 수많은 자영업자들의 가슴에는 비수가 꽂혔다.
커피는 단순히 원두 값만 포함되는 게 아니다. 커피숍을 운영하는 이들이 그 커피 한 잔을 팔기 위해 치르는 임대료, 인건비, 세금, 카드 수수료, 장비 비용은 0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식음료 원재료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자영업자들의 고충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특히 원두는 모두 수입해 쓰기 때문에 고환율인 요즘 같은 시기에 가격 부담은 더 크다. 커피 원두의 주 생산지인 브라질과 콜롬비아의 이상기후로 인한 작황 부진에 산지 가격도 치솟는 상황에서 관세, 운송비까지 올라 원두 값만 해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이다.
‘커피 원가 120원’ 수치 역시 최근 현실과 동떨어진다. 일반적으로 아메리카노 한 잔에 들어가는 원두의 양은 약 10~14g 정도다. 2011년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미국산 원두 10g의 세전 수입 원가는 약 123원 수준이었다. 10년도 더 넘은 자료의 수치를 2025년 대선 유세의 현장에서 언급하기에는 어불성설인 셈이다.
자영업자들에 따르면 원두 값만 놓고 봤을 때 아메리카노 한 잔의 원가는 300~500원 수준이지만, 이를 매장에서 판매하는 데 들어가는 총비용은 커피 값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임대료와 인건비 비중이 높아 소형 개인 카페의 경우 한 달 고정비만 수백만원에 이르는 곳도 적지 않다.
카페의 영업이익률은 총매출에서 원가와 임대료, 인건비, 공과금, 기타 비용을 제외하고 남는 이익의 비율인데 업종과 규모, 위치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일반적인 개인 카페 기준으로 10~2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프랜차이즈 카페의 경우 초기 가맹비, 로열티, 광고비 부담 때문에 영업이익률이 5~10% 정도로 더 낮은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카페의 한 달 매출이 1500만원이더라도 영업이익은 200만원에 불과하다.
소규모 개인 카페는 더 여의치 않다. 월 매출 1000만~1500만원도 버거운 곳이 많은 데다 월세와 인건비 비율이 워낙 높아서 5~10%를 간신히 넘기는 경우도 있다. 원두 구매도 소량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구매 단가도 높다. 비 오는 날이나 계절 비수기, 공휴일에는 매출이 급감해서 적자 보는 달도 흔하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하기 시작하면서 고령 자영업자 수는 급격히 치솟고 있다. 그중 커피숍 창업을 고려하는 이들도 많아질 것이고,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의 공세와 해외 커피 브랜드의 유입 등은 커피 업계의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할 것이다. 그만큼 경쟁력이 없는 카페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이에 폐업률도 치솟고 있다. 하루하루 장사를 접을까 고민하는 이들에게 ‘원가 120원’을 운운하는 발언은 현실을 모르는 탁상공론 그 자체다. 단순한 원가 계산으로 서민 경제를 재단하고, 땀 흘리는 이들의 삶을 단편적으로 바라본 이번 발언은 유세장의 인기몰이를 위한 가벼운 농담으로 덮기에는 너무 뼈아프다.
이 후보는 해당 발언으로 뭇매를 맞자 "말에는 맥락이라는 게 있다"며 "2019년 봄경에는 커피 원재룟값이 120원 정도 한 것이 맞다. 인건비와 시설비가 감안되지 않은 것이다. 닭죽을 만들어서 파는 것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영업을 하도록 지원하겠다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당시 계곡 불법 영업을 하는 닭죽 업자들을 설득해 커피숍으로 업종 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이야기였다는 얘기다. 언뜻 보면 닭죽 업자를 위하는 발언 같지만 뒤집어 보면 커피를 파는 자영업자를 터무니 없이 폭리나 취하는 장사꾼으로 매도하는 발언이 될 수도 있다. 이 후보의 말대로 '말에는 맥락이 있는 법'이다.
닭죽을 팔든 커피를 팔든 모든 업종의 외식 자영업자들은 불경기 속에서 생존을 위한 치열한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다. 단순한 원가 계산으로 서민 경제를 재단하거나 여타 업종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 자영업자들이 기대하는 건 ‘120원짜리 계산법’이 아닌, 그들의 고단한 하루를 덜어줄 실효성 있는 대책과 존중이다. 대선 후보라면 우리 경제의 뿌리인 자영업자 모두를 아우르는 섬세한 시각을 갖고 경제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정치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기록으로 남고, 그 기록은 곧 민심이 된다. 유세장의 순간적 인기보다, 정작 그 발언이 향할 곳은 현장에서 오늘도 가게 문을 열고 커피 한 잔에 하루를 버티는 이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언어는 곧 '존재의 집'이며, 말의 품격은 곧 말하는 자의 품격이다. 말을 내뱉는 순간 공적인 언어가 되는 정치인의 말은 한없이 무거워야 한다.
여성경제신문 류빈 기자 rba@seoulmedia.co.kr